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연 Nov 20. 2022

최종 사업화 승인

사내벤처의 결말, 그리고 또 다른 시작  

어느새 1년의 사내벤처를 마무리해야 하는 순간이 찾아왔다. 매번 보고 자료를 맡아 만들다 보니 본사 담당 팀에서는 나를 주필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보고 철이 돌아오면 맨날 주필의 의견은 어떠냐고, 매번 주필이 보기엔 어떠냐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항상 내가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귀 기울여주시고,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표현하고 싶은 바를 더 잘 표현해주기 위해 정말 많은 도움을 주셨다. 


처음 결성 당시에도 최종 사업화 승인이 될 경우에는, 사업 성공 지원금 인당 1,000만 원이 주어지며 우리는 이 사업을 계속할 수도, 하차해서 희망부서로 갈 수도 있는 선택권도 주어진다는 조건으로 사내벤처에 합류했었다. 그러니까 우리의 내년도 운명 결정전인 셈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주필로서도 여태 1,2차 보고보다 더 복합적인 고민들과 부담감이 밀려왔다. 


이 시기와 맞물려 처음 시작한 MBA중간고사 기간까지 겹치면서 아침저녁으로 밀려오는 각종 부담과 내가 계속 이걸 하는 게 맞을지에(이때는 계속될지 안될지도 몰랐지만) 대한 고민 등 여러모로 신경 쓰일 것들이 너무 많았다. 그리고 본사와의 사내벤처의 앞날을 생각해보자는 처음 미팅을 마치고 난 오후에 나는 갑자기 급성 편도선염으로 열이 확 오르고 아파서 조퇴하고 다음날도 회사를 가지 못했다. 이런 경험은 또 처음이었다. 


본사가 생각하는 사내벤처의 미래는 크게 4가지라고 하셨다. 

1. Spin-off (분사) 2. CIC (사내 독립기업) 3. 사업 내제화(유관 사업부 or 전담 조직) 4. 자체 종료 

그리고 사업 성공으로 간주될 수 있는 것은 3번까지 생각한다고도 하셨다. 우리 회사는 사내벤처 자체가 처음이어서 경험이 없었으며 반경을 더 넓혀서 그룹사로 봐도 1번 분사한 케이스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다. 


2번 케이스는 제일제당에 존재한다고 하여 인맥을 동원하여 관련 담당자에게 간단하게 물어봤다. CIC로 명명하지만 내가 이해한 내용으로는 사내 부서나 다름없었다. 또한 제품이라는 아이템을 보유하고 인프라 활용이 즉시 가능한 제당과 달리 플랫폼 모델을 기획한 우리에게 현재 파일럿 테스트를 위한 MVP정도 보유한 우리가 분사하기에는 시기상조라는 개인적인 판단도 들었다. 


그렇다면 3번이 최선이라는 건데 여기서도 고민이 많이 됐다. 본사에서 제시해준 건 세일즈 조직에 가면 실적 압박을 받을 순 있겠지만 동시에 협조나 시너지 측면에서도 부스팅을 받을 수 있다고 설명 주셨다. 또한 전담조직 밑으로 갈 경우에는 협업이 원활하지 않을 수 있으며 현재 형태에서 기간 연장 느낌일 수도 있을거라 하셨다. 그러나 3번 외에 다른 선택지로 가기에는 우리의 준비상태가 역부족이었다. 수많은 달콤한 응원과 격려 속에서 내 기준 팩트는 이 사실이었다. 우리는 아직 가진 게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  


결국 CIC가 되기 위한 프로젝트 팀으로 승격받아, 일정 기간 동안 정식 조직화하여 사업을 더 디벨롭해보는 방향으로 사업화 승인을 받기로 했다. 왜냐하면 이 사업은 여태까지 회사가 가지고 있던 사업의 성격도 아니였기에 존재한다면 CIC가 맞다는 판단이 강하게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업화 승인이 나면 우리가 제시한 투자금액과 요청한 지원들에 대한 승인으로 간주하여, 파잇을 정식으로 구축해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것으로 가부 결정을 받기로 했다. 


최종 사업화 승인 보고인 만큼 피드백도 프레젠테이션도, 그리고 발표하는 스킬, 장소의 세부적인 조건 하나하나도 이전과는 다르게 더 꼼꼼히 확인했다. 자료의 전반적인 스토리라인에 대해서도 열띤 토론과 정말 몇 번을 논리적 흐름에 어떤 것이 가장 적합할지도 수없이 고민했으며 재무 계획 숫자도 몇 번을 다시 확인했다. 


