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4월, 여행에세이 <해마다 떠났어 반겨 줄 곳이 있으니까>를 독립출판한 뒤, 2년 만에 다시 브런치를 시작합니다. 이번에는 여행에세이보다는 '주니어 마케터의 회사생활'을 주제로 솔직한 생각을 적어보려고요. 코로나로 여행을 떠나지 못하지만, 회사생활에서도 여행에세이 못지않은 재미있는 글감이 많았습니다.
첫 번째 주제는 덕업일치입니다.
덕업일치(덕業一致) : 자기가 열성적으로 좋아하는 분야의 일을 직업으로 삼음
덕업일치는 저에게 있어 중요한 직업적 가치관입니다. 좋아하는 분야를 직업으로 삼는다면, 그것만큼 행복한 일이 또 없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대학교를 갓 졸업했을 때까지만 해도 무엇을 좋아하는지 조차 몰랐습니다. 좋아하는 수영이나 드럼 연주를 업으로 삼을 수도 없고요. 그저 채용공고가 뜨면 닥치는 대로 자소서를 제출하는 데 바빴습니다.
무작위로 자소서를 쓰다 보면 꼭 지원동기에서 막혔습니다. 관심도 없는 산업과 회사를 향한 지원동기는 마음에도 없는 이성에게 고백하는 것처럼 인위적입니다.
취업전략을 바꿨습니다. 관심 산업을 정하고, 그 속에 속한 기업들의 채용공고에만 지원했습니다. 이렇게 했더니, 취업준비생 기간이 끔찍하지만은 않더라고요. "가까이서 보면 비극,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는 말을 찰리 채플린이 했잖아요. 서류지원-탈락이라는 것만 보면 비극이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산업과 직무가 무엇인지 고민하는 과정은 희극이라고 생각합니다.
1. 워라벨은 퇴근 전에 있다
덕업일치가 무모한 도전일 수 있습니다. 좋아하는 것보다는 잘할 수 있는 것을 살리는 것이 취업시장에서는 더 현명하다고 하죠. 기업 입장에서도 이 일을 좋아하는 사람보다 잘하는 사람을 우선적으로 뽑을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덕업일치에 도전을 했던 것은 워라벨 때문이었습니다.
워라벨 : Work-life balance의 준말로, 일과 삶의 균형을 뜻함
워라벨이 좋은 기업이라면 가장 먼저 야근이 없는 환경이 떠오릅니다. 다시 말해, 퇴근 후 삶을 보장하는 곳이죠. 하지만 저에게 있어 워라벨은 다소 다른 의미입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퇴근 전의 삶'입니다. 칼퇴나 야근 여부는 상관없습니다.
직장인의 평일 일과 예시
저의 평일 하루 일과를 그래프로 그려보았습니다. 사람에 따라 각 항목별로 1~2시간씩 차이가 있긴 하지만, 근무시간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것은 같습니다. 반면 '퇴근 후 삶'이 차지하는 비중은 16%에 불과합니다. 출퇴근 시간과 야근 시간을 포함하면, 회사에서 보내는 시간은 하루 50%를 넘습니다. 수면을 제외하고 깨어있는 시간만 따져봤을 때는 70%가 넘습니다. 회사에 있는 시간, 즉 퇴근 전의 삶이 재밌다면 그거야 말로 행복한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회사에 있는 시간이 즐거우려면 가장 먼저 2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합니다.
내가 관심 있는 산업
내가 잘할 수 있는 직무
내가 관심 있는 산업이니까 좋아할 수밖에 없고, 내가 잘할 수 있는 직무니까 성과도 나쁘지 않습니다.
연봉은 그다음 순위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평균 정도의 연봉은 받아야겠죠. 제가 현재 근무하는 회사는 계약서를 쓰면서 보니 업계 최하 수준의 연봉을 주는 곳이었고, 그걸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습니다. (업계 최저 임금을 받으며 겪은 스트레스는 어떻게 극복했는지는 다음번에 연재하겠습니다)
2. 관심사로 산업 정하기
산업을 정하는 데 있어 가장 쉬운 방법은 관심사로 알아보는 것입니다. 저는 '20대에 20개국 가기'라는 꿈에 도전하고, 여행에세이를 만들 정도로 여행이 좋습니다. 여행 끝에 여행사에서 인턴을 하는 것은 당연한 결과였죠. 하지만 코로나라는 변수가 생겼습니다. 여행이 아닌 다른 산업에 눈을 돌려야 했죠.
