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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동휘 Nov 26. 2024

얼음을 먹는 간호사

43개의 얼음이 가득찬 커피를 다 마시고 나서야 대화를 끝내자고 했다. 

"병신같이, 얼음 개수를 또 추정하고 있어?"

"재밌잖아. 이렇게 살아가는 게, 삶에서 이런 작고 소소한 재미라도 있어야지 

삶을 살아가지 않겠어? 나는 이러지 않으면 미쳐버린다고. 이틀에 상대하는 

환자 수랑 비슷하네. 하루에 대략 23-24명의, 나는 그런 환자들을 돌보니까."

루틴을 가진 소설가나 시인들과는 달리, 내 친구는 딱히 루틴이라는 게 없어보인다. 

그래서 그런지 더욱 없어보인다. 



민호는 응급실 간호사였다. 하루에 23-24명의 환자를 돌보는 그의 일상은 누군가에겐 지루할 수 있었지만, 그에겐 또 다른 의미가 있었다. 매일 밤, 그는 자신의 삶을 예술 작품처럼 해석하려 했다. 얼음을 세는 것, 환자의 이야기를 마음속에 새기는 것, 그리고 언젠가 쓰게 될 소설을 꿈꾸는 것.

"나는 이렇게 살지 않으면 미쳐버릴 거야."

그의 친구들은 그를 이해하지 못했다. 루틴 없는 삶, 그러나 ironically 매우 치밀하게 계산된 삶. 민호는 자신의 삶을 한 편의 시처럼, 한 권의 소설처럼 만들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은 늘 그의 꿈을 옥죄었다.

응급실은 매일 같은 광경의 연속이었다. 피로, 고통, 절망. 그 사이로 민호는 작은 아름다움을 발견하려 노력했다. 혼절한 환자의 손을 잡아주는 순간, 마지막 숨을 거두는 노인의 주름진 손등을 쓰다듬는 순간, 그는 자신만의 서사를 만들어냈다.

밤마다 그는 노트에 기록했다. 오늘 만난 환자들의 이야기를, 그들의 눈빛을, 그들이 내뱉은 마지막 말들을. 그 기록들은 언젠가 그의 소설 속 캐릭터가 될 운명이었다.

그의 아파트는 책과 노트로 가득 찼다. 벽에 붙은 포스트잇들, 그 위에 적힌 숫자와 짧은 문장들. 23번 환자의 눈빛, 17번 환자의 마지막 웃음, 42번 환자의 눈물. 이 모든 것들이 그의 미래 소설을 위한 재료였다.

"언젠가 내 소설을 읽으면, 사람들은 알겠지. 이 세상의 고통과 아름다움을."

하지만 현실은 냉정했다. 그의 소설은 아직 한 줄도 완성되지 못했다. 

그래도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43개의 얼음을 세듯, 그의 삶의 조각들을 하나씩 모으고 있었다. 

오늘 밤에도 그의 손가락은 노트 위를 미끄러졌다. 또 다른 하루, 또 다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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