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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 Jeongseon Mar 22. 2024

비 내리는 날들

캄캄하게 비가 내린다. 약 먹고 몽중에 뭘 해 먹고 그대로 잠들었나 보다. 새벽에 깼다가 다시 자고 일어나 조금 회복된 상태가 되니 사람은 먹어야 하고 자야 하다는 걸 새삼 확인한 기분이다. 나는 약도 먹어야 한다. 괜찮다. 사실, 마른 세수를 하며 방을 나서서.


커피를 내리려 하다 내가 무엇을 먹었다는 걸 알았다. 그런데 뭘 먹었는지 모르겠다. 먹는 행위도 먹은 음식도 기억에 없다. 그저 싱크대 선반에 접시를 보고서야 알았다. 뭘 먹었지? 생각해 보다가 어이없어 웃다가 다시 또 거실 상태를 보고서 한심해졌다. 빨래를 돌린다. 이불과 커튼도 빨아야 해서 엉망이다. 청소도 못하면서도 몸에 닿는 것들은 정기적으로 세척해야 해서 던져놓고 그대로 방치. 와중에 분리한 쓰레기들. 지금 나는 게임으로 치면 HP가 대략 20 정도 회복 됐을 거다. 무리하면 다시 엉망이 된다만 또 무리할 기세를 알아서 이 글을 쓴다. 하지만 이미 너무나 엉망이다.


마침 친구 덕분에 새삼 기억해 낸 유카타라는 가수의 생을 들여다봤다. 내겐 'I love you" 원곡자라는 것과 일찍 생을 마감했다는 단편적 정보밖에 없었다. 흔히들 말하는 80-90년대 일본 시티팝에 대해서도 관심이 전무했던 터라, 이 나라 가요라고 말하는 것을 거의 대부분 싫어했던 터라, 한때는 내가 들을 수 있는 음악은 바흐 뿐이었던 터라, 긴 세월 해서 세상의 음악은 소음이고 해서 괴롭기만 했던 터라 같은 시대를 공유하면서도 알지만 어떤 감성은 낯선 것들이었다.


거기에 처음으로 관심을 갖게 된 건, 몇 년 전 다른 친구가 공유한 "Plastic love"를 듣고서였다. 그 시절의 애니 그림체 분위기까지 이해가 가게 된 계기였다. 아주 늦게서야 접한 어떤 문화에 대해서 아쉬움이 남기보다는 계보 같은 게 보여서 신선하고 즐거운 충격이었다. 그 흐름이 보인다는 것, 내가 그토록 싫어했던 가요의 일면이 이 문화의 표절이라는 것, 더 이상 새로울 것 없다고 생각했지만 과거의 무언가가 낯선 즐거움을 준다는 게 기뻤다. 그러다 우연히 다시 그 시절 곡을 듣고 목소리의 어떤 느낌이 와닿아 어제 문득 찾아보고선 굳이 깜짝 놀랐다. 가사들이, 깊은 우울증으로 헤매던 십 대의 내가 적혀 있는 것 같았다.


여기저기 정보를 찾아보다가 본, 웬만한 라이브는 특유의 과장이 싫어서 기피하는 편인데, 유카타의 영상을 보고, 저 사람이 쏟아내는 감성들이 거짓 없이 아파서 조금 슬펐다. 아무리 유명인이라 하더라도 개인의 정보를 찾아보는 걸 좋아하지 않아서-자신의 삶이 낱낱이 떠벌려지는 걸 누가 좋아하겠나 해서 찾지 않는 편이다- 스킵하는 쪽인데 그런데도 그가 쓴 가사들 때문에 어떻게 이런 언어들을 적고 노래할 수 있나 궁금해서, 읽었다. 살아서 많이, 많이 아팠구나. 이토록 아름다운 사람이, 너무나 아팠는데, 사람들은 그의 아픔을 착취하며 살았구나. 역시나 개인 사생활은 안 보는 게 예의라는 생각에, 내 호기심이 참 싫었다.


