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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dal Mar 20. 2022

너의 세계

우리의 수학여행은 엉망이었지?

고등학교 2학년 때 떠난 나의 수학여행에는 많은 것이 없었다. 버스 안 친구들의 북적임을 넘어선 시끄러움도, 숙소에서 선생님을 피해 몰래 밤을 새우며 떠들던 시간도.


그날 남원으로 출발한 버스는 들뜬 내 친구들의 공기로 가득 찼고 버스에는 세 얼간이가 나오고 있었다. 아마 교육청의 지시였겠지만 아이들의 반발을 딛고 선생님은 우리를 번호순으로 앉혔다. 30번대의 나는 맨 뒷자리, 멀미가 심한 나는 이어폰을 끼고 랄라스윗의 너의 세계 앨범을 들으며 창가에 머리를 기대고 선잠에 빠져 있었다. 내 옆자리 친구는 나를 흔들어 깨웠고 핸드폰을 보여줬다.

우리는 버스에서도, 휴게소에서도, 숙소에서도 계속해서 뉴스를 보았다. 밤이 되고 몇몇은 뉴스를 계속 보면 더 우울할 뿐이니 티비를 끄고 놀자며 목소리를 높였고 우리는 둥글게 모여 앉아 게임을 시작했다.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웃어도 우리의 뒤편으로는 너희가 떠올랐고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웃어도 우리의 핸드폰은 가족과 친구, 지인들의 연락으로 끊임없이 울려댔다. 우리는 이른 잠자리에 들었고 나는 내일이면 다 괜찮아질 거라는 생각을 끝으로 잠에 들었다.


나의 2박 3일 수학여행은 너와 함께 흘러갔다. 너의 주제는 끊임이 없었고 내일이 되어도 괜찮아지는 것 또한 없었다. 돌아온 빈집에서 티비에 흘러나오는 뉴스를 보며 하염없이 울었다. 너는 평생 수학여행에서 돌아오지 못할 거라는 사실이, 괜찮아질 거라며 나 자신을 친구들을 위로했던 순간이 너무나 끔찍했다.

분명 너도 그날 아침 자주 연락하라는 엄마의 말을 들으며 집을 나왔을 테니까. 운동장에 삼삼오오 모여 지각하는 아이들을 기다리다 이윽고 탄 버스 안은 설렘이 담긴 목소리로 가득 찼을 테니까. 나의 수학여행과 너의 수학여행이 다르지 않음을 너무나도 잘 알기에 나는 아직도 그날을 잊을 수가 없다. 나의 마지막 수학여행은 끝이 났지만 너는 아직 세상을 여행 중이라는 사실이, 나의 시간은 하염없이 흘러가지만 너의 시간은 멈춰버렸다는 사실이, 나는 일상으로 돌아와 졸업을 하고 어느새 직장에 다니는 나이가 됐지만 너는 여전히 18살이라는 사실이 매년 졸업하는 아이들만 보면 너를 떠올리게 한다.


사람들은 가끔 그런다. 너의 이야기를 지겹다고도 말한다. 참 잔인하다. 우리의 현실이 너희를 잊게 할지언정 너희를 지겹다 말할 수 있을까. 나는 아직도 그날 들었던 랄라스윗의 노래를 들으면 그 버스 안의 공기가 떠오른다. 교복을 입은 채 꽃을 들고 활짝 웃는 아이들을 보면 채 졸업도 하지 못한 네가 떠오른다.

누군가 멈춰버린 너의 세계는 흘러가야 했을 우주였다.


-


며칠 전 네가 졸업했다는 소식을 들었어.

얼마 전 네 생각이 나 써놓았던 글을 올려.

졸업 축하해.



2019. 2. 13. 11:25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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