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에 하와이, 말로만 듣던 그곳에 가족과 함께 여행을 다녀왔다. 그런데 갈 때 항공사 직원의 실수로 가족끼리 함께 앉아 가지 못하고 따로 따로 떨어져 가야 했다. 큰 맘먹고 비싼 돈 써가면서 가는 여행인데 출발부터 삐걱거린 것이다. 그것도 다른 사람의 사소한 실수, 아니 관심 부족 때문에 말이다. 비행기가 이륙하여 날아가고 있는 동안에도 10시간 넘는 거리를 가족끼리 뿔뿔이 흩어져 가야 하는 상황에 대한 분노가 쉽게 가라 앉지 않았다. 그런데 나중에, 내가 화를 내고 있는 동안에는 현재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할 수 없었다는 것을 문득 깨달았다. 사실은 항공기에 오르고 나서도 좌석을 바꿀 수 있는 기회를 만들 수도 있었다. 가만히 보니 아내와 딸아이 옆 좌석에 있는 두 사람은 서로 모르는 사이 같아 보였다. 타자마자 사정 얘기를 하고 양보를 부탁해볼 수도 있었다. 되던 안 되던 말이다. 그런데 얼굴도 모르는 직원의 실수, 아니 그것으로 인해 벌어진 원하지 않는 상황에 대해 분노를 하고 있는 동안에는 아예 그런 가능성도 생각 못했다.
몇 시간 전에 일어난 일에 대한 분노가 나를 지배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마치 내가 분노에게 사로잡혀 나의 의지가 아니라 분노가 시키는 대로 꼭두각시처럼 움직이는 형국이었다. 더 심각한 것은 그러는 와중에도 나는 내가 나의 의지대로 최대한 합리적으로 판단하고 행동한다고 믿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 작은 사건에서 나는 큰 진리를 깨우쳤다.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과거의 일에 대해 부정적 감정을 가지게 되면 정작 현재가 그 부정적 감정에 지배 당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럴 경우 현재에 벌어지는 일에 집중할 수 없게 되고 그래서 잘못된 선택과 판단을 하게 되면 그것은 또 부정적 감정을 더욱 증폭시키게 된다. 분노와 같은 부정적 감정도 마치 살아 있는 생물처럼 스스로 생존하고 성장하기 위해, 다시 말해 인간의 마음 속에서 오래 존재하기 위해 그러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지난 일에 대해 부정적 감정에 사로 잡히면 유연한 사고를 할 수가 없다. 현재의 상황에 맞는 사고와 행동이 필요한데도 과거 사건에 덫 칠해진 후회나 분노 같은 부정적 감정에 사로 잡혀 딱딱하게 굳어 버리고 만다. 흔한 예로 부부싸움을 하고 나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해야 한다는 것을 이성적으로는 인식하면서도 마음 속에 활성화된 분노 때문에 결국 사과하지 못하고 몇 날 며칠씩 냉랭하게 지냈던 경험들을 들 수 있다. 과거 사건에 대한 부정적 감정은 이렇게 사람들을 정형화된 존재로 만들어 버린다. 사람이 정형화되면 고정된 형체를 갖추게 되는 것이라 외부와의 마찰이 점점 심해진다.
결국은 ‘지금/여기’에서 올바른 의사결정이나 필요한 도움을 받을 수 없다. 그것을 좀 더 본질적으로 표현하면 과거의 사건에 덫 칠 해진 부정적 감정은 나를 계속해서 과거의 그 순간에 머물게 하기 때문에 정작 나는 ‘지금/여기’에 존재할 수 없다. ‘지금/여기‘에 존재하지 않으니 ‘지금/여기‘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응하기 어려운 것이다. 하지만 누구나 알다시피 우리는 물리적으로 지금/여기에서만 살아 갈 수 있다.
사람에게 언제나 좋은 일만 생길 수는 없다. 그러나 잘못된 일이 생겼더라도 이것이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두 가지를 할 수 있다. 하나는 과거를 되돌리는 것이다. 이것이 가능하다면 말이다. 그러나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잘못된 일의 결과를 받아들이고 거기서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어느 경우에나 지나 간 일에 대한 지나친 후회와 분노로 인해, 인간이라면 누구나 회피할 수 없는 ‘지금/여기’를 암울하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
과거의 잘못된 일을 되돌릴 수 있다면, 그것보다 더 바람직한 해결책은 세상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과거를 되돌 수 있다면……’이라는 생각을 하면 그대의 마음 속에도 어느새 몇 가지 가슴 아픈 기억들이 떠오를 것이다. ‘그 때 거기에 내가 있었더라면, 그 비극적인 일을 피할 수 있을 텐데……’ 내 마음 속에도 아주 오랜 전 무너지게 슬프고 원망스런 사건들이 떠오른다. 하지만 과거는 기억하고 추억할 수는 있어도 되돌릴 수는 없다. 아무리 대단한 부와 명예와 권력을 가진 사람이라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비록 그것이 가슴 아픈 일이라도 ‘받아들이는‘ 것이다.
잘못된 일의 결과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결과에 대해 교훈은 챙기고 부정적 감정은 놓아버리는 것을 말한다. 그렇게 받아 들여야만 지나간 일들이 현재에 나쁜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자신의 후회스런 선택도 마찬가지다. 비록 실수로 인해 어느 정도 흠결이 있는 선택을 했다 할지라도 그것이 가져올 손실보다 혜택을 생각하면서 받아들여야 한다. 손실은 엄청 크고, 혜택은 미미할지라도 그 선택이 돌이킬 수 없는 것이라면, 혜택에 초점을 맞추고 겸허하게 잘못된 선택의 결과를 받아들이는 것이 지혜로운 것이다. 그리하여 과거에 발생한 일로 인해 현재에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받아들이는 것‘의 본질은 역설적이게도 ‘놓아 버리는 것‘이다. 과거의 결과를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먼저 과거의 결과에 덫 씌워진 부정적 감정들을 놓아 버리는 것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부정적 감정들을 놓아 버려야 잘못된 일들을 이성적이고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판단할 수 있다. 과거의 사건에 덫 칠해진 감정에 붙들려 있는 한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 그런 부정적 감정에는 후회, 분노, 죄책감 등이 있다. 뿐만 아니라 성공한 과거에 대해서 느끼는 지나친 자부심도 놓아 버려야 할 대상이다. 그러므로 과거를 놓아버린다는 것은 과거의 기억을 지워 버린다는 것이 아니라, 바로 과거의 사건에 덫 칠해진 부정적 감정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