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스러기만 잔뜩 남은 여행
교토를 떠나기 전
가지 않으려던 카페에 왔다. 좋아하는 케이분샤 서점 근처에 있던 카페였다. 평일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손님은 나뿐이었고 나는 차가운 라떼와 당근케이크를 주문했다. 주문할 때 영수증 달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당근케이크를 떠먹었는데 묵직한 맛에 새삼 놀랐다. 이렇게나 진하고 두껍고 진중한 당근케이크는 처음이었다.
케이크 안에
건포도가 들어있었다.
누군가 숨겨 놓은 마음 같은
물컹하고 연약한 그러나 가장 힘 있는
마지막에는 결국 이런 게 기억에 남겠지
가져온 책을 읽었다. 문장 하나하나 너무 소중해서 페이지를 넘기는 게 아쉽고 더뎠다. 아쉬울 때마다 괜히 포크로 당근케이크를 건드렸다. 좋았던 문장만큼 쉽게 떠지지 않던 케이크. 떠나기 전의 촘촘한 시간들이 아주 달콤하고도 애틋하게 날 응원하고 있었다.
함께 많이 걷고 먹고 생각하고 보고 기댔던 지난 여행의 얼굴들이 천천히 지나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