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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 Jeongseon Oct 11. 2023

다시, 시작되는 관계



브런치를 하면서 댓글 창구를 폐쇄해 놓고 글을 올렸었다. 소통하고 싶지 않다. 무서웠다. 나름 폐쇄적으로 운영하는 SNS에서도 내 글은 박제되고 공유되고 호도되고 오도되고 비난받고 놀림당하기 일쑤였다. 그건 괜찮았다. 외할머니가 어릴 때부터 가르친 말씀, 엄마에게도 말하면 소문나지만 소에게 한 말은 소문나지 않는다, 내가 뱉어내는 순간 내 말은 내 것이 아니게 된다. 각자의 사정으로 이해하고 오해하고 그런 게 당연한 거니까. 상대가 누구인지 기억조차 않는 것은 그래서였다. 분한 마음을 상대에게 둬서 뭐 하나. 원인제공은 언제나 나인 것을.




브런치를 열었을 때는 느닷없이 시작된 거였다. 내 글을 쓰고 싶지만 창구가 마땅찮을 때 떠오른 게 브런치였다. 대강의 기획서를 던져놓고 당연히 안될 줄 알았다. 수십 번 떨어지는 사람이 많은 곳이었고 당시 나는 모든 게 지쳐서 아프기만 했으니까 뭘 잘 해낼 힘도 의지도 능력도 없었다. 그러니 브런치 작가가 된 건 순전히 운이었다. 그 운을 붙잡고 그 운이 아까워서라도 글을 썼다. 하지만 소통은 여전히 내게 소원한 일이었다. 지난해 말부터 시작된 온갖 병들은 나를 침범하고 찢어발기는 것 같았다. 하루를 버티는 게 최선인 삶이었다. 지금도 그렇다. 대화가 불가능하는 상황에서 낯선 이들이 건네는 어떤 말에도 응답할 마음이 없었다. 그저 내 최선은 글을 올리고 페이스북에 브런치 발간했어요 하고 전체공개로 알리는 게 전부였다.




우연히도 내 글을 읽어주는 독자들이 생겼다. 무슨 경로로 내게 닿았는지 모르지만-여전히 모른다- 좋아요를 눌러주는 사람들이 고정되고 천천히 넓어져 갔다. 보아하니 11회 브런치북 뭔 행사가 있는 모양이라서 그런가 싶기도 하다. 좋아요는 좋아요를 부른다 그런 자세로 하루 최대치 좋아요를 무심코 누르는 사람들일 수도 있다. 책을 내고 싶다는 욕망이 욕망을 부추기는 곳이 브런치니까. 나는 대답 같은 좋아요도 놓칠 때가 많았다. 글을 쓰고 올리는 것도 부대끼는데 언제부턴가는 글조차 쓸 수 없게 돼 비축해 둔 글을 정리해서 올리게 되고 의식마저 희미한 날들이 이어지는 속에서 관계라는 것은 가장 먼저 잘라내야 할 과제였다.




스스로를 감당하지 못하면서 관계를 이어나가면 반드시 상대에게 상처를 준다. 내가 이미 온몸이 가시덩굴인 상태이기 때문에 그 가시가 나를 찌르고 찌른 자리마다 더 단단한 가시가 돋아나는 저주 같은 시간 속에서 나는, 사람을 가까이하는 게 무서웠다. 조금이라도 아끼는 마음이 있다면 상처를 줬다는 것이 상처가 됐다. 그러니 아예 인연은 더 만들지 않는 게 상책이라 생각했다.




우연히 내 글을 좋아요 눌러 준 분의 글을 읽었다. 매즈 미켈슨에 대한 이야기였다. 순간 정말 반가웠다. 내가 좋아하는 대배우 매즈에 대해서 나름 분석한 그 글을 읽으며 나도 모르게 그분의 글 아래 댓글을 달고 있었다. 내 첫 댓글이자 브런치에서 나눈 첫 개인적 소통. 아, 다르지 않구나. 그저 사람이구나 하는 안도감이 스미는 순간.




무섭다고 물러나는 건 역시 내 성격에 맞지 않다는 걸 알았다. 지금 보고 있는 일드에도 웃지 않는 사람이 나온다. 체계적이고 명확하게 일을 처리하는데도 단지 그 태도 때문에 지적받고 객관적 능력 이하 취급당하는 사람. 당연히 여성이다. 남성에겐 그만큼의 웃음을 요구하지 않는 사회라는 건 우리가 다 아는 사실이고. 그는 태도가 당돌했다는 것에 대해 사과는 하지만 사건 처리에 대해서는 절대로 물러서지 않고 되받아 친다. 그가 웃을 때는 사적인 관계가 성립되어 팽팽한 긴장끈을 놓을 수 있는 상태가 되었을 때 비로소 가능했다. 나는 웃지 않는 사람이다. 태도가 오만하고 불손하다고 상사들이 화를 냈다. 그걸 당돌하고 당차다고 인정하는 이는 여전히 내게 고마운 분으로 기억된다. 그가 대체로 쓰레기 취급당하는 태도를 지녔다 하더라도 그의 능력이 매우 뛰어나다는 것, 절대로 여성혐오적 태도나 여성대상화를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그는 내게 안정감을 주었다. 위선은 공격적이지만 위악은 공격적이지 않다. 대체로 그저 외로운 것뿐이다.





다시, 나는 이제 댓글 창구를 열어볼 계획이다. 소통을 잘할 자신은 없다. 그러나 그러나, 대댓글 달기엔 지쳐있겠지만, 여유 공간을 두는 것은 매력적이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저 내버려 둘 수도 있다. 하지만 시작이란 것이 내겐 두려움보다 설렘일 때 가능한 것이니까, 이 설렘이 기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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