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심탄회한 회사 탈출 연대기
제목이 좀 자극적이지만 사실이긴 합니다. 건물도, 집도 없지만 월세 받는 삶을 살고 있거든요. 혹시나 의심하실까 봐 미리 말하자면 저는 금수저도 아니고, 물려받은 재산도 받을 재산도 전혀 없습니다. 현재 본업은 공간 여러 개를 운영하는 공간대여업자이지만, 불과 2년 전까지만 해도 평범한 직장인이었고요. 여러 회사 여러 업무를 전전하며 약 7년 동안 회사 생활을 이어오다, 공간대여업을 만나 마침내 사표를 던진 사람입니다. 아, 작년에는 이런 책도 냈습니다. 나름 재테크 책인데요. 1년 만에 3쇄를 찍고 있으니 성적은 그리 나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제가 뜬금없이 공간대여업을 접하게 된 것은, 그러니까 한 3년 전쯤인가요, 저의 주거 형태를 자취방에서 쉐어하우스로 바꾸면서부터였습니다. 회사 근처에 방 세 개 화장실 두 개인 빌라를 월세 계약하고, 집을 열심히 채우고 꾸민 후, 총 4명의 하우스메이트를 인터넷으로 구했습니다.
놀랍게도 세상에 저 같은 사람들이 많더라고요. 주변의 걱정과 우려에도 불구하고, 순식간에 자리는 찼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그러니까 3년 동안 거의 공실 없이 꽉꽉 채워 쉐어하우스를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이 쉐어하우스 이름은 '선녀방' 인데요. 기왕이면 착한 사람들이랑 살고 싶어서 '선한 여자들의 방'이라는 의미를 담아 지었어요. 제가 지었지만 썩 마음에 들어요. 그런데 사실 제가 선녀방을 시작한 이유는 돈 때문은 아니었습니다. 그냥 오랜 1인 가구 생활에 지쳤고, 워낙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이라, 이렇게 살면 내가 좀 더 행복해질 것 같아서 시작하게 된 거였어요. 그런데 하우스메이트들로부터 받는 월세가 제 조그마한 가계에 생각보다 큰 도움이 되더라고요. 게다가 전세였던 자취방은 그대로 두고 에어비앤비에 등록을 해봤거든요. 이것도 생각보다 쏠쏠하더라고요. 이렇게 평범한 직장인에게 갑자기 월 100~200의 부수입이 생기게 됩니다.
(*선녀방이 더 궁금하신 분들은 구경 오세요!)
https://www.youtube.com/results?search_query=%EC%84%A0%EB%85%80%EB%B0%A9
통장에 돈이 좀 모이기 시작하니까 마음이 안정되더라고요. 물론 당장 그만둘 만큼 큰 액수는 아니지만, 약 1년쯤 후에 완전한 퇴사를 결심했어요. 그때가 딱 서른이었습니다. 회사원이 천직일 거라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지만 남들이 해보는 건 다 해봐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라, 저도 일단 열심히 해봤던 것 같아요. 그리고 이 정도면 내 인생에 직장 생활은 충분하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누군가 "너가 안 해봐서 모르는 거 아니야?"라고 했을 때, "나도 다 해봤어. 해봐서 안 맞는 거 아는 거야."라고 0.1초 만에 답할 수 있는 자격은 얻었으니까요.
대단한 계획이 있어서 퇴사를 강행한 건 아니었습니다. 그냥 뭐, 한 달에 100만 원만 있어도 굶어 죽지는 않을 테니까. 그리고 쉐어하우스랑 에어비앤비를 잘 운영해 봤으니, 비슷하게 뭐라도 하면 또 되지 않을까? 싶었거든요. 경험과 숫자에 근거한 판단이니, 근자감이라고 스스로 폄하하지는 않을래요. 그리고 전 그냥 뭐 안되면 편의점 알바라도 하지, 하는 현실적인 낙천성을 갖춘 사람이거든요.
