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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항ㅡ'도시 탐험역'에서 만난 피카소

by 가히

프랑스 오르세 미술관은 모네, 세잔, 고흐 등 인상주의 거장들의 작품뿐 아니라, 건물 자체의 예술적 가치로도 유명하다. 산업시대의 상징이었던 기차역을 예술의 전당으로 재탄생시킨 공간이기 때문이다.


11월 첫 주말 가을이 마음을 들썩이게 한 날, 친구와 함께 향한 곳은 바로 '도시탐험역'이라 불리는 장항 문화예술 센터였다. 집에서 차로 20분이면 갈 수 있는 이곳은 바로 근대 산업의 흔적을 간직한 구 장항역을 감각적인 예술공간으로 탈바꿈시킨 장소였다.


1930년, 일제강점기 시절 충남 장항항과 전북 익산을 잇는 장항선의 종점으로 문을 연 장항역은 한때 지역 산업의 중심지였다. 장항제련소와 철도 화물망이 지역경제를 이끌었으나, 1989년 제련소의 폐쇄와 함께 쇠퇴기를 맞았다. 이후 장항읍은 문화생태도시로의 전환을 시도했고, 2008년 새 장항역이 들어서며 옛 역사는 문화예술공간으로 다시 태어났다.


2025년 11월의 첫날, ‘도시탐험역’에서는 두 개의 전시가 열리고 있었다. <피카소와 동시대 화가>란 전시회와 <장항 1931, 움직이는 경계>란 제목의 설치미술전이었다.



아담한 실내에는 피카소의 판화 작품과 그가 유일하게 촬영을 허락한 사진작가 앙드레 빌레르의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하지만 내 시선을 단번에 사로잡은 것은 바로 그의 도예 작품이었다. 세계적인 그림으로 알려진 피카소가 흙과 불로 만들어낸 도예 작품들을 통해 입체감과 기하학적 구성의 조화를 이루며 전혀 다른 예술적 질감을 선사했다.

ㅡ투우와 사람들(Corrida with figures)ㅡ

ㅡ반인반수(Cavalier faun)ㅡ


특히 얼굴과 동물을 주제로 한 도자기들은 예술과 일상의 경계를 허물었다. 피카소가 말한 “예술은 고상한 것이 아니라, 일상적일 수 있다”는 철학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 친구와 나는 감탄을 금치 못하며 “역시 천재는 다르다”, “진짜 한 점 소장하고 싶다”는 말을 연발했다.


전시장을 나서자, 탁 트인 역 광장이 가을 햇살로 반짝였다. ‘소리 나는 나무’의 맑은 종소리, 기차 전시관, 그리고 철길을 따라 전시된 다양한 작품들이 어우러져 마치 시간여행을 하는 듯했다. 고즈넉한 철길을 걸으며 마음 깊숙이 가을이 스며드는 것을 느꼈다.


발걸음을 옮기다 보니 어느새 윤슬이 반짝이는 금강이 눈앞에 펼쳐졌다.

‘그래, 장항은 항구였지.’

멀리 내륙의 군산시와 이어지는 금강교, 잔잔히 떠 있는 배들, 그리고 높고 푸른 하늘이 한 폭의 그림처럼 다가왔다.



짧은 순간 느껴졌다. 멀리 떠나는 여행도 좋지만 우리가 사는 지역을 둘러보고 그 속에서 사계절을 느끼는 일 또한 세상과 소통하는 또 다른 여행이라는 것을.


산업의 흔적을 품은 낡은 역이 예술의 플랫폼으로 거듭난 장항 ‘도시탐험역’.

그곳에서 만난 피카소의 예술과 가을빛 풍경은, 일상 속 예술이 얼마나 큰 울림을 줄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하루의 행복이 이 가을 아름다운 추억으로 간직되는 시간이었다.


https://omn.kr/2fw5j



















































전시된 작품들을 따라 걸음을 옮기자 어느 순간 윤슬이 빛나는 강이 눈앞에 펼쳐졌다.


'아! 맞아 장항은 항구였지'


멀리 보이는 내륙 군산시와 연결된 금강교의 모습이 높은 하늘과 반짝이는 강의 배들의 한가로움과 함께 한 편의 그림 같은 모습으로 다가왔다.


'세상은 넓고 갈 곳은 많다'라고 했던가.

멀리 떠나는 여행도 좋겠지만 내가 사는 지역을 둘러보며 사계절을 느끼는 하루하루가 갈 곳 많은

세상과 소통하는 또 다른 삶이 아닐까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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