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의 첫 인상
비록 코로나와 우울증을 겪긴 했으나, 홍콩에서의 일 외의 삶은 만족스러웠다. 좋은 친구들도 많이 만났고, 우물안 개구리가 세상 큰 맛을 본 것이 세상을 보는 시야를 많이 키워주었다. 그렇게 우울증 때문에 회사를 그만두고 다시 홍콩으로 취업을 하기 위해서 꽤 노력을 했었다. 안타깝게도 내가 있는 업종은 홍콩으로의 기회가 너무나 제한적이었다. 내가 홍콩에서 취업할 수 있는 자리는 홍콩 내에 1-2자리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고 나서는 홍콩을 떠나온 결정을 했던 것을 살짝 후회하기도 했었다. 물론 그대로 회사를 다녔다면 지금 엄청난 정신적 만신창이가 되어 있을지도 모를 일이지마는.
결국 나는 상대적으로 취업이 쉬운 한국으로 다시 돌아갔고, 몇 년 만에 한국에서의 회사생활을 다시 시작했다. 다시 시작한 한국에서의 회사생활은 실망스러웠다. 프랑스 회사라 다를 줄 알았지만, 생각보다 업무량은 과도했고, 과도한 업무량과 달리 더 배울 수 있는 것은 없었고, 선을 넘는 사생활에 대한 질문들, 회사 내부에서의 전방위 신경전들이 다시 해외로 나가고 싶다는 생각히 굳어지게 했다. 외국계 회사였지만 매니저가 당장 나를 해외로 보내줄 것 같지 않은 이 회사에서 해외로 나가는데에는 몇 년간의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는 것을 깨닫고 해외 취업을 다시 적극적으로 알아보기 시작했다. 다행히 한국에서 만난 애인도 해외생활을 지지해 주는 사람이었다. 그렇게 한국에서 다시 회사 생활을 시작한지 1년이 채 되기 전에 나는 싱가포르로 이직을 하게 되었다. 그 과정을 짧게 자평하자면 운도 좋았고, 노력도 많이했다.
그렇게 해서 나는 지금 싱가포르의 리틀인디아 근처의 한 서비스 아파트에 머물고 있다. 싱가포르로 이주하는 것을 '입싱'이라고 부르던데, 입싱한지 이제 딱 8주 정도 되어간다. 홍콩에 비해 싱가포르는 나에게 관심이 거의 없는 나라였다. 굳이 여행을 하고 싶지도 않은 곳이었고, 출장으로 한 번 와봤을 뿐인 3일 간의 체류에서 기억나는 것은 출장 중에 밤에 보러갔던 가든스 바이 더 베이 뿐이었다. 그 정원의 몽환적이고 동시에 인공적인 거대한 나무들은 garden city 라는 별명의 싱가포르의 이미지와 겹쳐졌었다. 딱히 관심이 있는 곳도 아니었던, 이 곳에 와있는 나를 생각하니 참도 한국을 떠나고 싶었구나 싶다.
두 달간의 싱가포르를 떠올리면 머릿 속의 지도와 이미지는 어지러운 퍼즐처럼 뒤죽박죽이다. 인도와 닮은 리틀 인디아 안에 머물고 있어서 인지, 아직 깨끗하고 인공적인 싱가포르는 잘 모르겠다. 마리나베이샌즈 쇼핑몰에 갔을 때나 잠깐씩 느껴질뿐. 대부분의 시간에서 보는 싱가포르는 예상과 달리 무단횡단도 잦고, 다양한 인종이 보이고, 입에 맞는 음식을 찾기 어렵고, 습기 때문에 생각보다 쉽게 지친다. 볕이 안드는 이 서비스 아파트에서 홀로있는 시간이 많다. 그래서 혼자 외딴섬에 떨어진 느낌이 들었던 홍콩에서의 첫 몇 달이 자주 생각나고, 가끔은 호기롭게 다시 타지 살이를 결정한 나를 타박하기도 한다.
그렇게 새로운 나라, 새로운 회사, 새로운 공간 안에서, 심장박동수가 10 정도는 높아진 상태로 살아가고 있던 와중에 출근 길, 유튜브 뮤직 알고리즘이 어쩌다가 이승환의 '다만'을 틀어주었을 때 이상하게도 눈물이 가득 차올랐다. 가장 감수성이 예민했을 때 들었던 음악이 타지에서의 나의 마음을 위로해 주는 것이 너무 좋아서 며칠을 한 곡 반복을 해서 들었다. 주변의 낯섦이 나를 작아지게 할 때마다 자꾸 이어폰을 꽂았다. 그러다가 예전 가요톱텐, 빅쇼 무대들을 찾아보고 옛날 화면의 어설픔과 미숙함에 마음이 편해졌다. 새로운 것, 최첨단의 것, 완벽한 것이 아닌 것이 마음을 편하게 했다.
그렇게 하루 하루를 더 지내본다. 과거의 기억에 비추어 내가 또 적응하리라는 것을 미루어 짐작한다. 아마 몇 달 뒤 새로운 집에 이사를 하고, 다닐 요가원을 찾고, 산책할 바닷가의 길을 찾은 나는 훨씬 하루를 만족하며 보내게 되겠지 생각한다. 그렇지만 내일 출근 길은 또다시 이어폰을 꽂으리라 생각한다.
https://youtu.be/XJMedbpBsfI?si=rwnB2_KQO_CKVN0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