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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가적일상추구 Oct 18. 2023

에드거 앨런 포 소네트- 과학에게(1829년작)

이게 그 시대 미국에서 나올 작품인가?

오늘은 에드거 앨런 포의 시전집을 읽다가 정말 소름 끼치는 소네트가 있기에 소개하고자 한다.


우선 에드거 앨런 포(1809.01.19~ 1849.10.07)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역시 추리소설의 이미지가 제일 먼저 떠오른다. 최초의 추리소설가로 알려져 있으며 그 자신이 추리소설이나 엽기적인 살인사건과 마치 연결이 있는 삶을 살았던 사람처럼 느껴진다. 아무래도 에드가 앨런 포를 주인공으로 한 미스터리 영화가 많고 근래에도 그런 영화가 나오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하지만 에드거 앨런 포는 샤를 보들레르에 의하여 유럽에 소개된 후 말라르메. 발레리 같은 프랑스 상징주의 작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준 위대한 작가로 남아있다.

'모르그가의 살인사건'의 탐정 듀팡은 후세 '셜록 홈스'등 추리소설의 장르를 개척하고, 그의 시(詩)는 후에 기존에 시의 한계를 무너트리고 산문시가 탄생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 주었다는 존경에 찬 평을 받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역시 시대를 앞서갔던 샤를 보들레르가 한때 집중했던 것이 저 먼 미국의 작가 에드거 앨런 포의 작품을 불어로 번역함을 과업처럼 행했던 시기가 있었던 점 그리고 그가 발굴한(?) 많은 예술가들이 후대 인정받았던 것을 떠오르면 보들레르와 에드거 엘런 포 그리고 에두아르 마네까지 살아생전 가난과 홀대로 살아냈지만 샤를 보들레르의 심미관엔 황홀함 그 자체였던 점에서 그들의 삶과 예술이 묘하게 닮았다.


이런 에드거 앨런 포의 시중 '과학에게'를 읽고 나서 그가 얼마나 시대를 앞서나갔는가를 충격적으로 느끼게 되었다. 참고적으로 이 시가 발표된 때가 1829년으로 우리나라는 정조 이후 즉위한 순조 시대이며 이후 헌종과 철종을 거쳐 고종에 이어지니 얼마나 까마득히 앞선 시간이었나!.(연대기적 생각해 보면 이후 대한 제국과 일제강점기 그리고 미 군정을 거쳐 대한민국이 수립되고 6.25전쟁을 겪고 현재 윤석열 20대 대통령이 취임하여 있으니 얼마나 아득히 멀게 느껴지는가) 

근대 이성의 승리로 회자되는 프랑스혁명이 1794년의 일로 불과 35년 전의 일이었으니 아직은 이성과 과학의 시대의 중심에서 그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 무르익기도 전에 대륙도 아닌 미국의 비주류 작가였던 사람의 작품이라고는 도저히 믿기지가 않는다.


또한 사회과학의 창시자 칼 맑스가 1818년 생으로 당시 12살에 불과한 초등학생이었고, 에드거 앨런 포가 과학이 너무나 많은 '시적 감성'(마르틴 하이데거가 1927년 발표한 '존재와 시간'에서 현대의 이성의 산물인 과학적 사고가 인간의 실존적 사유체계인 자연에 대한 경이인 '시적 감성'을 무효화하여 인간 소외의 문제를 낳았다는 여러 원인 중 한 가지로 지적)을 앗아가는 것이 아니냐는 현실에 대한 선지적이며 철학적인 사고는 소름이 돋을 정도이다.

이런 에드거 앨런 포의 소네트 '과학에게'를 감상해 보자.

에드거 앨런 포의 초상화

과학에게

 - 에드거 앨런 포


과학이여! 진정한 딸이다 옛 시절의, 너는!

바꾸잖니 모든 것을 네 응시하는 눈으로,

왜 잡아먹느냐 네가 이렇게 시인의 심장을,

독수리여, 네 날개가 아둔한 현실인데?

어떻게 그가 사랑하겠나 너를? 혹은 어떻게 널 현명타 하겠나,

네가 그를 그냥 놔두지 않는데, 헤매며

보석 박힌 하늘에서 보물 찾게끔,

그가 담대한 날개로 높이 치솟았음에도?