보고를 준비하다 보면 1,2차 때도 어느 순간 내가 만든 자료에 내가 찌르르하며 감격이 오는 순간이 있었는데 이번 보고 때는 발표자의 발표를 들어도 별 감흥이 없어 내 자신이 불안하기도 했지만 최종 보고를 하루 앞둔 리허설 날, 드디어 1,2차 때와 같이 내 마음에 확 와닿는 순간이 드디어 왔다. 그 순간 이제 자신감은 만땅 충전되었다고 생각했다. 내일 대표님 하 11인의 경영진 앞에서 나는 이 사업을 계속해볼 거라고 말할 결심이 섰다. 


드디어 최종 사업화 승인 보고 날이 밝아왔다. 본사 담당 팀장님이 발표하신 내용도 인상 깊었다. 이렇게 아군을 많이 두고 하는 전투라 다행이라는 안도감이 들었다. 사내벤처를 기획하며 가장 많이 염두하고 언급한 단어는 다름 아닌 '가능성과 잠재력'이라고 하셨다. 그리고 그 두 단어는 다음 페이지에서 '미래와 인재'라는 단어로 바뀌었다. 그러면서 이 두 단어가 바로 컨퍼런스룸 경영진 뒤에 적혀 잇는 2022년 회장님 경영방침 제일 첫 문장에 있는 핵심 두 단어라고 하셨다. 


대표이사님 이하 경영진 보고에서 초입에 우두머리들의 우두머리 갓 오브 갓 회장님의 경영 방침을 이렇게 물 흐르듯 언급 해버리다니, 영리하게 판을 이끄는 건 이렇게 하는 거구나 하고 한 수 배우는 느낌이었달까, 나름 감동이 밀려왔다. 


사내벤처 1기이기 때문에 엉성한 운영과 시행착오가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이지만 성공 사례를 만들기 위해 그리고 이 사내벤처 제도를 지켜내려 하는 모든 이들의 바람과 의지 덕분에 온 우주가 우리의 성공을 바랐다. 그리고 열정적이고도 안정적인 피칭을 마치고 경영진의 끝도 없는 질문에 쨉을 몇 방 맞기도 했고 침묵이 올뻔한 순간도 있었지만 무사히 지나갔으며 그리고 이 글을 쓰는 지금은 일요일이지만, 지난 목요일 드디어 대표님의 의사결정도 끝났다. 


최종 사업화 승인을 받았다. 연내로 우리 개인의 통장엔 1천만원의 격려금이 지급될 것이고,우리의 파잇은 더 이상 우려대로 추억의 한 페이지가 아닌 살아 있는 사업으로 탄생할 수 있게 되었다. 비록 내부이긴 하지만 내 인생의 첫 투자 유치를 성공적으로 마쳤다고 기록해본다..!


사업화 승인받은 지금의 나의 소감은 어떠냐고 묻는다면 사실 기쁨보다 앞으로의 막연함과 두려움이 더 큰 게 솔직한 내 심정이다. 앞으로 이 프로젝트팀을 어떻게 넷이 함께 꾸려가야 할지, 어느 길로 들어서야 이다음에 우리가 원하는 바를 혹은 내가 원하는 바를 얻을 수 있을지에 대한 막막함에 사업화 승인을 크게 기뻐하지 못한 게 솔직한 내 마음이다. 


창업자들이 투자 유치 후에, 투자 유치가 되었다는 행복감도 있겠다마는, 앞으로 받은 만큼 그 이상의 성과로 돌려줘야 하는 까마득함도 공존한다는 사실을 몸소 깨달았다. 이런 복합적으로 복잡한 심경이지만은 그래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하는 기록이 이 브런치 매거진의 마지막 글이 아닌 또 다른 챕터의 시작을 알릴 수 있는 글임에 감사한다. 


앞으로 나도 어떻게 될지, 내가 무슨 일을 벌인 건지,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아무것도 종잡을 순 없지만 늘 그래 왔듯 내 앞에 놓인 과제들을 물리치다 보면 적어도 지금보다는 조금 더 큰 그릇의 내가 있기를 바라보며 오늘만은 앞으로의 걱정보단 그동안 수고한 우리에게 진심 어린 박수를 보내며!!!!! 이제 본사에서 정식 프로젝트 팀으로서의 기록을 해보기로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드디어 신메뉴 펀딩 플랫폼, PIEAT을 출시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