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만땅 된 날
북 치고 장구 치듯 내 생일을 시끌벌쩍 챙기며 유난을 떨던 시절이 있었다.
"아들아, 엄마생일 한 달 전이다!
ㅇㅇ아빠, 미누라 생일 일주일 후인 거 알지!
나는 생일 깜빡했다고 서운해하는 속 좁은 엄마 아냐.
미리미리 알려주는 태평양 마누라니 우리 집 세 남자들은 복 받은 거지"
생일 전 호들갑으로 남편과 두 아들은 내 생일을 일찌감치 기억할 수 있었다.
강산이 바뀌는 20여 년 두 아들은 미국에 있었고 그 시절엔 조용히 미역국 먹는 날이었다. 소년에서 청년이 된 자식들이 서울로 돌아온 후부터 내겐 행복 가득 웃음충만의 시간 시작이 되었다. 옆구리 찔러 챙겼던 그 옛날은 잘 자란 두 청년이 챙기는 남부러운 날이 되었기 때문이다.
어느 해부터 부담스럽기 시작한 생일이 어찌 그리 자주 돌아올까 싶은 나이가 되었다. 굳이 들어가는 나이를 떠올리기도, 수많은 초를 꽂은 케이크를 보는 것도 고역이었다. 이런 내 마음을 알아챘는지 다행히 내 생일에 케이크와 함께 부르는 뻘쭘한 축하노래는 사라졌다. 두 아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내게 최고의 선물이었다.
새 해를 시작하며 바로 맞는 이번 생일에도 두 아들이 축하해 주는 가족상봉의 날이었다.
저녁 늦게 아파트 벨이 울리며 인터폰화면에 잘생긴 두 아들의 얼굴이 보였다. 후다닥 달려가 문을 여는 내게 "특별 휴가까지 내어 왔다"는 작은 아들의 넋두리가 반가움이 되어 쏟아졌다. 뒤따라 들어오는 큰아들의 듬직한 미소는 우리 부부를 아들바보로 만들며 집안은 웃음소리로 넘쳤다. 반가움과 설렘으로 가득해진 거실에 쇼핑백과 커다란 박스가 자리했다. 연초에 맞는 내 생일에 늘 부모의 선물을 함께하는 두 아들이었다.
딸 같은 작은 녀석의 "아빠, 출퇴근 때 따뜻하게 입으시라"며 꺼내는 모자와 패딩재킷이 곰살맞다. 내게 귀띔받아 준비한 아들 선물에 남편은 입이 귀에 걸린 채 싱글벙글이다. 작은아들이 씌어주는 모자에 신이 난 남편은 아들바보 확실하다.
거실 한쪽에서 박스를 열고 뭔가를 설치하는 큰아들이 한참만에 말했다.
"엄마, 이제 음악은 이 스피커로 들으세요. 라이브 공연 못지않게 생생할 거예요"
역시 큰 아들의 선택은 상상이상이다.
음악을 좋아하는 나를 위한 아들의 통 큰 선물이 모두의 기대를 앞지른다. 자신의 결정에 대만족 할 엄마를 확신하는 ENTJ 큰 아들의 표정이 압권이다. 우주선모양의 스피커에서 나오는 음악이 거실 전체를 덮으며 우리를 압도한다.
"우와 이 스피커 완전 유명 브랜드인데!!"
천진난만 작은 아들의 반응에 스피커의 사용법을 설명하는 큰아들의 진지함이 K장남 분명하다.
퇴근 후 거실과 서재의 각자 공간에서 자유시간을 즐기는 우리 부부가 음악을 들으며 함께하는 시간을 가지라는 깊은 뜻일 것이다.
그런데 큰 일이다! 나도 남편도 각자의 공간을 벗어날 마음은 없는데 말이다. 거금을 들인 아들의 호의가 무용지물이 되지 않아야 할 텐데.
나이 한 살 더 먹어도 변함없이 각자 따로가 최선인 우리 부부와 이렇게 다른 부모를 각각 닮은 아롱이다롱이 두 아들이 당연한 듯 신기하다. 절간 같던 아파트가 두 녀석의 수다로 명절 앞둔 장날처럼 와글거린다.
올해도 무탈하게 우리 가족 잘 지내길 바라는 이순의 생일별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