네가 끌어내리지 않았나 다이애나를 그녀 수레에서?

그리고 하마드리아데스를 숲에서 몰아내어

찾게 하지 않았나 은식처를 어떤 더 행복한 별에서?

네가 찢어내지 않았나 나이아드를 그녀의 연못에서,

꼬마 요정을 초록 풀밭에서, 그리고 내게서

여름 꿈, 타마린드 나무 바로 밑 그것을?


1946년 7월 1일부터 1958년까지 23차례 핵폭탄 실험을 실시한 당시 비키니섬의 모습(출처:pixabay.com)


짧디짧은 소네트이지만(소네트: 서양의 정형시로 14행의 짧은 시로 이루어진다. 각 행을 10음절로 구성하며, 복잡한 운(韻)과 세련된 기교를 사용한다-네이버 사전) 도저히 이 시를 19세기 초기의 작품으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최소한 이 시(詩)는 유럽 대륙에서 20세기 중반 정도에 나왔어야 할 시(詩)이다.


앞서 말한 과학을 사회과학에 도입한 마르크스는 초등학생이었고, 근대 이성적 사고의 폐허를 지적한 마르틴 하이데거는 이후 100년이 지나야 철학교수가 되니 얼마나 선지적 인물이었는지 가늠이 잘가지 않을 정도이다.

또한 현대 과학이 인간의 신화적 사고를 파괴하고 과학이 다시금 그 신화적 사고 안에 자리 잡게 된다는 주장이 들어있는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의 '계몽의 변증법'은 1947년에나 발표된 것이니 이런 철학적 주장이 문학에 스며드는 시간적 간극을 생각하면 정말 소름 돋는 작품이 아닐 수 없다.


도대체 19세기 초 미국에서 그가 목도한 세상은 과연 어떤 세상이었을까?

아니면 정말 타임머신을 타고 앞으로 있을 이성적 사고의 최고이자 최악의 산물인 과학이 인류에게 가져다주는 비극을 미리 보고 온 것은 아닐는지?


마지막 3행의 시에서 과학이 빼앗아 간 것에 대하여 에드거 앨런 포는 이렇게 말한다.


네가 찢어내지 않았나 나이아드를 그녀의 연못에서,

꼬마 요정을 초록 풀밭에서, 그리고 내게서

여름 꿈, 타마린드 나무 바로 밑 그것을?


과학이 고대 그리스의 신화적 사고와 작가 자신의 '시적 감성'을 파괴함에 있어 타마린드 나무 바로 밑 그것을이라고 노래하는 대목에서 나름의 비약을 하자면 왜 평생을 미국의 동북부에 살던 그가 열대지방에 서식하는 타마린드 나무 밑에서 꾸는 여름 꿈을 가져간다 했을까?

굳이 타마린드 나무 밑에서 꾸는 여름 꿈 그것을?


이성주의 인간 소외의 극단이었던 냉전시대 과학으로 인류를 전멸에 위기까지 몰아갔던 핵 전쟁의 위협. 인류는 1945년 일본에 터뜨린 핵폭탄보다 더욱 강력한 핵폭탄을 만들기 위해 당시 모든 과학적 역량을 동원하여 핵폭발 실험을 열었고 그 실험은 1946년부터 1958년까지 열대의 비키니섬에서 자행되었다.

왜 에드거 앨런 포는 자신이 나고 자란 미국 동북부의 많은 활엽수 나무를 제치고, 또 월계수 나무 같은 고대 로마. 그리스신화에 등장하는 나무도 제치고 하필이면 열대지역 서식하는 낯선 타마린드 나무를 마지막에 언급했을까?

그저 생각만 해도 그의 추리. 공포소설만큼 소름 돋는 마무리가 아닐 수 없다.(과학이 우리의 감수성을 파괴하고 종국에는 인류까지 파멸할 뻔-지금도 확신할 순 없지만- 역사적 사건을 상기해 보건대 정말 섬득하다)


아무튼 읽다가 놀라 소름이 돋을 만큼 서늘했던 시대를 앞서도 너무 앞선 에드거 앨런 포의 1829년작 소네트 '과학에게'였다.

열대지방에 서식하는 타마린드 나무와 열매(출처: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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