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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 Jeongseon Aug 09. 2023

비눗방울 2-직조되는 세상

한 점, 한 방울의 다른 색을 허용하지 않아 온통 하늘색으로 하나의 세상이 만들어져 예쁘다고 생각했다. 잠깐 바라보는 것도 허용하지 않는 듯 눈 부신 태양만이 압도적으로, 넘실대는 푸른빛에 입체감을 더하고 있었다. 잠시 교차로 횡단보도 앞에서 하늘을 바라보며 따가운 볕을 거부하는 듯한 차가운 바람을 맞고 서 있었다. 눈을 잠시 감으면 세상은 사라지고 오직 키신이 연주하는 리스트만 흘러나왔다. 격렬하고 섬세한 피아노 연주를 듣고 있으면 시간과 공간은 선율로 뒤엉켜 압력이 높아져 갔다. 언젠가는 펑하고 터질 것처럼 수렴되는 소리의 세상.


잠시 휘청였던 것 같다. 색과 빛으로 확산하는 세상과 소리로 수렴되는 세상이 눈을 감고 뜨는 경계로 이어져 있다는 것이, 이러한 수렴과 확산이 완벽하게 얽혀 질서를 이루고 혼동을 이루며 또 하나의 세상으로 존재한다는 것이, 경이로웠다. 당연하게 지내오던 게 낯설어지는 오늘 같은 날이면 물 위를 걸었다는 기적은 대체로 평이해졌다.


땅을 훑고 위쪽을 향해 곡선을 그리며 불어온 바람에 티끌이 있어 눈을 간지럽혔다. 순식간에 머릿속을 오가던 생각은 초록색 신호등 불빛으로 멈췄다. 눈을 비비며 햇살 속, 자동차들의 세계를 사람의 세계로 바꿔나가며 걸었다. 신호 하나로 세상의 중심은 간단히 스위치 되었다. 재미있어서 웃음소리가 저절로 나왔다.


저녁이 되면 러닝을 했다. 강한 호기심이 일어 러닝 앱에서 코칭해 주는 여러 방법으로 회복 러닝, 인터벌 러닝 등 다양한 것을 시도해 보았다가 혼자서 달려보자는 생각에 5km 달리기를 시도했다. 대체로 이 시간대면 조금 어두웠고 많은 사람이 열심히 트랙을 따라 걷고 있었다. 시작한 지 10분도 안 돼 매번 그렇듯, 아 왜 내가 달리기를 시작했을까 속 생각을 이어가며 달렸다. 트랙 가운데는 어슴푸레한 빛에도 선명한 초록색의 잔디가 깔려 있었다. 몇몇 사람들은 그 안에서 장난도 치고 공놀이도 하며 뛰어다니는 풍경은 언제나 정겨웠다. 아장아장 걷는 아이와 나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가족의 모습을 보는 것도, 캐치볼을 하며 깔깔 웃는 학생들의 모습을 보는 것도, 달리기가 주는 귀찮음과 지루함을 밀쳐낼 힘이 돼 주곤 했다.


그날도 그런 날이었다. 호기심을 따라 뛰듯이 걷는 아기가 있고 농구 골대 쪽엔 길거리 농구를 하는 한 무리 학생들이 있고 사람들은 팽이처럼 동글동글 트랙을 따라 걷고 있었다. 어디선가 긴 머리카락을 하고 아직 교복을 갈아입지 않은 학생 두 사람이 트랙과 잔디 경계에 서서 뭔가를 하고 있었다. 조금 어두웠고 달리느라 안경을 착용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멀리 서는 잘 보이지 않았다. 숨차지 않게 달리고 호흡을 조절하는 데 더 신경을 쓰며 달려 나가고 있었다. 이윽고 바람을 타고, 투명하고 둥글고 일렁이는 것이 내게로 와 부딪혀선 조각나 사라졌다.


웃음소리가 별빛 조각처럼 부서지는 게 들렸다. 달려나가며 커다랗게 공중을 유영하는 비눗방울들을 터트리고 터트리며 나도 별빛 조각처럼 웃었다. 찰라나의 세상이 부서지고 조작 나고 사라지면서 끊임없이 새롭게, 이어졌으나 질감이 다른 아름다운 세상이 이룩되고 있었다. 시야에 들어오는 비눗방울과 귓가를 간지럽히는 웃음소리는 각각의 세상에서 파멸되었지만 그러해서 아름다웠고, 이 파멸된 아름다움은 사라져서 영원한 것이 되었다.


운동이 끝나고 땀을 훔치고 숨을 고르며 물을 마셨다. 통합된 하나의 세상은 분열되고 분류되고 구획되어 떠돌았다. 운동장 너머를 타고 온 음식 냄새를 맡고 아무 맛도 나지 않는 물을 마시며 냄새의 세상과 맛의 세상은 뒤엉켰다. 마치 잭슨 폴록의 그림처럼, 전체가 혼동된 하나처럼 보이지만, 낱낱이 각자이듯, 그 어떤 의도와 우연으로든 우리가 인식하는 하나의 세상은 존재할 수 있는 가장 큰 수만큼의 혼재와 질서로 이뤄진 기적이다. 여전히 키신의 피아노는 귀속에서 황홀하고 하늘은 오직 하늘빛으로 팽배하다. 내 앞에 펼쳐진 세상이 성실하게, 부서지며 생성하며, 오직 아름다움으로 직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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