아오 진짜
A 팀원과 함께 저녁을 먹은 어느 날, 그는 내 첫인상이 너무 무서웠다고 고백해왔다. 몰입도가 엄청나고 말이 없고 지치지도 않는지 매일 야근을 하는 모습도 신기했다고. 그분은 내가 집중할 때 삼백안이 된다는 사실까지 잘 알고 있었다.
그 말을 들은 순간 첫 번째로 든 생각은 '눈을 제대로 뜨고 다녀야겠다'였고, 두 번째로 든 생각은 '아무리 그래도 흰자가 많은 눈은 습관으로도 고칠 수 없어...'였다. 그밖에도 여러 가지 생각을 하다가 '나는 그저 일이 많아서 그렇다'라는 무난한 대답을 했다. 그조차도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러나 혼자 어떤 생각을 하며 일하는지 솔직하게 대답하진 않았다.
내가 일할 때 말수가 적은 건 단 한 가지 이유 때문이다. 자꾸 화가 나서.
' 얼마 전에 만난 사람은 왜 내러티브 기획자인 날 앞에 두고 퀘스트는 보통 읽기 귀찮은 텍스트며 대부분의 유저는 읽지 않는다고 했을까? 얼마 전에 퇴사한 누구는 왜 내 스크립트를 그런 식으로 지적했을까? 으악, 너무 화가 난다, 께에엑! ' 머릿속에 이런 분노로 가득 차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아서 그렇다.
가끔 그런 생각을 하다 보면 나에게 상처 준 그 사람에게 시원하게 욕이라도 해주고 싶을 때도 있는데. 그런 상상이 꼬리에 꼬리를 물다 보면 정말 입밖으로 이상한 소리가 튀어나올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누가 들었나 싶어 주위를 둘러보곤 괜히 헛기침을 하며 다시 일하는 척을 한다.
극복이 잘 안 돼서 팀원에게 고민을 털어놓기도 했다. 내 이야기를 들은 팀원들은 상처 준 사람을 생각하는 순간 그 사람의 배설물을 몸에 비비는 것과 같으니 잊으라는 조언을 했다. 적확하고 날카로운 말이었다. 하지만 내가 그 조언에 보답할 만큼 성숙한 사람은 못되는지 나는 한동안 나아지지 못했다.
허나 헤매고 돌아간다고 생각하는 길이 실은 앞으로 가는 길이었다. 슬퍼하고 일하고를 반복하다보니 어느새 내 텍스트는 좀 더 나아져 있었다.
퀘스트가 흥미진진하다는 타 팀원의 평도 들었고 내가 쓴 인물들의 대사를 외워서 기억하는 팀원도 만날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대부분의 유저가 퀘스트를 스킵한다는 말에 반박할 수 없다.
누군가는 백 명 중 한 명은 읽으니 걱정말라고 했다. 허나 나는 나머지 아흔아홉 명마저 읽고 싶어지는 글을 쓰고 싶다.
이런 말을 하면 열에 아홉은 '그래도 난 안 읽을 것 같아' 대답하지만...
너무 큰 욕심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걸 나는 또 생각한다. 나는 퀘스트를 쓰는 게 아니라 가상의 세계에 사는 누군가의 말을 받아 적고 있다고. 그 사람은 가상의 세계에 들어올 당신을 늘 기다리고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