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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르몬트 Apr 13. 2024

봄 : 걷기왕

그냥 걸어도 된다고 말하는 영화

백승화, 걷기왕, 2016




전부터 마음에 담아두었던 시가 있었다. 이규경 시인의 <용기>라는 시인데, 시는 이렇게 말한다.


넌 충분히 할 수 있어
사람들이 말했습니다
용기를 내야 해 사람들이 말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용기를 내었습니다
용기를 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못해요


영화의 포스터를 보면 언뜻 목표를 가진 소녀가 달성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스토리일 것 같다. 노력하며 좌절의 과정도 겪고, 그걸 다시 극복하고, 모두가 다 해피엔딩! 이런 류의 성장 영화의 전형을 따를 것이라 생각했건만.



만복은 타고나기를 멀미에 취약해서 아무리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교통수단 없이 오로지 자신의 발만으로 걸어 다닌다. 꿈도 없고 열정도 없는 만복은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을 것 같은 일을 찾게 된다. 바로 경보. 속도에 민감한 그녀에게 딱 맞기도 하고, 왕복 몇 시간씩 걸리는 등교와 하굣길을 늘상 다녀왔으니 소질도 있어 보인다. 이제는 장래희망에 대한 고민은 사라질 줄 알았는데.



그런 그녀 앞에, "정말로" 열심히 노력하고 목표의식이 뚜렷한 학교 선배 수지가 등장한다. 수지는 본래 국가대표 후보로도 꼽힐 정도의 우수한 육상선수였는데 부상을 당해 육상을 대신하여 선택한 운동이 바로 경보였던 것. 그녀에게는 못 이룬 꿈이 있으니, 그저 적당히 학교수업 피해 운동장 몇 바퀴 돌고 적당히 담임의 잔소리로부터 방어할 수단으로써 경보를 시작하게 된 만복이 수지의 눈엔 곱게 보일리 없다. 그때부터 수지는 만복을 삐딱하게만 대한다.


만복은 서울에서 열린 대회를 멀미의 후유증으로 말아먹은 뒤 경보를 그만둔다. 노력파 수지가 아무리 갈구어대도 본인의 적성에 맞을 거라 생각했건만 난생처음 겪어보는 실패가 쓰라리고, 수지의 삐딱선을 탄 말들이 이제는 팩트폭행으로 다가온다. 그래, 나는 수지 선배만큼 그렇게 경보에 열의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그만둬야지. 그렇게 원래의 만복으로 돌아왔음에도 만복은 어쩐지 마음이 편하지 않다. 그리고 하나의 생각이 움튼다. 진짜 열정을 갖고 해 본다면..?



선수권대회에 출전하겠다는 일념 하나로 만복은 이제까지의 설렁설렁한 태도를 던지고 본격적으로 훈련에 임한다. 열심히 하는 사람은 알아보는 법이라고, 수지 역시도 만복의 달라진 태도를 보며 자신 역시도 만복에 대한 선입견을 지우며 만복을 옆에서 도와준다. 급기야는 대회가 열리는 서울까지 걸어가겠다는 만복의 무모한 계획에 기꺼이 합류하기도 한다.


그리고 대회 당일날. 만복은 지금껏 땀 흘리며 발톱이 빠지도록 노력했던 자신의 모습과 자신 때문에 대회에 출전하지 못한 수지에 대한 미안함 때문에 초반부부터 무리를 해서 속도를 낸다. 중계석에서는 그런 만복을 보며 연신 떠든다. '초반부터 저렇게 스피드를 내면 나중에 힘들어져요.' 다른 참가자들 역시 조바심에 만복을 따라잡기 위해 무리한 레이스를 이어간다(나는 이 장면이 현대의 무한한 경쟁사회를 연상시키는 것 같아서 인상 깊었다). 그러다가 한 참가자가 체력을 이기지 못하고 쓰러지고, 다른 참가자들까지도 도미노처럼 발에 걸려 모두 넘어져버린다.


이내 참가자들은 정신을 차리고 레이스를 이어가는 반면, 만복은 누워서 생각한다. 내가 왜 그렇게 무리해서 빨리 달렸을까? 생각에 잠겨 있던 만복에게 운영위원이 다가와 묻는다. 계속 달릴 거예요? 여기까지 들었을 때 사람들은 아마 엔딩의 내용을 안다고 자부할 것이다. 성장영화란 자고로 주인공이 무언가 성취하며 끝나기 마련이니까. 만복도 다시 일어나서 결국은 1위를 탈환하겠지. 하지만 이어지는 만복의 대답은 이런 예상을 깨뜨린다. "아뇨. 그만할래요." 아예 대자로 누워 버리는 만복의 얼굴은 영화 속 나왔던 만복의 모습 중 가장 화사하고 밝다. 그런 그녀를 TV 생중계로 지켜보던 수지 역시도 따라 웃고 만다.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어쩐지 위에 써놓은 이규경 시인의 시가 떠올랐다. 시작하고 그것을 이끌어가는 것도 용기이지만 못 한다고 그만두는 것도 엄청난 용기인데도, 후자에 대해서 사람들은 그것이 용기라고 잘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개그맨 유병재가 한때 일갈했던 멘트가 기억이 난다. 아프면 왜 청춘이냐. 아프면 환자다. 한때 유행을 끌었던 책의 제목 <아프니까 청춘이다>에 따라 아파도 참으라 말하는 사회에 대한 비꼼이었다. 이 영화 역시도 같은 메시지를 담고 있지만 풀어내는 방식이 신선하고 앙증맞다. 아프면 쉬어야 하고, 달리다가 숨이 차면 그냥 걸으면 된다. 그런 단순한 공식을 영화는 만복이라는 아이의 과정을 통해 보여준다. 누군가는 멀미가 있어 빠른 속도를 견디지 못하고 누군가는 오토바이를 타고 활개를 치는 속도광일 수 있듯이, 사람은 각자에게 맞는 속도가 있다. 그 속도에서 많이 벗어나게 되면 누구든지 힘들 수밖에 없다. 그러면 당연히 취할 수 있는 건? 내 속도에 맞추는 것 그뿐이다. 남들이 뭐라 하면 그때는 이렇게 말하도록 하자. 용기를 내어 말합니다. 나는 못해요!


덧_ 만복과 수지의 케미는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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