고민 끝에 유통산업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여행사도 여행상품을 전문적으로 파는 유통산업에 속하니까, 결국 같은 세계입니다. 백화점, 편의점, 아웃렛, 대형마트, 이커머스, 홈쇼핑 등 유통업은 여행산업처럼 일상과 떼려야 뗄 수 없는 밀접한 관계죠.
관심 산업을 좁히니 취업 준비는 한결 수월했습니다. 유통산업에 속한다면 스타트업과 대기업까지 가리지 않고 지원했고, 그 결과 가장 가고 싶었던 대형마트 산업에서 첫 정규직 기회를 가졌습니다.
만약, 관심 있는 산업이 맞는지 모호하다면 아래 질문에 답을 해보세요. 명확한 기준이 될 겁니다.
Q. 퇴근 후에도 이 산업에서 관심을 가질 수 있는가?
저는 지금 대형마트에서 근무하잖아요? 퇴근 후에 마트 가는 게 재밌습니다. 이번 주말에는 어떤 요리를 해 먹을까 고민하면서 마트에 가면 1시간은 순식간에 사라집니다. 분명 밀키트 1개를 사러 갔는데, 장바구니에는 삼겹살 400g이 있고, 곁들여먹을 파김치가 있고, 와인이 있습니다. 저도 마트 직원이지만 충동구매는 어쩔 수 없나 봅니다. 물론, 경쟁사의 매장이라던가, 더현대와 같은 핫플레이스도 꼭 방문합니다. 최근 방문한 롯데마트 잠실점 제타플렉스에서는 3시간을 보냈습니다. 제 실무에 벤치마킹할 게 없을지 찾다 보면 놀이공원에 온 것 같아요. 추가 수당도 필요 없습니다(주면 좋긴 합니다). 그냥 재밌습니다. 산업을 관심사에 맞게 고르니 이런 장점이 있습니다.
3. 장단점으로 직무 정하기
뚜렷한 관심사가 있다면 산업을 정하는 것이 어렵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직무는 다른 이야기입니다. 좋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잘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성과를 내야 하기 때문이죠. 그리고 잘할 수 있는 직무를 찾는 최고의 방법은 인턴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1년간 회사 세 곳과 여덟 개의 팀에서 인턴을 했습니다. MD, 콘텐츠 마케팅 등 이것저것 하다 보니 일할 때 나타나는 저의 장단점이 보이더라고요. 특히, 사수와 면담을 통해서 객관적인 피드백을 받았습니다.
"경섭님은 짧은 호흡보다는 긴 호흡의 일이 더 잘 맞는 것 같아요"
SNS 콘텐츠 마케팅 팀에서 일할 때, 사수가 저에게 해준 피드백입니다. 브런치나 출판처럼 긴 글 쓰는 걸 좋아하는 저에게 인스타, 페북, 유튜브 콘텐츠는 호흡이 너무 빨랐습니다. 최소 일주일에 한 번씩 콘텐츠를 찍어내야 하고, 공들여 만든 콘텐츠의 수명도 길지 않습니다. 그래서 마케팅은 저와 맞지 않는구나라는 생각도 했어요. 하지만 모든 마케팅이 호흡이 짧은 것이 아니더라고요. TV CF, 브랜드 캠페인, 오프라인 마케팅, 마케팅전략기획, CRM 등 호흡이 긴 마케팅도 존재했습니다.
사수의 피드백은 당장 삼키기에 너무나도 쓴 약이었지만, 덕업일치할 수 있는 직무를 찾게 한 은인이었어요. 덕분에 현재는 대형마트의 마케팅전략과 브랜드 마케팅을 담당하는 팀에서 월간 행사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몇 개월 뒤의 행사를 기획하면서, 트렌드 자료조사와 아이디어 제안 및 행사 운영까지 긴 호흡으로 일하고 있어요.
이제 입사 후 딱 1년 하고 4개월이 지났습니다. 경력이라고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짧은 경험이지만, 아직까지는 재밌게 회사 생활하고 있습니다. 물론, 힘들고 우울한 적도 많았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 맞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