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생의 정신 건강 관리 시리즈를 마치며
유학생 시절 나의 경험을 공유하려 올리기 시작했던 ’유학생의 정신 건강 관리‘ 시리즈는 여기까지다. 이제 더 이상 유학생이 아니게 된 지 몇 년이 흘렀다. 그동안 나의 상태를 살피고 잘 지내려 노력도 하고 나름의 공부도 좀 했다. 주변인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에게 내가 줄 수 있는 도움을 주기도 하며 지냈다. 그러다 보니 적어도 나에게 어떨 때 무엇이 필요한지 알아차리는 것엔 익숙해진 듯하다. 이제 예전만큼 힘겨워하거나 감정에 휩싸이거나 어쩔 줄 몰라하는 일은 잘 없다. 뭐 사람 일 모르는 거지만 이제 나랑 많이 친해졌다. 이 시점에서 드는 여러 가지 생각들을 하나둘씩 써보려 한다.
최근 우울증이나 공황장애, 성인 ADHD 등을 겪고 있음을 말하는 이들이 많아졌다. 주변에서도 많이 보인다. 정신과 진료를 받는 것에 대한 인식이 좋아지고 있고,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음을 좀 더 편하게 말할 수 있는 분위기가 되어 기쁘면서도 한편으로는 우려가 되기도 한다. 이런 용어들을 너무 가볍게 여기고 있지는 않은가? ‘우울하다’라는 표현 대신 ‘우울증’이라는 진단명을 이야기하는 상황, ‘PTSD 온다’라는 표현이 유행처럼 되어버린 것이 그 사례이다.
정신과 관련 용어들을 쉽게 이야기하는 것도 그렇지만 전문가의 섬세한 관찰 없이 자가 진단 문항 몇 개로 자신의 상태를 단정 짓거나 자신의 정체성을 병명에서 찾는 경향도 보인다. 사실 다른 것보다도 성인 ADHD에 관해서는 걱정이 많이 된다. 다른 원인에서 생긴 증상이 성인 ADHD로 오인되기도 하고 요즘에는 제대로 된 진료 없이 약을 처방해 주는 병원이 많아 문제가 된다. 단기적으로 학습 능력이 향상되기 때문에 약을 복용하다가 나중에는 의존성으로 힘들어하는 경우도 있다. 이러다 보면 약물 오남용으로 이어질 수 있고, 사람의 일상과 일생까지 바꿔버린다. 약은 절대 복용해서는 안 되는 것도 아니고, 언제나 해결책이 되는 것도 아니다. 쉽지는 않겠지만 좋은 병원에 가서 제대로 진료를 보고 필요한 치료를 받는 것이 중요하다.
내 추측이지만 최근 자신이 성인 ADHD 인지 알아보려는 움직임이 많이들 보이는 것은 한국 사회가 어떠한 획일적인 지표를 과도하게 요구하고 있어서 그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는 자신에게 문제가 있는지를 의심하게 되는 게 아닌가 싶다. 현대인들이 큰 자극에 항상 노출되어 살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원래 사람은 누구나 우울할 때도 있고 들뜰 때도 있고 이렇게 기복이 있다. 충동적일 때도 있고 우유부단할 때도 있다. 좋아하는 일에는 집중하기 쉽지만 흥미가 없는 일은 지루해한다. 원래 다 그렇다. ‘차분하다’, ‘나른하다’, ‘성급하다’, ‘추진력이 있다’, ‘산만하다’ 등 정신과 질환의 특징으로 이야기하는 표현은 성격의 범주에 들어가기도 한다. 이런 증상 혹은 성격을 죽 늘어놓고 스펙트럼 안의 한 지점에서 딱 잘라 이 왼쪽까지는 아니고, 오른쪽부터는 맞는다고 말할 수는 없다. 어디까지 ‘질환’으로 분류할 수 있으며 또 분류해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도 복잡하다. 물론 이것이 일상생활에 많은 지장을 준다면 조치가 필요하다.
약물 치료나 상담 치료는 어떤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라고 나는 생각한다. 애초에 근본적인 해결이라는 것은 없고, 문제가 아닌 것을 문제로 인식하는 것이 문제일지도 모른다. 전문가의 판단에 따라 필요하면 약을 먹을 수도 있고 먹지 않을 수도 있다. 어쨌든 이 치료의 목표는 그런대로 잘 지낼 수 있게 하는 것이다. 필요한 걸 하되 어떤 부분은 그냥 받아들이는 것. 그렇게 삶을 겪으며 스스로와 친해지는 것.
어떤 잣대를 가지고 판단하려 하거나, 섣부른 조언을 건네거나, 미워하기보다는 모두가 마음에 작은 여유 공간을 가진 채 살 수 있는 세상이 된다면 좋겠다. 그래서 남들에게도, 자기 자신에게도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가 줄 수 있다면 좋겠다. 숫자보다 사람을 중요하게 여기는 세상이 된다면 다 괜찮아지지 않을까.
지쳐 있거나 마음의 힘이 없는 상태라면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을 대하듯 자신에게 해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더라. 맛있는 걸 먹이고, 날씨 좋은 날은 바깥공기를 마시며 산책도 하고, 피곤하면 쉬게 해 주고, 예쁜 말을 해 주는 거다. 여기까지 되었다면 이제 내 옆 사람에게. 그 옆 사람에게도.
여기까지 전문가가 아닌 한 개인의 생각이니 필요한 경우 꼭 전문가의 도움을 받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