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17
가만히 앉아 있는 것이 익숙하지 않아서 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아빠가 나를 여기 두고 가면 좋겠다는 마음도 들지만 내가 아는 세상으로 다시 데려가면 좋겠다는 마음도 든다.
이제 나는 평소의 나로 있을 수도 없고 또 다른 나로 변할 수도 없는 곤란한 처지다.
p.73
"넌 아무 말도 할 필요 없다." 아저씨가 말한다.
"절대 할 필요 없는 일이라는 걸 꼭 기억해 두렴. 입 다물기 딱 좋은 기회를 놓쳐서 많은 것을 잃는 사람이 너무 많아."
‘유년기는 목구멍 속의 칼과 같아서 쉽게 뽑을 수가 없단다.’
영화 <그을린 사랑>에서 한 여자가 쌍둥이 자녀에게 이런 말을 남겼다. 유년기는 누구에게나 뽑지 못하는 칼날 같은 것인가 보다. 한때는 어른이 되면 자연히 뽑히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세상일은 마음처럼 흘러가지 않는다.
나는 내성적이며 고분고분한 아이였다. 아니, 얌전한 껍데기 속에 들끓는 마음의 용암을 느꼈어도 그걸 표출할 용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부모님은 엄격했고 자신들의 방식으로 나를 사랑했다. 나는 기대에 부합하려 애썼는데 그런 내 노력은 더 많은 사랑을 받고 싶어서였다.
울타리는 완벽하게 편안했다. 그리고 말할 수 없이 불안했다. 담배 재떨이가 날아오지는 않을까, 저녁 밥상이 엎어지진 않을까, 갑자기 아빠의 손이 허공으로 올라가진 않을까. 현관을 들어서는 아빠의 숨소리를 살핀다. 들숨과 날숨에서 그날의 일과가 배어 나온다. 바늘틈만큼이라도 불편한 기운이 감지되면 공기가 미묘하게 바뀌고 엄마의 신경도 날카로워진다.
권력이란 보통 경제력을 뜻한다. 우리 집은 돈을 버는 아빠를 중심으로 모든 게 돌아갔다. 부모님은 내가 중심이라고 말하곤 했지만 그건 아빠의 심기가 좋을 때, 엄마가 아빠와 할머니 때문에 괴롭지 않을 때에 한해서다. 그리고 그런 순간은 거의 없다.
상황이 안정적이라고 느껴지면 나는 원하는 걸 요구하곤 했다. 그럴 수 있는 건 그때뿐이니까. 얻은 다음에는 순순히 부모님에게 순응해야 한다는 것도 알았다. 모든 아이들은 알고 있지 않을까. 나를 돌봐주는 어른이란 자신에게 꼭 필요한 생명줄과 마찬가지라는 것을. 생존하려면 어쩔 수 없이 그들의 말을 들어야 한다는 것을. 필요하다면 마음을 숨기고 입을 다물어야 좋다는 것도.
나는 어느새 목구멍 속 칼날을 움켜 쥔, 운 좋은 어른이 되었다. 쉽지 않겠지만 움켜쥐었으니 언제든지 칼을 뽑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피를 흘릴 만큼 흘렸으니 어떤 고통도 흉터도 남지 않길 바라고 있다. 그런데 어쩌면… 칼도 고통도 흉터도 이미 사라진 건 아닐까?
어른들은 자신의 환경을 바꿀 수 있고, 아이들은 그럴 수 없다. 아이들은 무력하며 곤경에 처했을 때 그들을 둘러싼 모든 슬픔과 불운, 분노의 제물이 된다. 그런 것을 전부 느끼면서도 어른들처럼 그것들을 바꿀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그런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해주는 건 하나의 위안, 하나의 축복이다.
- 메리 올리버, <긴 호흡>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