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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우 에디터 Jan 11. 2023

트레이시 에민이 성관계한 침대를 전시한 이유

불량소녀에게도 나약한 모습이 있다

트레이시 에민의 첫 등장

 위에 앉은 트레이시 에민 © The Times

트레이시 에민은 선정적인 논란으로 주목받아, 오늘날 높은 가격에 거래되는 작가입니다. 작품 평균가는 7억 7천만 원, 최고 낙찰가는 55억 원에 달하죠. 금액적인 성과뿐만 아니라, 영국 내에서는 데미안 허스트보다 더 많은 인정을 받고 있습니다. 브랜딩의 측면에서, 그 누구보다 뾰족하고 정확하게 자신을 디자인했기 때문이죠.


본인의 성생활을 예술 작품으로 풀어낸 자전적이고, 자극적인 작가 트레이시 에민. 그는 어떻게 셀프 브랜딩을 구축했을까요?


마크 퀸의  © Huffpost / 데미안 허스트의   © Gagosian Gallery

트레이시 에민이 처음 세상의 주목을 받았던 건, 1997년 열린 <Sensation> 전시였습니다. 이 전시는 박제상어로 인기를 끈 데미안 허스트가 찰스 사치와 손잡고 영국왕립아카데미에서 진행한 전시인데요. 전시회는 제목처럼 센세이션 했습니다.


대표적으로는 마크 퀸의 <Self (1991)>가 있었습니다. 이 작품은 예술가가 자신의 혈액을 뽑아, 본인 얼굴 두상 모양대로 얼린 작품이었죠. 데미안 허스트는 박제 시리즈, 정식 명칭으로는 자연사 시리즈를 선보였고요. 

라데트 문화를 가장 잘 보여주는 사진 © The independent

시각적으로 충격을 주는 작품도 많았지만, 사회적으로 충격을 주는 작품도 있었습니다. 이 당시에는 '라데트 Ladette' 문화가 영국 전역으로 확산 중이었습니다. 라데트는 젊은 여성이 마치 남성처럼 난폭하게 행동하는 걸 의미해요. 당시 강한 여성에 대한 동경이 퍼지며, '라데트족'이라 불리는 여성을 쉽게 볼 수 있었습니다.


라데트족은 '남자가 할 수 있는 일은 여자도 할 수 있고, 심지어 더 잘할 수도 있다'라고 생각했습니다. 또, 남자보다 더 '섹스, 술, 마약'을 많이 즐길 수 있다고 봤고요. 원한다면 언제든, 누구에게든 무례하고 거칠게 굴어도 된다고 믿었습니다. 이런 여성들은 영국의 바에서 큰 소리로 건배를 외치며 존재감을 어필했죠. 이것이 당시의 분위기였고, 이런 분위기 속 트레이시 에민이 등장했습니다.



불량소녀 캐릭터 브랜딩

트레이시 에민 © Aware Woman Artists

에민은 라데트족의 1인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누구나 라데트 문화를 즐기는 풍조 속, 눈에 띄려면 보다 강력한 브랜딩이 필요했습니다. 이에 에민은 새로운 페르소나를 만듭니다. '마게이트에서 온 미친년 트레이시'였죠.


에민은 이 페르소나에 몰입하기 위해, 방송 인터뷰가 있으면 생방이든 녹화 방송이든 상관없이 술을 잔뜩 마시고 취한 채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트레이시 에민의 봄베이 진 광고와 맥주 광고

덕분에 에민은 '봄베이 진'광고에 모델을 하기도 했습니다. 광고 문구에는 '봄베이 진만큼이나 불량한 소녀들'이라는 문구가 들어가 있었죠. 2000년에는 누드로 맥주 광고를 찍기도 했습니다.


두 편의 술광고로 에민은 팬을 끌어모으며, 불량소녀로서의 이미지를 강화하게 됩니다. 라데트족보다 더 강력한 이미지였죠. 인터뷰든 광고든 매체를 통해 보여준 에민의 페르소나는 '트레이시 에민'이라는 예술가의 홍보에 큰 도움이 됩니다.  

