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을 준비하는 그 시간부터 여행의 자유가 시작된다.
드높은 하얀 천장, 환풍기 돌아가는 소리, 그 공간 속 낮게 깔리는 사람들의 대화 소리.
게이트 앞 공항에서의 시간은 멈춰있는 것 같다. 비행기 탑승을 기다리는 것 외에는 딱히 할 것 없는 이 시간에 멍하니 사람들을 구경하고 혼자서 사색에 잠기는 것이 나에겐 늘 여행의 시작이다. 이 순간부터 현실과는 동 떨어진 낯선 공간에 와 있는 느낌이 들고, 고독함 마저 느껴진다. 고독한 시간에 나는 삶에서 힘들었던 것들을 하나씩 내려두고 비워내면서 온전한 내가 되어 여행할 준비를 한다.
가족과 친구들에게 잘 다녀오겠노라고 메시지를 보내고 비행기에 오르면, 지상에 있는 누구와도 연락할 수 없고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을 알 수 없게 되는 비행이 시작된다. 그 순간이 여행의 시작이며 내가 완전한 자유를 느끼는 시점이다.
이번 여행의 비행 시간은 14시간 35분.
하루의 절반이 넘는 시간을 이코노미석의 비좁은 좌석에 웅크려 앉아서 보내야 하지만, 나는 이 지루하고 할 것 없는 시간이 비로소 나의 여행을 완전하게 채워준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