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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르몬트 Apr 07. 2024

봄 : 4월 이야기

시작을 담은 영화

이와이 슌지, 4월 이야기 (원제: 四月物語), 1998.




봄이 되면 찾게 되는 것들이 있다.

차가운 공기가 포근하게 바뀌어갈 때 얇은 옷만을 찾게 되는 것이 아니라 봄의 분위기에 맞는 것들을 찾게 되기 마련이다. 내게는 이와이 슌지 감독의 <4월 이야기>라는 영화가 꼭 그렇다.


이 영화는 시작과 그 설렘으로 가득 차 있다.

한국은 꽃샘추위가 미처 가시지 않은 3월에 새 학기가 시작되어 아직은 추운 계절에 새로운 시작을 하는 느낌인 반면, 일본은 벚꽃이 흩날리고 봄의 햇살이 비추는 4월에 신학기가 시작된다. 그 안에서 영화 속 우츠키(마츠 다카코)는 새로운 시작을 함께 하는 인물이다. 도쿄의 대학에 합격하게 되어 고향인 홋카이도에서 가족들과 작별인사를 하는 우츠키는, 벚꽃이 마치 눈처럼 내리는 곳에 홀로 스무 살의 봄을 시작한다.



집에 다 들이지 못해 무엇을 버려야 할지 모를 이삿짐들, 옆집의 닫혀 있는 문, 신학기에 어김없이 찾아오는 낯선 이들 앞에서 나를 소개하는 것. 갓 스무 살의 우츠키에게는 모든 시작은 그저 어렵기만 하다. 이렇듯 새로운 사람들과 캠퍼스에 뒤섞여 있는 장면들은 무척 흔들리며 보인다.



하지만 <무사시노>라는 서점을 향하는 그녀의 얼굴에는 낯섦과 당혹스러움이 담겨있지 않다. 새로운 환경이 서툴기만 한 우츠키에게 이 서점은 어떤 의미일까. 그녀의 얼굴엔 기대와 무언의 설렘으로 가득하다. 그녀를 실은 자전거는 시원한 바람을 지나며, 맑은 햇살이 그녀의 웃음에 빛을 더한다.



봄날의 벚꽃이 오래 머물지 않고 금세 지는 것처럼, 이 영화도 짧은 러닝타임을 가지고 있다. 이야기의 구성이 기승전결의 네 박자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면, 이 영화는 기-승에서 끝난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어찌 보면 다소 허무하게 끝난다. 고등학생 시절 마음에 담고 있었지만 말 한마디도 건네지 못한 선배를 다시 만나고 싶다는 일념 하나로 도쿄에 온 우츠키가 결국 서점에서 일을 하는 선배를 만나게 되고, 갑작스러운 소나기에 선배가 그녀를 위해 서점에 굴러다니는 주인을 잃은 망가진 우산들을 하나씩 펼쳐 내며, 그런 선배의 허둥지둥하는 모습에 어찌할 바를 몰라 비를 맞으며 가만히 서 있고는, 결국에 그나마 덜 망가진 우산을 받곤 '그럼 다음에 돌려드릴게요'라고 활짝 웃으며 돌아서며 영화는 끝이 난다. 그렇기에 우츠키가 결국 선배에게 우산은 돌려주었는지, 그 이후로 선배와 진전이 있었는지, 우츠키의 대학 생활은 어떻게 흘러가는지를 우리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말하지 않았던가. 이 영화는 시작을 담고 있는 영화라고. 1년에 4월이라는 한 달이 짧듯, 시작은 내가 느끼지 못할 새 금방 지나가 버린다. 우츠키가 첫사랑의 선배를 만나 비로소 말을 건네는 순간, 이미 이야기는 시작되어 버린 것이다.


4월 한 철이 가면 곧 5월이 오고, 금세 지루하게 이어질 여름날이 올 것이다. 하지만 시작의 설렘을 가져다준 봄은 그렇게 허무하게 끝난다. 다시 새로운 시작의 느낌을 가지고 싶다면, 우리는 내년의 봄을 기다릴 수밖에 없다. 그 사이에 우츠키와 우리는 사랑을 할 수도, 그 사랑에 실패할 수도,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수도, 아닐 수도 있는 하루하루를 살아갈 것이다.



그렇지만 다시 봄이 올 것이다. 거기에는 분명히 또 다른 새로운 시작이 있을 것이다.

다소 낯설고 어색하지만, 시작이라는 단어 자체로 느낄 설렘이 다시 다가오길 기다리며, 4월의 기적이 다시금 내게 비추길 바라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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