세라 루커스와 트레이시 에민 / The Shop에서 판매하던 티셔츠 © The Shop

이후 에민은 온라인뿐만 아니라 오프라인으로 브랜딩을 확장합니다. 라데트족의 또 다른 대표 예술가, 세라 루커스와 함께 가게를 열었죠. 가게 이름은 무난했습니다. The Shop. 하지만 판매하는 굿즈는 그들의 정체성을 제대로 보여줬습니다.


다양한 문구를 새긴 티셔츠가 대표적이었는데, 여기에는 '상 또라이', '니 정자 굵다', '나 진짜 흥분했어' 등의 문구가 적혀있었죠. 노골적이고, 과감했습니다. 에민의 불량소녀 이미지를 부각하기에 아주 적절했죠. 



성생활을 전시하다

My Bed (1998) © Image Journal

다시 <센세이션> 전시로 돌아와서, 이 전시에서 에민이 주목받은 작품은 <나의 침대 My bed (1998)>이었습니다. 언뜻 더러워 보이는 침대일 뿐이지만, 그 안에 담긴 이야기는 누구보다 진솔했습니다. 작품을 자세히 살펴보면, 작가가 성관계 후 얼마나 혼란스러운 심리상태였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빈 보드카 병, 슬리퍼, 속옷, 구겨진 담뱃갑, 콘돔, 장난감, 폴라로이드로 찍은 사진, 생활 쓰레기들.


실제로 에민은 당시 불안한 마음에 사흘동안 내리 침대에 누워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기간 동안 만들어진 침대의 모습을 그대로 전시했죠.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밑바닥까지 갔던 때의 순간을 노골적으로 전시하면서, 섹스, 여성,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았습니다. 성적으로 자극적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상실감과 연약함이 느껴지는 이유입니다. 자전적이면서 노골적으로 에민이 제시한 이야기는 당시 관객들에게 큰 충격을 자아냈죠. 

Everyone I Slept With (1995) © South London Gallery / 롱샴 핸드백 © Longchamp

이 작업과 같은 맥락으로 1995년에 진행한 작업이 <나와 같이 잔 모든 사람 Everyone I slept with>입니다. 이 작업에서는 작가가 그동안 침대를 공유한 모든 사람의 이름을 바느질로 엮어낸 것이 특징입니다.


전통적으로 바느질, 수공예는 여성의 전유물이었습니다. 여성성이 가장 잘 드러나는 매체라 여겨지죠. 에민은 이 재료를 통해 여성이 말하는 성관계의 의미를 강조하고자 했습니다. 그리고 이를 '텐트'라는 사적이고 어두운 공간을 통해 보여주며 자전적 느낌을 강화했죠. 이 작업은 후에 롱샴의 한정판 핸드백으로 판매되기도 했습니다. 



브랜딩 아래 숨겨진 실력

자신의 작품 앞에 선 트레이시 에민 © Wikipedia

술에 취해 사는 예술가, 자신의 성생활을 전시하는 예술가. 이런 이미지는 트레이시 에민을 계속해서 '불량소녀'라 불리는 데 이바지했습니다. 때문에 트레이시 에민을 '사기꾼'이라 보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술에 취해 스스로를 통제하지 못하고, 문란한 성생활을 즐기는 여성이 그저 사생활을 팔아 돈을 번다고 보는 것이었죠. 작품이나 예술가의 가치는 역사가 판단할 일입니다. 하지만, 트레이시 에민이 사기꾼 취급을 받을 정도로 실력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드로잉 작업 앞의 트레이시 에민과 그의 작업실 © Financial Times

작품을 살펴보면, 에민은 기본적인 그림 실력이라 여겨지는 데생 능력이 매우 뛰어납니다. 자기 과시적이고 고백적인 작품 특성으로 인해 그 실력을 보여줄 일이 많지는 않았지만, 이처럼 직설적으로 본인을 고백하는 표현 능력을 간과해선 안됩니다. 에민은 자신의 경험과 이를 전달하는 방식에 대해 누구보다 명료한 이해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죠. 

화이트큐브 갤러리의 제이 조플링  © The Times

또 에민은 상당한 실행력을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노동자 집안에서 태어나 아르바이트를 하며 미술대학을 다녔던 에민은, 종종 글을 썼습니다. 그리고 1992년에 150명의 현대미술 투자자에게 편지를 보냅니다. 본인의 잠재적 능력을 보고, 투자를 해달라는 내용이었죠. 그리고 에민은 각 투자자들에게 10파운드 (한화 약 1만 5천 원)씩을 받았습니다. 이후 에민은 이들에게 시적이고 사적인 편지를 네 통씩 더 보내 보답했죠.


