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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rah Mar 15. 2021

삶을 가르쳐 준 인연들 2

암에 걸린 부부.

오래전, 수술실 간호사란 직업으로 한동안 일반외과 암수술에만 집중적으로 들어갔는데, 어느 날 아침 첫 수술로 유방암 환자의 유방 절제술에 들어가게 되었다.

보통은 수술 전 CT나 MRI를 통해 암의 진행 여부를 대충은 파악하고 수술에 들어가서, 직접 열어보고 필요하면 조직을  응급으로 frozen을 보낸다거나, 수술 시 적출된 조직들을 병리과에 보내 대략 일주일 후, 암의 병기 (stage)를  알게 된다.


아침 첫 수술, 환자 이름과 혈액 결과지를 확인하고 수술에 들어갈 때 까진 늘 그래 왔듯이 익숙한 과정 들일 뿐이었다.

환자 나이는 40대였던 걸로 기억하고, 특이점도 기억나지 않는, 우리가 길에서 흔히 마주칠 법한 평범한 인상이었다.


수술이 시작되고 외과 과장 선생님께서 조직을 박리하고 절제하기 시작했다. 유방암은 겨드랑이 쪽 임파선을 타고 다른 장기로 전이가 되기도 하고, 임파선까지 암세포가 갔느냐 안 갔느냐가 수술 후 환자의 치료방법이라던가 예후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겨드랑이 쪽 림프조직을 떼어내 조직검사를 하는 건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림프조직을 떼어내기 위해 겨드랑이 쪽으로 박리를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발생했다.

커져버린 암세포가 일반 조직과 뒤엉켜서 일반적인 해부학 구조는 도저히 찾아볼 수 없는 상태였다.

수술실 모자 위로 스며든 땀이 모자를 적시고 이마에서 눈까지 흘러내려, 땀 좀 닦아달란 말을 여러 번 하면서도 외과 과장님께선 어떻게든 조직을 제거하려고 애썼지만, 시간만 흘러갈 뿐 도저히 건드릴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circulating 간호사에게 밖에 보호자 계신지 묻더니, 보호자 수술복으로 갈아입혀서 잠깐 들어오시게 하라고 요청했다.

사실, 이런 일들은 다반사라 나는 그때도 더 이상 진행 못하고 닫겠다는 설명을 하려나보다.. 했었다.

다른 보호자들처럼, 태어나 처음 들어와 보는 수술실에 겁을 잔뜩 먹고 긴장한 보호자가 간호사를 따라 수술방에 들어왔고, 감염의 우려 때문에 거리를 둔 채로 선생님은 결국 박리에 실패한 겨드랑이 쪽을 보여주며  설명을 해나가기 시작했다.


"○○○씨 보호자 되세요? 남편분이시죠?

여기가 보시다시피 겨드랑이 쪽이고요, 이쪽 임파선을 타고 암이 다 조직을 먹어버렸어요. 돌처럼 뭉쳐진 게 다 암 덩어리거든요? 이게 완전히 엉켜서 억지로 떼어내려고 하다가는 커다란 혈관을 자르게 돼서 과다출혈로 수술방에서 돌아가실 수도 있어요. 그래서 일단 여기 조직은 절제가 불가능해요. 오늘 수술은 여기서 끝낼 거예요. 그거 보여드리려고 들어오시라고 했어요.

이제 나가셔서 기다리시면 수술은 30분 정도 후 마무리되고 회복실로 가실 거예요."


사실 이 과정들도 너무 익숙하다.

잔뜩 얼어붙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거리거나, 나가서 기다리라고 하면 영혼이 털린 표정으로 별 반응 없이 돌아서서 간호사를 따라 나간다.


당연히 그런 과정들을 거쳐 나가겠거니.. 하고 다시 수술 필드로 눈을 돌리는데, 환자의 남편이 수술실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다들 놀라 보호자를 쳐다보는데, 남편이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 살려주세요.

작년부터 가슴에 멍울이 만져진다길래, 제가 병 키우지 말고 병원에 가보라고 했어요. 그런데 제가 능력이 없어 같이 벌어본다고 남의 집 아기 키워주고 살림해주느라 병원 못 갔습니다. 애들 키우고 먹고 사느라 이지경이 되도록 자기 몸 하나 건사하지 못했는데, 제발 살려주세요.

저도 다음 주 월요일에 폐암 수술받으러 A의료원에 입원합니다. 저희 집 애들 큰애가 이제 중학생, 둘째가 초등학생이에요. 저야 죽어도 어쩔 수 없지만 엄마는 살아야 되잖아요. 딸애들한테는 엄마가 있어야잖아요. 이렇게 부탁드립니다. 제발 살려만 주세요."


다들 입을 다물고 보호자만 가만히 응시하고 있는데, 외과 과장님께서 차분하고 단호한 어조로 말씀하셨다.

"보호자분 딱한 사정은 잘 알겠는데, 여기서 억지로 떼내려다가는 아내분 지금 수술방에서 돌아가실 수도 있어요. 예후는 제가 수술 끝나고 말씀드릴 테니 여기서 나가주세요. 환자분 마취 오래 해서 좋을 것도 없고, 얼른 수술 끝마쳐야죠."

말이 끝나자마자 남편한테는 눈길 한 번 안 주고 다시 수술에 집중했고, 일어나시라는 간호사 말에 힘겹게 일어나시더니  눈물을 흘리시며 고개를 푹 떨구고 나갔다.


무거운 침묵 속에 숨이 막힐 때쯤.. 나는 외과 과장님의 붉어진 눈을 보았다. 다들 눈치는 챘지만 모른척하고 수술 마무리 중일 때 과장님은 말씀하셨다.

"이 환자분이 수술 전에 나한테 뭐랬는지 아니? 남편이 폐암인데 자기는 아무래도 죽을 것 같으니 폐까지 퍼지기 전에 자기 폐를 남편한테 이식해주면 안되냐더라. 양쪽 다 줘도 된다고. 수술실에서 다 떼주고 죽어도 정말 좋다면서. 그럴 수만 있다면 기쁘게 저 세상으로 간다면서.

야. 신이 계시다면 진짜 이런 착한 사람들은 좀 서로 아끼며 살게 내버려 둬야 되지 않니?

오늘 수술 들어오면서 제발 잘 되게 해 달라고 기도했건만, 나는 이럴 땐 신이 가혹하다 싶어서 무기력해져. 내가 할 수 있는 게 뭔가 싶다."


오래전이니..  아마도 아내분은 돌아가셨을 확률이 크다.

긴 시간이 흘렀음에도.. 그 장면만 떠올리면 여전히 가슴이 아리고 아프다.  어린 자녀를 두고 가야만 하는 아픔, 어쩌면 내 아이가 부모를 모두 잃을지도 모른다는 막막함, 나는 죽더라도 배우자만이라도 살리고 싶은 애절함.

죽어가는 서로를 보는 심정은 어떠했을까.

나는 죽더라도 꼭 당신만은 살아 아이들을 지켜주길 얼마나 애타게 기도했을까.


처절한 사연들 앞에선 나도 분노한다.

정말 신이 계시다면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뭔가에 대해. 사랑이 많은 신이라는 존재가 이렇게까지 잔인한 이유는 뭔가에 대해.

 

두 분의 평안함을.. 경건하게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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