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손잡고, 울산 통도사를 둘러보다
(이 당일 여행은 Covid-19가 창궐하기 전 1월 15일에 다녀왔습니다. 미쳐 정리해서 올리지 못하던 중, 바이러스가 창궐했고, 좀 잦아들면 올려야지 하다가 타이밍을 놓쳤네요. 그러던 중 장기화되는 재난 속에서 일상의 소소함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게 되어 늦게나마 담담히 올려보고자 합니다.)
단 둘이 하는 오랜만의 여행
너무도 바쁜 일정이었다. 모든 직장인들이 마찬가지겠지만 하루 빼서 쉬거나 여행을 다녀오기가 어디 그렇게 만만한가? 엄마의 전화가 아니었다면 아마 엄두도 못 냈을 것이다. 요는 친구분들과 가기로 되어 있었는데 약속이 틀어졌다며 내가 시간이 안되면 혼자라도 다녀오시겠단다. 다른 때 같으면 혼자 다녀오시게 했을 텐데 나도 콧바람이 그리웠다. 사실 엄마랑 같이 보내는 시간이 그리웠다.
“잠깐만, 나 일정 좀 확인하고...”
마음만 먹으면 하루에도 다녀올 수 있는 이유는 바로, 고속철도
조금 더 목적지에 가깝다는 이유로 SRT를 타기로 했다. 알고 보니 철로는 같았고 단지 시간과 가격이 다를 뿐이었지만, 뭔들?
출근 시간과 같은 시간에 엄마를 챙겨 집을 나선다. 나는 늘 다니는 길이지만 엄만 이 아침에 이 경로가 낯설다. 여러 번 앱으로 설명하고 말씀드렸으나 혹시나 기차를 놓칠까 노심초사. 그러나 늘 그렇듯 아무 일 없이, 너무도 여유롭게 도착하여 기차에 몸을 싣는다.
바리바리 싸온 주전부리가 무색하게 어물쩍하는 사이 목적지에 도착했다. 렌트를 하지 않고 대중교통 이용이 좋으시다는 엄마의 의견을 따라 버스 정류장으로 종종걸음을 옮긴다. 사실 내가 화장실에서 미적거려서 조금 시간이 지체되긴 했지만, 어허~ 하필 방금 차가 떠났다고 한다. 때마침 놓친 한 시간에 한대짜리 버스를 기다리는 대신, 역사에서 간단히 점심을 하기로 했다. 저녁에 먹을 불고기를 위해 위를 좀 남겨두기로 한다.
쇼핑 삼매경에 빠진 엄마와 딸
평일에 찾은 통도사는 산책길부터가 한 폭의 산수화였다. 사람도 없고 여유롭고 흙길인데도 포근한 그 길을 천천히 걸어가며 엄마와 담소를 나눈다. 속상했던 일, 웃긴 일, 어릴 적 얘기, 엄마의 신변 얘기, 아빠 얘기 기타 등등. 코미디 프로그램만 봐도 데굴데굴 구르며 재미나게 웃으시는 엄마의 폭풍 리액션에 이 한 몸 열심히 개그를 담아 얘기를 전해 본다.
그렇게 당도한 암사. 생각보다 규모가 컸는데, 입장하려는 나를 엄마가 잡는다. 쇼핑부터 하자고~ㅋ
뭐 별거 있나 싶었다. 여러 장신구들, 소품들... 불교신자도 아닌 우리가 살게 그렇게 많나 싶은데 엄마는 그저 눈을 반짝이신다. 그냥 구경하는 게 즐겁다나?
서로의 취향이 말이 안 된다고 박장대소다. 내가 예쁘다는 걸 엄마는 그렇게 보는 눈이 없냐 하고, 엄마가 예쁘다는 건 내가 맘에 안 든다. 그러다가 이내 서로 양보한다.
“맘에 들면 사셔~”. "그럴까? 넌 이거 사라!"
각자의 취향대로 골랐던 것을 그대로 추천한다. 굳이 뭐 서로의 취향을 모두 충족시킬 필요가 있을까? 서로 맘에 든다는 것들을 서로가 계산해 준다. 더치페이가 아닌 크로스 페이~ 신기하게 가격이 비슷하다. 의도한 게 아닌데 ㅋㅋㅋㅋ
허걱!! 거의 한 시간을 보내고, “이거 사러 여기 왔어?” 내 질문에 엄만 소녀처럼 대답하신다, “그럼~”.
남는 건 사진이고 기념품인가 보다. 정말로 그때 샀던 소품들을 진열해 놓고 종종 보면 이 여행이 떠오른다. 그 추억을 사러 왔나 보다.
