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생의 정신 건강 관리 - 5. 프랑스 심리 상담 후기 (하)
두 번째 상담 때는 먼저 일주일 동안 잘 지냈는지 이야기하고 EMDR 치료를 시작했다.
사실 이게 도움이 되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EMDR 치료는 외상후스트레스장애 치료에 효과적이라고 하는데 내 경우는 그런 게 아니었다. 두 차례 시도한 다음 상담사분이 어떠냐고 물으셔서, 하나도 모르겠다고 했다. 그래서 다른 방법을 시도했다. 눈을 감고, 힘을 빼고 편안하게 앉아서 가장 편안한 공간을 상상해 보라고 했다.
- 그곳이 어디인가요?
- 카페예요.
늘 혼자 카페에 가서 작업 구상을 하거나 책과 논문을 읽곤 했었다.
- 그 공간을 묘사해 볼래요? 어떤 소리가 들리나요?
- 커피 머신 소리가 들리고...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소리, 음악 소리도 들려요. 커피 향기도 나요. 좀 어두워요.
- 그리고요?
- 나무로 된 테이블이 있고, 적당히 따뜻해요.
- 테이블 위에는 무엇이 있나요?
- café allongé 한 잔이랑 작업노트가 있어요. 볼펜도.
- 거기서 뭘 하고 있나요?
- 작업 생각을 하고 있어요.
- 작업 생각을 하는 게 어떤가요?
- 음... 스트레스를 받아요.
- 눈을 떠 보세요.
당시 나의 가장 큰 스트레스 원인은 외국인으로 사는 것, 그리고 작업이었다. bilan(학기말 시험인데 보자르에서는 그동안 했던 작업들을 주어진 공간에 설치해 놓고 사람들 앞에서 발표를 한다. 그 비중이 매우 크다.)을 앞두고 있었던 터라 작업 스트레스가 특히 심했다. 우리 학교가 보자르 중에서도 수업이 많은 편인데 시간표가 거의 고등학생처럼 짜여 있었다. 당시 2학년이었던 내 시간표는 월 화 수 목 금 매일 오전 수업 하나, 오후 수업 하나씩 있었고 빈 시간이 일주일에 한 번 있었다. 매주 총 아홉 개의 수업이 있었던 건데 그중에서 이론 수업은 격주로 하는 것도 있었고 어쨌든 정리하자면 두세 개의 이론 수업과 예닐곱 개의 아뜰리에 수업(한국식으로 말하자면 실기 수업이긴 한데 좀 다르다)이 있었다. 매주 아뜰리에 수업 때마다 작업을 발전시켜 가야 했기에 매일매일 작업 생각을 하고 작업에 필요한 책을 읽고 작업에 필요한 자료를 찾고 작업을 하는 데에 모든 시간과 에너지를 다 썼다. 스스로에게 기대치가 높아서 그런지 나는 작업을 할 때 필요 이상으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편이긴 하다.
상담을 하면서 내가 성적에 대한 압박이 심하다는 걸 깨달았다. 말로는 점수를 위해 작업하면 절대 행복할 수 없다고 하고 다녔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그랬으면서 가장 편안한 공간이 내가 늘 스트레스를 받으며 작업을 하는 카페라고 말했다.
- 다른 공간을 상상해 볼게요.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장소라도 괜찮아요. 가장 편안하고 스트레스가 없을 것 같은 공간으로요.
잠시 생각하다가 구름 위라고 말했다.
- 공간을 묘사해 줄 수 있나요? 어떤가요?
- 아래가 밝아요. 약간 차갑고 축축하고요.
- 무엇이 있나요?
- 아무도 아무것도 없어요.
- 어떤가요? 편안한가요?
- 음... 아뇨.
- 왜죠?
- 현실에 없잖아요. 제 상상일 뿐인걸요.
아무래도 나랑 맞지 않는 치료법이었다. 그래도 마지막으로 다른 방법을 시도하기로 했다. 다시 눈을 감았다.
- 당신의 집을 상상해 보세요. 어떤가요?
- 바닥은 나무로 되어 있고, 밟을 때마다 삐꺽거려요.
- 방이 여러 개인가요? 스튜디오(부엌과 화장실이 있는 원룸)인가요?
- 스튜디오예요.
- 침대에 누웠을 때 보이지 않는 곳이 있나요?
- 없어요.
- 화장실에 뭔가를 숨길 만한 안전한 공간이 있나요?
- 아뇨. 화장실 바닥에 타일이 깨져 구멍이 난 부분이 있는데 제가 테이프를 붙여 막아놓았어요.
- 집 문을 열면 무엇이 있나요?
- 계단이에요.
- 그럼 창문이 있나요?
- 네. 위아래로 긴 창문 네 개가 있어요.
- 창문 밖에 발코니가 있나요?
- 네.
- 그 발코니에 금고를 하나 놓으면, 방안에 있을 때 금고가 보이나요?
- 아뇨.
- 그럼 금고를 상상해 보세요. 그걸 열고 지금 당신을 힘들게 하는 생각들을 담아보세요.
- 담았어요.
- 무엇을 담았나요?
- 작업, 성적, 가족...
- 이제 금고를 열쇠로 잠그세요. 그리고 방에서 보이지 않는 발코니에 놓는 거예요. 집에서 쉴 때는 그 생각들은 금고에 넣어 놓고, 가끔씩 필요할 때만 꺼내서 보는 거예요. 앞으로 생각들 때문에 머리가 복잡할 때는 이 방법을 써 보세요.
내 이야기를 프랑스에서 프랑스인에게 프랑스어로 하면서 공감을 얻는 것으로 치유되는 부분이 있었다. 동시에 '내가 갈 때까지 갔구나. 프랑스에서 프랑스어로 심리 상담도 받아보고 별 경험을 다 해보네'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마인드컨트롤이 필요할 때 생각을 정리하는 방법도 알았다. 하지만 앞으로 더 도움을 받을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담 도중에 내가 프랑스에서는 'être fière de moi-même(자신감을 갖다)'하는 게 어렵다고 했더니, 한국에서도 자신 있는 태도가 좋은 능력으로 여겨지냐고 했다. 물론 그분은 아주 조심스럽고 상냥한 태도로 물어본 거였지만 내가 상담을 받으러 와서까지 아시아에 대한 편견에 맞서야 하나 싶었기에 그 두 번째 상담을 마지막으로 더 가지 않았다. 그냥 몇 주 버티다가 한국에서 약을 처방받아서 먹기로 했다. 나중에 한국에서 의사 선생님이 말하길 내 경우는 생물학적인 문제라 상담은 별 도움이 안 될 거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