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반은섭 Jan 11. 2023

무한으로 펼쳐진 숫자, 무한으로 펼쳐질 인생

수학에서 찾은 회사후소(繪事後素)의 지혜

논어에 회사후소(繪事後素)라는 말이 나옵니다. ‘그림을 그리는 일(繪事)은 먼저 바탕을 희게 갖춘 뒤에(後素) 한다.’는 의미이지요. ‘사람은 바른 바탕 위에 꾸밈을 더해야 한다.’는 뜻으로 해석하기도 합니다. 여기서 소(素)는 흰빛을 나타냅니다. 생사(生絲)로 짠 명주의 물들이지 않은 본래의 빛깔입니다.


그래서 소(素)에는 '바탕'이나 '본디‘ 또는 '평소'의 뜻이 있습니다. 소재(素材)는 예술 작품의 바탕이 되는 재료를, 소망(素望)은 평소에 품고 있던 바람을 말하고, 소박(素朴)은 꾸밈없이 순박하다는 뜻입니다.


중학교 수학에서 처음 나오는 개념이 바로 소수(素數)입니다. 0.01과 같은 소수(小數)가 아닙니다. ‘素(바탕 소)’ 자를 쓰는 소수는 오직 1과 자기 자신으로만 나누어 떨어지는 자연수입니다. 가장 작은 소수가 무엇일까요? 가장 작은 소수는 2입니다. 2는 오직 1과 2로만 나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소수를 나열해 볼까요?



2, 3, 5, 7, 11, 13, 17, 19, ...



두 개 이상의 소수를 곱하면 1 보다 큰 모든 자연수가 나옵니다. 예를 들어 2×3=6 이지요. ‘소인수분해’라는 수학 용어를 기억하실 것입니다. 자연수를 구성하고 있는 소수들을 나열하는 것입니다. 360을 소인수분해 해보겠습니다. “360=2×2×2×3×3×5” 곱셈의 관점에서 소수는 자연수를 이루는 성분입니다. 물질을 이루는 가장 단위인 원소(元素, element)와 비슷한 개념입니다.


화학에서 수많은 분자식들의 반응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분자식을 구성하고 있는 원소들의 성질을 알아야 합니다. 수론(數論)을 연구하는 수학자들은 모든 수에 적용되는 공식을 찾기 위해 소수를 분석합니다. 300000000, 3억을 이루고 있는 소수는 2, 3, 5 밖에 없습니다. 크고 복잡한 수들도 몇 개의 소수로 이루어져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수를 연구하는 일은 먼저 바탕이 되는 소수(素數)를 이해한 후의 일입니다.




영화 <박사가 사랑한 수식> 중에서




더 신기한 것은 소수가 무한히 많다는 것입니다. 무한한 소수가 어떤 식으로 분포하고 있는지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수학자들은 불규칙해 보이는 소수에 우주와 자연의 신비를 풀어낼 무엇인가가 숨겨져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무한한 자연과 유한한 인간이 떠오릅니다. 우리는 무한히 많은 소수 중 유일한 몇 개의 소수로 이루어진 유한한 인간이 아닐까요? 과연 나는 어떤 소수들로 이루어져 있을까요? 또 이 소수들이 앞으로 어떤 수들을 만들어 낼까요?     




무한한 소수와 인생




나는 누구이며,  인생은 앞으로 
어떻게 흘러갈 것인가?




계묘년(癸卯年) 첫 번째 글에서 동서고금 철학의 화두를 꺼내봅니다. 먼저 순수한 바탕으로 돌아가 내가 가지고 있는 소수(素數)가 무엇인지 찾는 일부터 해야겠습니다. 물론 그림 그리는 일은 그다음 일입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소수들이 나를 단단히 붙잡아주고 밝은 등불을 비춰줄 것입니다. 회사후소의 마음으로 근본을 새로이 다져 삶의 전기를 만드는 새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반은섭(‘인생도 미분이 될까요’ 저자. 교육학 박사)]





매거진의 이전글 월드컵 토너먼트 경기 몇 번 열릴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