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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가적일상추구 Jul 09. 2024

무기여 잘 있어라- 어니스트 헤밍웨이

나는 누구보다 소중한 존재니깐~

1929년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1차 세계대전에 적십자 앰뷸런스 운전병으로 참전한 자전적인 이야기를 가지고 소설 '무기여 잘 있어라'를 발표함으로써 일약 세계적인 작가 대열에 오를 수 있었다.

물론 1926년 발표한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가 출세작으로 있지만 유명 작가의 입지를 다진 작품으로는 단연코 '무기여 잘 있어라'가 꼽히고 있다.


그렇다면 이 유명한 작품의 매력은 무엇일까?

100여 년의 시간차를 생각해 보더라도 전쟁이라는 극한의 상황에서 이데올로기에 처절하게 희생되는 개인의 모습이나 관념의 관철을 위해 몸을 던지는 영웅적 이야기는 전혀 없다는 것이 생소하게 느껴질 정도이다.

그보다는 오히려 주인공이 살아가면서 오로지 자신의 행복만을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모습에 이것이 바로 개개인의 실존과 다양성을 존중하는 현대인의 의식구조 변화의 시작이었을까 하는 마음까지 들기도 한다.

말 그대로 모든 무기(weapon)와 두 팔 벌린 사람의 품(arms) 조차 안녕을 고했던 1915년부터 1918년까지 주인공 프레더릭 헨리의 삶으로 들어가 보자.

1918년 5월 1차 세계대전에 적십자 앰뷸런스 운전병으로 참전했을 당시의 어니스트 헤밍웨이

부유한 집안 출신의 미국인 청년 프레더릭 헨리는 1915년 로마에 있는 대학교 건축과에 유학중 1차 세계대전이 터지고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이탈리아를 침공하자 이탈리아군에 장교로 자원입대하게 된다.

전선과 야전병원 사이에 부상병을 후송하는 앰뷸런스 부대의 초급 지휘 장교로 비교적 안전한 상황에서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자연스레 또래 장교들과 어울리며 술과 여자도 마다하지 않았던 헨리는 리날디라는 의무장교를 통해 영국의 야전병원에 근무하는 캐서린 바클리의 이야기를 듣게 되고 관심을 가지게 된다.

서로를 알아가며 요즘 말로 썸을 타던 중 헨리는 전방에서 오스트리아군의 박격포 공격을 받아 양 무릎에 심각한 부상을 입고 밀라노로 후송을 가게 된다.


그곳에서 성공적으로 수술을 받고 회복하던 중 근무지를 옮긴 캐서린을 다시금 만나게 되고 이내 임신까지 하게 되나 헨리는 전선 복귀를 명 받게 된다.

전선의 상황은 부상당하기 전과는 사뭇 달랐다. 독일군이 참전한 상황에서 이탈리아 군은 계속해서 후퇴를 거듭하고 있었다. 헨리의 앰뷸런스 후송 부대도 후퇴 중 낙오를 하게 되고 여러 병사가 전사하는 우여곡절을 겪으며 이탈리아 군 진영에 합류하게 되나 헌병들이 장교들을 연행하여 즉결로 전시군탈을 이유로 총살을 하고 있었다. 그런 와중 헨리는 강으로 투신하여 탈출 군 수송 열차에 무단으로 탑승 밀라노에서 군복을 벗고 미국 여권을 소지한 미국인으로 탈바꿈하며 더 이상의 전쟁은 없는 자신만의 종전선언을 하게 된다.


하지만 그에게는 책임져야 하는 일이 있었으니 캐서린 자신의 표현으로 '생물학적 덫'이라 했던 두 연인 사이의  임신이 있었다. 그리하여 홀몸이 아닌 캐서린을 데리고 중립국인 스위스로 탈출을 감행 아이가 태어날 때까지 몽트뢰에서 평화가 깃든 행복한 시간을 가지게 된다.

출산이 임박하여 병원이 있는 로잔으로 와서 아이를 출산하게 되는데 첫 출산이라는 과정이 어렵기도 했지만 선천적으로 골반이 작았던 캐서린은 유독 심한 산통을 겪게 된다.

이에 제왕절개를 권하는 의사의 의견을 받아들여 수술을 하게 되나 아이는 탯줄이 목에 걸려 이미 죽어있는 상태였고 심한 출혈로 인하여 캐서린마저 목숨을 잃게 되고 헨리는 쓸쓸하게 호텔로 돌아가며 이야기는 마무리된다.

