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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수 May 20. 2021

41살에 처음 떠난 유럽 여행  

_꼬비 씨와의 14년 그리고 나의 3년간의 유럽여행


2017년 1월


1년을 만난 남자 친구가 사기꾼이었다.  

어느덧 내 삶은 엉망이었고 사기꾼이 휘저어 놓은 주변관계들은 더 엉망진창이었다. 

괴로웠었다. 

그 상황을 극복하고자 했던 일이 하드코어적으로 힘든 일이었는데 그 일의 한 시즌을 끝내자마자 깊은 우울이 또다시 찾아왔다. 그때 마침, 리버풀에 교환 근무로 가있는 친한 언니가 꼭 놀러 오라는 연락이 왔고 몇 번의 고민 끝에  내 핸드폰에는 비행기 티켓 결제 알림이 울렸다.


낙장불입.. 

언제나 그렇듯.  티켓을 지르면 여행은 가게 마련이다. 바꿔 말하면 나는 14년을 키우던 강아지 꼬비 씨도 동네 언니에게 부탁하고  지방을 다니며 일을 더 힘들게 할 수밖에 없었다. 여행경비를 모아야 했으니까.


D-day 6월 2일

여행을 1주일 남겨놓고 일을 하고  있는데 동네 언니와 같이 살고 있는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수연아 꼬비가 몸이 안 좋아. 피를 토해.. 언니는 너 일하니까 연락하지 말라하고 병원도 다녀왔는데 네가 올라와 보는 게 맞는 것 같아."

가끔 토를 하긴 하는데..  친구 말이 심상치 않아서 바로 일을 접고 언니 집으로 왔다.


집이 5분 거리였지만 꼬비 상태가 심각했고  나 혼자 이 시간을 버텨 낼 자신이 없었다. 무엇보다 꼬비 상태가 이동할 상태가 아니었다. 

처음으로 여행을 취소해야 한다는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티켓은 24시간 전까지인 1일 날 아침 8 시까지만 취소하면 위약금 30 프로만 물면 된다. 

그로부터 단 한 시간도 꼬비 씨와 나는 잠도 잘 수 없었다. 잠잘 사이도 없이 꼬비가 피를 토하고 경련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물 한 모금도 못 마시고 깔끔한 아이가 기저귀를 차야했다. 수액을 꽂을 혈관을 찾기도 힘들 만큼 힘겹게 하루하루를 이어나갔다. 매일매일 병원을 다녀와도 이미 썩어 들어간 꼬비의 몸은 더 손 쓸 방법이 없었다.  마지막 순간에도 꼬비는 감기는 눈에 힘겹게 나를 담으려 애를 썼다.

그렇게 31일 날 아침에 꼬비를 보내주고..  직접 운전해서 김포의 화장장까지 다녀오는데 아직도 실감이 안 난다.  14년의 시간이 어떻게 흘러오고 끝났는지,

한참을 멍해 있는데.. 언니가 얘기한다.



"너 여행가라는 꼬비의 뜻인 것 같다." 

음..  꼬비를 간호하다 보니 정신이 없어서 내일은 취소해야지.. 하며 미뤄오던 게 이제 하루도 안 남은 상황이었다.

"언니.. 그러기엔 꼬비 씨가 병원비로 여행경비 절반 이상을 쓰고 갔는 걸?"

"언니가 당장 급한 돈은 빌려줄게 갔다 와서 갚어."

"으.. 응.."

그리고 짐을 어떻게 쌌는지, 환전을 어떻게 한 건지..  검색도 하나도 못했는데.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는데.. 


나는 이틀 뒤에 리버풀 외곽에 있는 오래된 아파트 4층이었다.

시차 적응이고 첫 유럽여행의 설렘이고 간에 의미가 없었다.

꼬비와의 이별을 하느라  잠도 못 자고 먹지도 못한 상태라 죽음 같은 1주일을 보낼 수 있었다. 내가 깨어있었는지 죽어있었는지 걷고 있었는지 울고 있었는지 아득하기만 하다. 

새벽마다 집 앞 공원의 호수에 가서 해뜨기 전의 안개들을 보고 있었다.  고요한 잔디밭에서 조용히 불러봤다.  

꼬비! 일로와.  

백 번은 넘게 불러봤던 것 같다.

안개 너머로 꼬비가 작은 한 점으로 나타났다가 다다다 다닷! 내 앞으로 뛰어 나 올 것 만 같았다. 반갑게  내 허벅지로 점프해올 것만 같다.  그래야만 했다. 

꼬비라는 존재가 나의 인생에서  어떤 순간의 막을 찬란하게 열어줬다면 이제 꼬비는 한 장의 막을 닫아 주고 들어갔다는 생각이 들었다. 

꼬비는 너무도 건강했었고..  죽을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 의미가 무엇이었을까?

꼬비가 문을 닫고 들어가며 나의 안 좋았던 기억들과 아픔도 함께 데리고 들어가 주었다. 

다시 새롭게 시작해보라고.. 그것들을 다 안고 문을 닫아주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도 절묘하게  내가 처음 가는 유럽여행 직전에. 


인도의 시바신은 파괴의 신이면서 창조의 신이라고도 한다. 

창조하기 위해선 기존의 것들을 파괴해야 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2017년을 기점으로  나의 삶은 많이 달라졌다. 크게는 꼬비가 있는 삶과 없는 삶이지만 많은 것들을 정리해야 했었던 시간이었다. 그 와중에 아빠도 돌아가셨다.  사기꾼 남자 친구로 인해 돈도 바닥이었고 인간관계는 초토화되었다. 

말 그대로 GROUND ZERO

1년의 절반은 일만, 절반은 혼자 여행만 다니며 인간관계와 삶의  방식들을 최대한 단순하게 만들었다.  새로운 시작을 하기 위해서  필요한 과정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토록 염원했던 유럽여행을 집중적으로 다니기 시작하였다. 

첫 여행은 2017년 6월 2일에서 8월 27일까지(영국 독일 오스트리아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였고 

두 번째 유럽여행은 2018년 2월에서 3월(영국 아이슬란드) 

세 번째 유럽 여행은 2018년 6월에서 9월 초(영국 독일 덴마크 네덜란드)

네 번째 유럽 여행은 2019년 5월 말에서 7월 초 (영국  프랑스) 이렇게 총 4회였다.  

틈틈이 2017년 겨울 3개월은 태국과 미얀마를

2018년 겨울 3개월은 태국 일본을 

2020년 2월과 3월엔 코로나의 광풍이 몰아치기 직전 발리를 다녀왔다. 

2020년에도 미국을 처음으로 갈 계획을 하고 있었는데 모두가 알다시피 코로나로 인하여 나갈 수 없는 상황이 되었고 내 삶에도 많은 변화가 왔다. 

이제 지난 긴 여행의 시작을 돌아보며 여행을 정리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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