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저신뢰 사회인가, 이에 대한 진단과 대응책

공동체는 울고, 알고리즘은 웃었다.

by 수나로이



논제: <우리나라는 저신뢰 사회인가, 이에 대한 진단과 대응책을 제시하라>


제목: 공동체는 울고, 알고리즘은 웃었다


한국 사회가 저신뢰의 늪에 빠졌다. 2024년에 실시한 OECD 조사에 따르면, “타인을 신뢰한다”는 응답은 26%에 불과했고, 사법·언론·정당 신뢰도는 30% 아래로 떨어졌다.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신뢰가 낮아지는 이유는, 공동체가 공유하던 ‘사실’이 해체됐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자리를, 알고리즘 기반의 개인화 정보가 대신하고 있다. 기술은 ‘사실’을 쪼개고, ‘신념’을 포장했을 뿐 아니라, ‘공론장’을 팬덤으로 만들었다.


개인화 추천은 클릭률을 높였지만, 사회를 쪼갰다. 알고리즘은 이용자가 오래 머물 콘텐츠만 밀어준다. 그 결과 사람들은 비슷한 견해만 접하고, 반대 의견은 혐오와 공격의 대상이 된다. 다수의 사용자가 알고리즘의 존재조차 인식하지 못하지만, 실제로 플랫폼은 자극적 감정 반응에 더 높은 가중치를 부여했다. 대표적인 예로, 페이스북은 한때 분노 이모티콘에 ‘좋아요’의 5배 가중치를 뒀다. 이 같은 알고리즘 시스템은, 정치 콘텐츠의 팬덤화를 가속화시켰다. 그 결과, ‘서로 다른 진실’이 병렬되는 사회가 됐다.


저신뢰의 구조를 되돌리기 위해선 공론장 자체의 설계 원칙을 바꿔야 한다. 알고리즘이 만들어낸 정보 환경은 개인화를 기본값으로 설정하고, 취향에 맞는 사실‘만’ 제공하고 있다. 시민(이용자)이 다양한 관점을 접할 기회를 앗아가고 있는 셈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유저들에게 ‘比개인화 콘텐츠 선택권’을 제공해야 한다. ‘비개인화 옵션’이 생기면, 이용자들이 직접 구조적으로 개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어떤 콘텐츠를 추천할 때는, 추천하는 이유도 함께 명시되도록 해야 한다. 알고리즘이 콘텐츠를 제시할 때 ‘왜’ 그 정보가 선택됐는지를 사용자에게 투명하게 제공함으로써, 플랫폼의 권력을 분산시킬 수 있는 탓이다.


‘바꾸자’고 말하지만, SNS를 소유한 민간기업은 이를 바꿔줄 이유가 없다. 그런데 이 지점이 가장 현실적인 출발점이다. 불가능한 일도 아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SNS인, 유튜브는 이미 선거 시기마다 각국 선관위와 협력해 ‘선거정보 허브’를 운영하고 있으며, 유럽연합의 디지털 서비스법(DSA)에 따라 알고리즘 리스크 평가와 보고서를 제출하고 있다. 인도는 자국 내 혐오 표현 확산 대응을 요구했고, 유튜브는 이에 따라 기능 일부를 조정했다. 즉, 플랫폼은 자사 서비스가 특정 국가에서 공공성 논란에 직면하면, 완전히 거부하기보다 부분 수용을 선택하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이러한 선례를 활용해, 공공 캠페인·API 협약·선거기관 협력 등 공적 파트너십을 제공하는 대신, 정치·공익 콘텐츠에 한정해서라도, 노출 기준 설명·AI 콘텐츠 라벨링 등 공론장 설계 기준을 조건으로 제시할 수 있다. 이는 규제가 아니다. 실익 기반의 ‘구조적 유도’을 설계하는 것이다.


신뢰는 감정이 아니라 구조의 산물이다. 알고리즘이 신뢰를 무너뜨렸다면, 그 복원 역시 기술의 설계 단계에서 시작돼야 한다. 이제는 ‘무엇을 보게 할 것인가’를 기술 기업이 아니라 공동체가 정해야 한다. 그렇게 서로 다른 정보 세계에 갇힌 사람들이, 적어도 같은 출발선에서 토론할 수 있는 최소한의 사실을 공유하게 될 때, 우리 사회는 무너진 신뢰의 기반을 다시 쌓고, 분열이 아닌 논쟁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알고리즘을 설계한 건 사람이고, 설계를 바꾸는 것도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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