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좋아나 Feb 14. 2024

잘못된 감정은 없어요

키키의 경계성 성격장애 다이어리 관람기


오랜 연휴의 마지막 날이었다.


연휴 앞뒤로 회사 휴일이 추가되어 생각보다 길게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쉬려고 작정한 연휴 기는 했지만, 5일을 내리 쉬고 나서야 밀린 일들 처리에 나설 수 있었다. 밀린 일이란 주로 자동차 뒤치다꺼리였다. 앞으로 달려갈수록 누가 쫓아오는 것 같이 느껴지는 주유 경고등을 무시한 채 며칠, 차에 오르고 내릴 때마다 겉옷으로 자동차 문에 쌓인 먼지를 닦고 있는 찝찝함을 느낀 지는 몇 주, 그리고 1년간 차를 빌려주며 엔진오일부터 갈아서 타라는 제부의 말을 뇌의 어느 구석에 접어 밀어 넣은 지 10개월 만에, 이 세 가지를 고작 3시간 만에 해결했다.


모든 일은 마음먹기에 90%의 시간을 할애한다.


기름을 가득 채워 든든한 마음으로, 하얗게 반짝거려서 괜히 상쾌해진 마음을 안고, 영하의 추운 날 시동이 걸리지 않아도 연관관계는 없지만 괜히 엔진오일을 갈지 않았다는 죄책감에 시달리지 않아도 되겠다는 홀가분함으로, 3시간이나 무료주차를 해준다는 서울 시내에서 찾아보기 힘든 너그러운 소극장을 향해, 이상하리만치 밀리지 않는 퇴근길 도로를 가로질러 공연장에 도착했다.


키키의 경계성 성격장애 다이어리


몇 년 새, 누구보다 정신질환과 성격장애에 대해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었던 나에게 넘어갈 수 없는 유혹적인 제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작뮤지컬과 초연이라는 정보에 큰 기대를 할 수는 없었다. 대학 시절 들락거렸던 대학로 소극장들의 창작뮤지컬들을 이 나이에 다시 공감하며 볼 수 있을까라는, 메마른 사회인이 되어버린 나에 대한 자조가 컸다. 그리고 첫 넘버를 보면서, 역시 이제 이런 유의 깜찍 발랄한 뮤지컬은 견디기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었던 것 같다. 그러나 그 이후로 장장 두 시간이나 하는 긴 호흡 속에서, 나는 내내 그렁그렁한 눈망울로 꺽꺽 울고 싶은 마음을 참으며 볼 수밖에 없었다.


이 뮤지컬은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는 대로 주인공인 키키가 경계성 성격장애를 헤쳐나가는 이야기를 담은 내용이다. 경계성 성격장애와 내가 앓았던 우울증과는 특징이 많이 다른 질환이지만, 주인공이 마주하는 감정과 상황들, 사고의 흐름, 상담의 과정,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를 들여다 보기, 부모님과의 갈등과 대화까지 그 과정이 내가 겪어온 것과 너무나도 닮아 있었다.


넘버들의 가사들도 가슴을 후벼 판다.


제일 먼저 '구세주들이 씨가 말랐나'에서 이 괴로운 인생을 누군가가 나를 구원해 줄 것 같은 희망을 가지고 여기저기 기웃거리던 나와, 그렇게 구세주를 찾아간 사람들이 생각나서 송곳 같은 가사라고 생각했는데, '잘못된 감정은 없어요'에서 결국 눈물이 그렁그렁해졌다. 요즘, 새로운 도전 앞에서 불쑥불쑥 올라오는 내가 부족한 것 같은 느낌과 일이 여유로워지면서 스멀스멀 올라온 불안감, 받아들이기 힘든 사소한 거절감에 또 나 자신을 미워하려 하고 있었다. 이 부정적인 감정들이 씨앗이 되어서 주저앉아서 머뭇거리고, 게으름을 부리며 핸드폰만 보고 있는 내가 못마땅했었다. 이 감정들이 잘못되지 않았다는 걸 다시 상기시켜 주는 노래가 눈물 버튼을 눌러버렸다.


나의 존재와 고통의 '정당성을 인정해'주는 지지자들을 찾거나 만들어가는 것은 나의 우울증의 시간에서 가장 어려웠고, 가장 잘했던 일이라 생각한다. 아직도 나의 부모님은 병과 나를 인정하지 않겠지만, 나의 고통을 인정하고 내 병의 이상하지 않음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그것이 큰 힘이 된다. 키키는 이상적으로 아버지까지 지지자로 만들어버렸지만, 거기까지 가진 못하더라도 병을 알리고, 이해하고, 인정해 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마음이 아픈 사람에게, 살아갈 정당성까지 만들어주는 일이다.


'영원한 것은 세상에 없다'. 영원히 좋은 것도 없지만, 영원히 나쁜 것도 없다. 나쁜 것들은 현재를 바라보며 흘려보내면 된다. 요즘 더욱 드는 생각은 더욱 찰나에 살아야겠다는 생각이다. 뭉뚱그려 현재에 살자고 생각하다 보면 뭉텅이의 현재가 과거와 미래를 끌고 들어온다. 찰나의 현재, 지금 코 끝을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 방금 먹은 김치볶음밥의 맛남, 방금 느낀 근육의 뻐근함, 더 날카로운 찰나에 집중하다 보면 미래의 불안과 과거의 후회는 잘려나가는 경우가 많다.


마음을 다해 커튼콜에서 일어나 박수를 친 적은 오랜만이었다. 정신질환을 앓고 살아가는 사람의 고통과 그 속에서 살 수 없어서 어떻게든 발버둥 치며 나아가는 치료의 과정은 참으로 나의 것과 비슷해서 공연이 끝난 후에도 한 동안 감정에서 빠져나오기 어려웠다. 어두운 밤에 라이트도 키지 않고 달렸다는 것을 주차하면서 깨달았다. 공감과 치유의 시간이었다.



덧. 극의 제목과 젠더 소스들 때문에 당연히 외국 뮤지컬을 들여온 것이라 생각했는데, 외국 책을 원작으로 한국에서 연출한 작품이라는 게 놀라웠다. 십수 년 전부터 탑이었던 남경주배우가 초연 창작 뮤지컬에 나오는 것도 신기했고.

매거진의 이전글 궤도 이탈의 시작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