이 일은 트레이시 에민의 진취성과 자기 신념을 보여주는 이야기로 불립니다. 큰돈은 아니었지만 이후 에민은 작품 활동을 계속 이어갈 수 있었고, 이 투자자 중 한 명이었던 제이 조플링은 후에 영국에서 손꼽히는 갤러리인 '화이트 큐브'를 설립하며 에민의 든든한 후원자가 되었습니다. 



사적인 걸 공유할수록, 더 가까워진다

트레이시 에민의 드로잉 작업들 © Elephant Art

처음에 내세운 불량소녀 이미지는 오래가기엔 무리가 있었습니다. 더 자극적으로 가는 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죠. 이후 에민은 더 심도 있고 친숙한 고백으로 방향성을 살짝 틉니다. 2007년 선보인 <낙태: 어떻게 생각하는가 Abortion: How does it feel now>에서 에민은 자신의 나약함을 강조합니다. 자필로 쓴 글자들과 수채화 물감을 사용해 유약한 느낌을 자아냈죠. 스케치 형식으로 이뤄진 작품들에는 발가벗겨진 채 거꾸로 걸려있는 여성, 폭력적으로 묘사된 남근 등이 그려졌습니다. 임신이라는 이슈 때문에 성관계에 있어 여전히 약자일 수밖에 없는 여성의 유약함을 강조하고자 한 겁니다. 


이 작품은 2007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전시됐습니다. 당시 에민은 영국관 대표로 나갔는데, 여성 예술가로는 두 번째였죠. 솔직하다 못해 노골적으로 자신을 보여주던 예술가는, 이제 자신의 연약함까지 전시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에민을 동정하거나 안쓰러운 눈빛으로 보지는 않게 설계했죠. 실제로 비엔날레에서 큐레이터가 에민의 작품을 설명할 때, 조금이라도 엄숙한 분위기가 형성되면 관객들은 바로 나가버렸다고 합니다. 

작업중인 에민의 모습 © Wallpaper Magazine

언론은 여전히 트레이시 에민을 악동, 불량소녀의 이미지로 봅니다. 이는 이전에 에민이 자신을 탄탄하게 브랜딩 한 결과죠. 변화해가는 사회 상황 속, 가장 주목받을 만한 작품을 내놓고 매체에 자신의 페르소나를 노출시켰습니다. 덕분에 에민은 엄청난 부와 유명세를 얻었고,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작품활동을 이어갈 수 있었죠. 강력한 브랜딩 이후, 지속가능한 작품을 위해 방향성을 살짝 트는 모습도 보였고요. 


트레이시 에민은 '스스로를 브랜드화하기 전까지, 현대미술계에서 당신은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걸 가장 잘 보여주는 작가입니다. 2013년, 트레이시 에민은 엘리자베스 여왕에게 대영제국 지휘관 훈장을 수여받았습니다. 예술가로서 이룰 수 있는 성과를 모두 이룬 셈이죠. 영국에서 가장 탄탄한 예술가 셀프 브랜딩을 보여주는 트레이시 에민, 그는 올해로 60세가 되었습니다. 지금도 계속해서 작품활동을 이어가고 있고요. 앞으로 에민은 또 어떤 작품을 우리에게 보여줄까요?

본인의 네온사인 작업 앞의 트레이시 에민 © Artnews

참고문헌

윌 곰퍼츠(2012), 발칙한 현대미술사, RHK

플라비아 프리제리(2020), 단숨에 읽는 여성 아티스트, 시그마북스




✍� 트레이시 에민의 셀프 브랜딩 사례를 흥미롭게 읽었다면, 함께 활동한 작가 데미안 허스트의 브랜딩도 살펴보세요. '박제상어' 작품을 만든 이유부터, '약국 컨셉 레스토랑'으로 200억 가량을 벌어들인 방법까지. 예술가의 브랜딩과 막대한 부를 끌어모은 이야기는 언제나 흥미로울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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