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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 Jeongseon Sep 06. 2023

권태

아무리 좋아하는 일이라도 반복되고 나면 반드시 질리는 순간이 올 때가 있다. 오래 같은 일을 반복해 온 사람들만이 누리는 특권 같은 권태감은 진득하게 오래 붙잡아 본 적 없는 사람에겐 사치처럼 먼 감정이다. 뭔가 오래 하지 않더라도 질리는 예도 있는데 거기엔 변덕이라든지 무기력이라든지 이런 언어가 어울리지 감히 권태를 붙이기엔 경박한 감이 있다. 권태라는 무게를 감당할 수 있으려면 세월의 더께가 반드시 필요하다.


운동을 진득이 가장 오래 했던 게 십여 년 전 그만둔 요가였다. 요가는 근 십 년 세월을 거의 매일 했다. 몸이 가벼웠고 유연했고 건강했고 잔병이 없었다. 무엇보다 몸이 마음에 드는 형태로 유지되었다. 어쩌다 운동은 모조리 그만두게 되고 과중해지는 직장 업무에 찌들다 보면 운동이란 말만 들어도 시드러워졌다. 하고 싶은 종목은 테니스, 수영, 검도, 궁도... 끝없이 나열할 수 있었지만, 시간을 낼 심적 시간적 여유 모두 부족했다. 하고 싶은 마음이 한 줌이면 하고 싶지 않은 이유 수십 개가 공처럼 둥실 떠올랐다.


몸이 망가지는 것은 순식간이라면 회복되는 것은 길고 가년스러웠다. 일을 그만두면 시간적 여유는 찾을 수 있었지만 궁핍해져서 뭔가를 시작하는 게 어려웠다. 운동을 계획적이고 체계적으로 배운다는 것은 돈이 들었다. 쉬지만 쉬는 것 같지 않은 시간을 보내며 병원에 거금을 지급해 가며 어느 정도 회복하고 나서 다시 취직하면 이 상황은 반복되었다. 언제부턴지도 알 수 없었다. 과중한 업무-번아웃-병-퇴사. 더구나 큰 수술을 한 이후부터는 사건·사고 및 병이 쫓아다니는 게 아닌가 싶게 자주 아팠다. 나가서 걸으라, 나가서 볕을 쬐라, 나가서 운동하라... 다 빛 좋은 개살구였다. 나갈 수 있는 정도의 의지만 만들어 낼 수 있으면 좋겠다고 어느 날은 울면서 생각했다.


심신이 완전히 망가진 상태에서, 그런데도 최선을 다해서 정말 죽을힘을 짜내어 서울과 대전에서 북토크를 하고 난 후, 날연한 상태로 며칠을 보내다 문득 일어서서 나갔다. 나가서 걷다가 무작정 달렸다. 계획도 없이 단순히 충동이었다. 랩으로 얼굴을 칭칭 감은 것처럼 숨 쉬는 게 힘들어져서 집조차도 평온을 앗아간 듯 괴로웠던 날의 급작스러운 움직임이었다. 그 시작을 기점으로 운동을 했다. 달리고 걷고 근력운동을 하고 그런 자신의 행적을 기록하고 사방에 알렸다. 어떨 때는 과욕을 부려 설정값대로 움직이려니 부담감이 심한 적도 있었다. 그러면 여지없이 목표치를 내렸다. 언제부턴가는 오늘의 운동을 완성하는 링은 무시하기로 했다. 링을 채우는 것보다 양질의 운동이 절실했다.


쓰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고 생각하면서도 글을 쓰는 일은 생각보다 강력한 동력이 필요했다. 여러 개인적인 사정으로 며칠 글쓰기를 멈추고부터 다시 시동 거는 작업은 며칠째 엉망이다. 여전히 빈 곳을 바라보며 가만히 앉아 있는다. 독서하기도 하고 애니메이션을 보기도 한다. 가끔은 소셜네트워크를 뒤적이기도 한다. 마음을 움직일 한 단어, 한 구절, 하나의 상황이 필요했다. 그러나 그것은 내 안에서 시작되지 않으면 전혀 동기로 작동하지 않았다. 망연해져서 빈 페이지를 바라보고 바라보다가 첫 문장을 넣는다. 그리고 이어 쓰기 시작한다. 글에 탄력이 붙고 속도가 붙는다. 문장이 문장을 부르고 단어가 단어를 부른다.






정병으로 인해 수시로 무기력이나 불안 등과 싸워야 하는 입장에서 조금 우스운 바람이 생겼다. 바로 ‘권태로움’을 경험할 것. 글 시작에도 말했듯 권태로움은 무게감을 가진 언어다. 진득하고 깊은 마음가짐으로, 오래 지탱하며 살아온 세월을 겪어보지 못한 사람은 감히 건드릴 수도, 접근할 수도 없는 말. 마치 침향목처럼 담가진 적 있는 사람만이 견디어 내느라 겪게 될 고통의 감정. 그러나 마침내 그윽한 향기를 멀리멀리 밀어내며 어떤 완성에 다다르게 될 것들의 일시적 멈춤 같은 것.


그러므로 나는 또다시 오늘의 나를 이룩하고 있는 안일함을 때려 부수고 무기력에 펀치를 날려 버려야 한다. 쉽게 아프지 않을 체력을 차근차근 채워나가야 하고 쓰는 사람으로서 스스로 부끄럽지 않게 날카로운 시선으로 살펴 써야 한다. 권태라는 감정이 올 수 있는 자격을 갖춰야 하고 오더라도 스쳐 지나갈 수 있게 단단해져야 한다. 나 자신에게도 선해야 한다. 그 시작이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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