프레디 머큐리가 사랑했던 호반도시 스위스의 몽트뢰. '무기여 잘 있어라'에서도 헨리와 캐서린이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아름다운 곳으로 묘사된다.

이렇듯 이야기는 철저히 헨리라는 인물 개인의 삶에 초점이 맞춰져있다.

숭고미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눈곱만큼도 찾기 힘들다.

오죽하면 J. D. 샐린저가 그의 소설 '호밀밭의 파수꾼'에서 주공인이 왜 자기 형이 이딴 엉터리 소설을 좋아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사상 최악의 디스를 했을까 싶을 정도이다.

인간이란 존재가 혼자서는 도저히 살아갈 수 없는 존재이기에 나라는 개인의 행복만을 위하는 헨리의 행동에 지금도 어떤 감동이나 감흥을 자아내기는 불가능하다고 본다.

다만 역사상 전체주의의 거친 파고가 휩쓴 20세기 초의 전 세계적 상황에서 개인의 행복뿐만 아니라 목숨조차 쉽게 빼앗는 광기에 휩싸인 소위 말하는 사회 권력층의 위선적인 모습으로 엄청난 고통을 겪은 세대의 한 사람으로서 '무기여 잘 있어라'에서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주는 외침은 되려 더욱 선명하게 나타난다.


참호에서 자신들은 무정부주의 자라며 어서 전쟁이 끝나 고향으로 돌아가 자신의 삶을 오롯이 살고 싶다는 운전병들. 독일군이 참전한 상황에서 패배를 거듭하여 퇴각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전선을 지키라는 명령을 어기고 일반 사병들과 함께 그저 목숨이나 부지하려고 후퇴하는 장교들에게 이탈리아의 고귀한 정신을 훼손했다는 이유로 즉결로 총살시키라는 명령을 내린 군 사령부의 고위 장성들. 예수의 조건 없는 인류애(사랑)를 강조하지만 어린 나이에 고향과 부모를 그리워하는 군종신부. 스위스로 가려고 대기 중이던 도시 스트레사에서 만난 94살의 그레피 백작은 과거 오스트리아와 이탈리아의 고위 관료로 근무하였고 삶에 대하여 누구보다 많은 경험과 지혜가 있다고 하지만 전쟁에 대하여 그저 그럴 수 있을 뿐이라는 냉소로 대하는 위선 등등 소설 속의 등장인물들 중 젊지만 권력이 없는 인물들과 나이 먹고 권력 있는 인물들의 삶에 대한 태도 자체가 명확하게 대비되며 힘없고 권력에 아무렇게나 대해지는 우리 대다수에게 헤밍웨이는 각자의 삶에 대한 많은 각성을 하게끔 만들고 있음을 느낄 것이다.


바로 이점에서 이 책이 고전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책을 읽는 내내 하게 되었다. 특히, 마지막에 아이와 사랑하는 여인 모두를 잃고 어둡고 비 내리는 로잔 거리를 쓸쓸히 걸어 호텔로 향하는 주인공 헨리의 모습에 어떻게든 다시금 내일을 살아내야 하는 우리들에게 적잔은 울림을 주는 대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캐서린의 죽음 앞에 무릎 꿇고 좌절하는 엔딩이었다면 역사의 파고에 순응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나약함을 상징했을 터이지만 비가 추적거리는 차가운 산악도시의 뒷골목을 의연하게 걸어 호텔로 돌아가는 모습은 다시금 내일을 살아갈 강한 의연함의 상징이기도 하기에 그 결말을 긍정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놓음으로써 독자 스스로 소설의 의미를 가늠할 수 있도록 배려한 부분이라고 여겨진다.(실제로 헤밍웨이는 이 소설의 결말에 대하여 열 번 넘게 수정했다는 유명한 일화를 남겼다)


어쨌든 전통적인 비극의 숭고미나 비장미라고는 거의 느껴지지는 않지만 아무리 큰 역사의 파고가 닥쳐와도 스스로 전쟁 종식 선언을 하고 개인의 행복을 추구했던 프레더릭 헨리의 삶의 자세에 큰 영감을 얻은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1929년 발표작 '무기여 잘 있어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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