그렇게 실업 급여를 받으며 몇 개월 쉬다가, 파티룸이라는 걸 알게 됐어요. 어떤 파티에 초대받아서 우연히 가게 됐는데, 그 공간이 마치 저에게는 혁명처럼 느껴지더라고요? 지금 생각해도 워낙 힙한 공간이기도 했고요. 제가 워낙 사람을 좋아해서 모임도 파티도 좋아하는데, 집에서 하기에는 한계가 있잖아요. 층간소음 때문에 살인도 일어나는 세상인데. 그래서 이번엔 파티룸에 대한 공부를 하고 얼마 후 시혜적동물 1호점을 열었습니다. 그 결과는 뭐, 제법 괜찮았죠. 1년 만에 지점을 4개까지 확장할 수 있었거든요. 저도 몰랐는데 제가 사업 감각이 좀 있긴 한가 봐요.
시혜적동물은 참고로 '은혜를 베푸는 동물'이라는 뜻인데요. 사회적동물이 인간의 본능이라면,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서 기왕이면 좀 더 착한 사람이 되어보자~ 하는 뜻을 담아봤어요. 사실 선녀방이랑 거의 뭐 같은 뜻이죠. 의도한 건 아닌데, 지어놓고 문득 생각해보니 내가 참 착한 사람에 집착하는구나 싶더라고요. 내 일을 하다 보면, 회사 다닐 때보다 여러모로 스스로에 대해 더 잘 알게 될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내가 뭘 잘하고, 뭘 못하고, 뭘 좋아하고, 뭘 싫어하는지, 나에 대한 SWOT 분석을 저절로 하게 되거든요.
여하튼 그렇게 해서 지금은 쉐어하우스 1개와 파티룸 4개를 운영하는 전업 공간대여업자가 되어버렸어요. 그래서 어떠냐고요? 음... 좋아요. 물론 그렇다고 제가 벼락부자가 된 것도 아니고, 대단히 성공한 삶을 사는 것도 (아직은)아닙니다만, 회사를 다닐 때와 비교해서 삶의 질이 엄청나게 높아진 것만큼은 분명한 사실이죠.
9시부터 6시까지 주 5일 묶여있어야 하는 회사와 달리, 공간대여업은 무인 운영이라 제 시간을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거든요. 자영업이라 매달 매출이 오르내리긴 하지만, 어쨌거나 회사를 다닐 때보다는 돈을 더 잘 버는 것도 사실이고요. 시간적, 경제적 여유가 늘어났으니 삶의 질이 올라갈 수밖에 없겠죠.
사실 그런데 그런 것보다는, 내가 원하는 '내 일'을 찾아서 할 수 있다는 것. 그게 제일 만족스러워요. 저는 좀 반골 기질이 있는 사람인지 남이 시키는 일은 진짜 하기 싫더라고요. 그래서 회사에 있어서는 안 되는 사람이기도 했던 것 같고요. 다만 저도 제 끝이 공간대여업자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공간대여업은 저에게 진짜 시작을 열어줄 수 있는 열쇠 정도라고 생각해요. 덕분에 많은 여유가 생겼고, 드디어 오롯이 제 삶에 집중할 수 있는 기회가 열렸으니까요.
그래서 감히 저는, 공간대여업이 제 인생을 바꾸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좋은 사람들과 어울려 살고 싶어 시작했던 쉐어하우스, 더 본격적으로 내 사람들과 놀고 싶어 만든 파티룸이, 나도 모르는 새 내 인생을 좋은 쪽으로 이끌어가고 있다고요.
그러고 보면 좋아하는 일로 먹고사는 건 생각보다 쉬울지도 모르겠어요. 저는 이제 제 인생의 다음 장을 또 새롭게 채워보려 해요. 무엇을, 어떻게 하면 내 삶이 더 재미있어질까요? 때로 사람들은 저를 야망 가득하게 보지만 생각보다 저는 욕심이 없답니다. 그저 재밌게 살고 싶은 게 다 인걸요.
> 공간대여업은 누구에게나 열려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