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말에 뭉클하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하다. 그 말을 겉으로 드러냄으로써 팔불출이 되기로 했다. 실제로 나는 가끔 어리석은 사람이기도 하니까. 늘 그런 건 아니겠지요?
지난 주말 집으로 오기 전 장모님이 아들에게 5만 원을 용돈으로 줬다. 내가 자동차를 출발하자 곧 아들은 창문을 내리고 할머니를 불렀다. "할머니~" 나는 차를 멈췄고 할머니는 다가왔다.
"할머니 이 돈 그냥 할머니 가지세요." 아들은 할머니께 돈을 도로 돌려주고 있었다. 물론 할머니는 받지 않고 웃으며 넣어두라고 했다. 아들은 대답을 삼켰다. "네..."
집에 돌아와서 아들에게 물었다. "왜 할머니께 돈을 돌려줬어?"
"그냥..."
아들은 왜 누나처럼 돈을 덥석 받으며 웃지 않고 할머니께 돌려드리려고 했을까? 너무 일찍 철든 걸까? 생각이 칠색 빛깔 무지개처럼 찾아왔다.
일요일 밤 EBS에서 영화 명량을 했다. 이순신의 유명한 연설이 시작됐다.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요, 죽고자 하면 살 것이다."
아들은 저 명문장의 전후 문장까지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말했다. 칭찬했다. 아들이 말했다. "나중에 내 아들에게도 말해줘야지" 아이들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두는 걸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상황이 좋다. 나에게도 손자 손녀가 생긴다는 말이니까.
어제는 절친 홍시기 형에게 서류를 갖다 줄 일이 생겼다. 아들에게 말했다. "아빠 홍시기 형한테 다녀올게"
나가는 나를 아들이 불러 세웠다. "아빠, 영식이 친구 홍식이 아저씨한테 말해줘. 꼭 암 다 나으라고, 그리고 내가 말했다고 하지 말고 아빠가 잘 말해."
뭉클해졌다. 4km 달려 홍시기 형을 만났다. 커피를 한잔하며 서준이의 말을 전했다. "서준이가 빨리 나으래요." 짧은 순간 내 입을 떠난 말은 감동이 되어 그의 눈에서 반짝였다.
장난기로 가득 찬 아들은 가끔 나를 말로 감동시킨다. 앞으로 아들과 하루 한 시간 안고 장난치고 대화하고 놀아야겠다. 나도 좋고 아들도 좋고. 그런데 아들이 제일 좋아하는 놀이는 싸움 놀이다. 나는 긴 베개로 싸우고 자기는 도깨비방망이로 싸운다. 최근에 규칙 하나를 추가했다. 가능하면 싸움 놀이를 안 하려는 나를 위해 아들이 당근을 하나 제시했다. 자기가 넘어지면 10초간 안을 권리를 준다고 했다. 가끔은 뽀뽀도 해준다. 싸움 놀이가 힘들긴 하지만 아들의 뽀뽀 유혹을 피하긴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