가지의 새순도 아름답게 보이게 하는 여유로움
건축물과 자연의 조화가 아름다웠다. 건축에 조예가 전혀 없는 내가 보더라도 한껏 추켜올린 처마의 끝자락이 세련되어 보인다. 가지 하나하나 연출을 해도 저렇게 어우러지기 힘들 거 같단 생각을 한다. 어느 가지는 쓸쓸하지만 고고하다. 어느 나무는 청년의 즐거움이 느껴진다. 어느 가지는 새초롬하다.
말로만 듣던 불고기 영접
쇼핑 시간에 비해 다소 짧은 경내 구경을 마치고 출출해지기 시작하는 배를 채우러 간다. 때마침 버스가 당도하고 앱으로 검색해서 맛집이란 곳을 찾아간다. 살짝 헤매긴 했어도 괜찮게 도착한 음식점은 이른 저녁시간인데도 가족단위의 테이블이 어느 정도 있었다.
말로만 듣던 “언양불고기”. 생각보다 비쌌지만 엄마를 위해 그 정도는 낼 정도의 경제력은 있다. 신나게 먹고, 기분 좋게 카드를 긁는다. 그리고 눈이 빠지게 기다릴 아빠를 향해 다시 기차역으로!!
나를 찾아, 돌아보다 넘어진 당신 ㅠ
배가 불러 기차역까지는 걸어가기로 했다. 약 40분 거리. 택시를 타도 되었지만 그냥 걸어가자 했다. 앱을 켜고 걷는데 길이 험하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걷다가 엄마는 내 인기척을 못 느꼈나 보다. 내가 오나 보려고 뒤를 돌아보시다 그대로 발이 걸려 넘어지신 것. 손 쓸 틈도 없이 하얀 먼지 위에 검은색 롱 패딩의 엄마가 넘어져서 그대로 계신다. 금방 털고 일어날 줄 알았더니, 엄마는 오십견이시란다ㅠ 아이 일으키듯이 세워서 옷을 털어드린다. 그 먼지가 다시 나에게로 와서 둘 다 꼬질꼬질해진다. 아픈데 웃기고, 웃긴데 죄송하다. 아 엄마가 이젠 몸이 성한 곳이 없으시구나...
집으로 돌아가는 이층 버스 맨 앞줄
우여곡절 끝에 기차역에 도착하여 화장실에서 물로 옷을 정리한다. 엄마가 어린아이 옷을 털어주듯, 내가 엄마의 옷을 매만져 드린다. 지금은 내가 엄마가 되어 본다. 많이도 묻었다. 한참을 털고, 물에 적시고 닦아내어 어느 정도 본연의 검은색이 돌아올 때쯤 서둘러 플랫폼에 들어간다. 따뜻한 기차 내에서 스르륵 잠들었다가 순삭의 시간 후에 다시 목적지에 내린다.
밤눈이 어두운지 나가는 통로를 한참 찾고 헤매다가 1시간이나 지체된 시간에 겨우 버스를 탄다. 잠실에서 광역버스를 타야 집에 가는데, 큰일이다. 집에 도착하면 11시가 다 될 거 같다.
잠실역에서 광역버스를 엄마는 처음 탄다고 하셨다. 운 좋게 하루에 몇 대 안 되는 이층 버스의 맨 앞자리를 잡아드리고, 불안하다는 그녀를 위해 안전벨트를 해드린다. 신기해하지만 무서워도 하는 엄마를 어깨로 느낀다. 차창밖 저녁 강가의 불빛이 좀 더 따뜻하게 보인다.
피곤하지만 피곤하지 않은 하루
그냥 기차 타고 왔다 갔다 했는데 피곤하다. 그런데 또 피곤하지가 않다. 정서적으로 채워졌기 때문일 것이다. 생각보다 괜찮았다, 엄마와 함께한 일일 여행.
어릴 때는 엄마가 워킹맘이라서 싫었다. 그런데 내가 일해보니 그녀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이해가 된다. 그리고 퇴직하신 지금, 나한테 시간을 내준 엄마가 고마웠다.
종종 그렇게 콧바람 쏘이는 날이 곧 다시 오기를!!
이런 소소한 일상들이 다시 돌아오길 손꼽아 기다린다. 바이러스로 모두들 움츠러들어 있는 이때에, 가족과 함께했던 즐거운 여행의 추억들을 되돌아보는 것은 어떨까 한다.
겨울의 끝자락에서 함께했던 하루 여행이었다. 봄을 만끽하는 하루 여행이 허락되길 간절히 소망한다.
모두들 건강 조심하시고, 이 힘든 시기를 넉넉히 이겨내시길 소원합니다!! 힘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