어떤 가수의 앨범 하나를 다 듣는 걸 요즘의 나는 못한다. 분명 거슬리는 게 나오기 때문이다. 예상했겠지만 당연하게도 아니 당연하지 않게도, 유카타의 앨범 중 궁금했던 곡들이 많이 수록된 앨범 전체를 들었다. 감탄하며 슬펐다. 이 사람의 곡들은 그의 비극적이고 자극적인 개인사로 인해 오히려 너무 평가절하됐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내가 그 시절 음악을 다 들어본 건 아니지만, 어떤 멜로디 어떤 가사들이 왜 그렇게 반향을 일으켰는지는 알 것 같았다. <졸업>을 들으면서 춤추듯 달려 나가며 밤 학교를 부숴버리는 행복한 상상을 했다. 내가 하고 싶었으나 못했던 게 거기 있었다. 굳이 학교 뒤편에서 모든 교과서를 찢어버린 것으로 만족해야 했던, 그제야 막을 내린 학창 시절이었지만, 아름답고 그래서 불행했던 내가 있었다.


자퇴를 하고 싶어 하는 학생들이 없는 사회와 학교를 상상하곤 한다. 자퇴하고 싶어서 괴로웠던 시절을 돌이켜 보면, 이해할 수 없겠지만 나름 사랑받는 학생이었다. 친구들은 가끔 나를 동경하기도 했다. 야자(야간자율학습의 준말이지만 자율은 없었다) 시간에 빠져나와 몰래 노을을 관찰하다 예쁜 날들이면 교실 커튼을 젖히고 복도를 달렸다. 노을 보라고 소리치면 우리들은 당시 고3, 한계치까지 공부를 하다가도 바라보며 감탄하곤 했다. 그 시절 내 기쁨은 그런 것이었다.


교정이 예쁜 학교여서 단풍시절이면 눈물 나게 고왔다. 다시 야자를 빠져나와서 은행나뭇잎 깔린 뒤뜰에 누워 별을 바라보곤 했다. 가끔은 강당 옥상에 올라가서 누워 별을 봤다. 내려다보며 참아내는 시간은 아팠다. 모든 것을 끝낼 수 있는 가능성을 앞에 두고 그 유혹을 참으며 별을 보고 있으면 여기가 옥상인지-옥상 문이 열린 걸 친구들은 몰랐으니까 거의 내 혼자 차지였던- 아니면 그저 운동장인지 구별이 되지 않았기에 버텼던 것 같다. 절친은 내게 현실도피라고 했다. 지금도 인정하는 바이다. 현실은 가혹했으니까 살려면 도피하는 것밖엔 방법이 없었다. 이 나라의 교육제도가 끔찍한 학생이 그 안에서 살아가려면 무슨 방법이 있겠는가.


씁쓸하게 웃기만 하는 어른이 되어서도 이 사람의 곡들이 이렇게 기억을 건드리고, 지금의 나를 건드리는 걸 보면, 역시 친구 말대로 현실도피는 진행 중인 거고 성장하지 않았구나 싶어서 허탈하다. 적응도 못하고 성장도 못하고 다만 도피 능력치만 높아진 건가 그럼 이것도 성장인가 우겨보려 했지만 아닌 건 아닌 거니까, 정직해지자.


다시 흐리고 비. 잠든 새도 비가 내린 듯하다. 지치지도 않고 흐리고 비 내리는 나날이다. 계절이 뒤섞여서 흐른다. 이러면 안 되는 거 아닌가 싶은데 역시 기후 위기에 대해 포스팅한 글들이 보인다. 천천히 멸망해 가는 인류들아, 부디 우리만 멸망하자, 그러나 실현 불가능한 일이지. 모조리 멸망시키며 발버둥 치다가 최후에 서서히 고통받으며 멸망하겠지.


역시나 나는 내가 인류라는 것부터 싫다. 요즘처럼 여러 증후군으로 일상이 망가져 버리면 이미 개인적 삶 자체도 상처인데 그래서 개인적 사회적 다양한 이유로 이젠 내려놓고 싶은데 그런데 그것도 죄라고 하는 세상에서, 그것도 상처라고 하는 세상에서,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나. 졸업은 가능한가. 밤의 창을 부수며 달릴 수 있는가. 자아는 비대해졌고 나이만 먹어서 훈장 같은 상처를 안고, 비유가 아닌 실재로서 몽중의 삶을 살아가는데 사람아, 캄캄하게 비가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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