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북 x 헬프
시사회로 먼저 만나본 영화 <그린북>은 어느 하나 모자랄 것 없이 온전히 좋은 영화다. 인종 차별이라는 묵직한 주제부터 <덤 앤 더머> 감독임을 상기시킬 만큼 노련하게 설치된 웃음 장치, 베테랑 배우들이 정성스레 빚어낸 현실감 넘치는 캐릭터들, 게다가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니 마지막 부분에서 감동은 배가 된다. 가족부터 친구, 연인까지 그 누구와도 편안하고 즐겁게 관람할 수 있는 따뜻한 영화다.
1960년대 미국, 아내와 아이들을 끔찍이 아끼는 토니는 뛰어난 입담과 허풍, 단단한 주먹으로 주변에서 해결사로 통하는 진정한 마초다. 어디서든 멋지고 유능한 좋은 사람으로 통하지만 흑인들이 한번 사용한 컵은 바로 쓰레기통에 버릴 정도의 인종차별주의자이다. 가드로 일하던 클럽이 잠시 문을 닫아 급하게 돈을 벌어야 하는 토니는 어쩔 수 없이 천재 흑인 피아니스트인 돈 셜리 박사의 남부 순회공연 운전사 자리를 수락하는데, 흑인 차별이 더욱 심각한 남부 지역에서 그의 신변을 보호하는 보디가드의 역할까지 수행해야 한다. 귀족처럼 도도하고 고상한 흑인 예술가와, 무식하고 허풍 가득한 이탈리안 운전사. 당연히 둘의 여정은 순조롭지 않다. 하나부터 열까지 부딪히지 않는 것이 없지만 모든 버디 무비가 그러하듯, 시간이 지날수록 서로에게 조금씩 마음을 열기 시작한다.
토니가 셜리 박사를 미개한 '흑인'이 아닌 동등한 '인간'으로 보게 된 것은 그의 천재적인 피아노 실력 덕분이기도 하지만, 흑인이 오직 흑인이라는 이유로 겪어야 하는 부당함을 피부로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바에서 백인 한량들에게 얻어맞는 것은 일상이다. 길가의 양복점에서 옷을 입어 볼 수도 없고 밤늦게 돌아다니는 것은 심지어 불법이다. 아무리 돈이 많고, 아무리 저명한 엘리트라 한들 인종차별 앞에서는 아무런 방도가 없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이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그린 북'이다. 흑인 여행객이 안전하게 먹고 잘 수 있는 레스토랑과 호텔들의 정보가 담겨 있는 안내서로 실제로 1937년부터 1966년까지 미 남부를 여행하는 흑인들이 반드시 지참한 책이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값비싼 양복 차림의 셜리 박사는 남루한 흑인 전용 숙소에서, 맨손 식사와 길거리 도박을 즐기는 토니는 번듯한 호텔에서 잠을 청한다. 그래도 물가에 아이를 내놓은 것처럼 토니의 마음은 편하지가 않다. 셜리 박사가 혼자 숙소를 나서는 순간, 모든 백인들의 화풀이 타깃이 된다는 것을 이제는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투어를 무사히 마쳐야 돈을 다 받을 수 있다는 의무감 반, 박사에 대한 동정심과 동지애 반으로 매번 슈퍼맨처럼 그를 구해낸다. 여정의 끝에 다다를수록 토니는 박사가 겪어야 하는 부당함에 동조하고, 박사는 토니가 의리 있고 인간미 넘치는 사람임을 알게 된다. 그렇게 둘은 어느새 스리슬쩍 친구가 된다.
인종차별이 만연했던 1960년대 초 미국, 백인과 흑인의 우정을 다룬 또 다른 작품이 있다. 바로 원작과 영화 모두 대히트를 친 <헬프>이다. 작가가 되고 싶은 백인 여성 스키터는 특별한 이야기를 찾던 중 흑인 가정부의 삶을 책으로 엮고자 한다. 백인에게 평생 당하며 살아온 그녀들은 쉽게 마음을 열지 않지만, 결국 하나 둘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하고 우여곡절 끝에 출판된 책은 큰 성공을 거둔다. 어디에나 있지만 누구도 관심을 가지지 않던, 가장 하류에 있던 흑인 여성들의 진솔한 인생 이야기에 상류층의 백인들이 울고 웃으며 귀를 기울이게 된 것이다.
같은 시대를 살고 있던 <그린북>의 셜리 박사와 <헬프>의 흑인 가정부들의 삶은 너무나 다른 듯 너무나 닮았다. 개인 시종과 운전사가 있고 어딜 가도 극빈 대접을 받는 셜리 박사지만, 그 역시 백인들과 같은 화장실을 사용할 수 없고 심지어는 자신이 공연하는 홀의 레스토랑에서조차 거부당하기 때문이다. 최상류층조차 인종차별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무지한 시대, 가정부들의 삶은 얼마나 비참했을지 짐작이 간다. 헌데 이처럼 무거운 주제를 다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두 영화는 시종일관 유쾌한 톤을 잃지 않는다. 교과서적인 해피 엔딩(이로 인해 세상이 조금 더 나아졌다-하는 식의)을 사람들이 가장 좋아해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어쩌면 두 작품 모두 결국 백인의 시선에서 쓰였기 때문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그린북>은 토니의 아들인 닉이 직접 시나리오 작업에 참여했다. 자신의 아버지와 셜리 박사 사이의 아주 특별한 우정 이야기가 다른 이들에게도 충분히 매력적일 것임을 알아본 것이다. <헬프>의 경우 100%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고 하기는 힘들겠지만, 원작가 캐스린 스토킷이 작품의 배경인 미시시피주 잭슨시에 살며 흑인 가정부의 이야기를 보고 들은 것을 바탕으로 엮어낸 책이다. 실제로 소설을 출판하기까지 무려 예순 개의 업체들로부터 거부를 당했다고 하니, 엠마 스톤이 연기한 주인공 '스키터'는 사실 그녀의 페르소나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이처럼 두 작품 모두 흑인 인권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백인에 의해 재창조되었다. <헬프>에서 결국 흑인의 이야기를 통해 작가로 크게 성공하는 것은 스키터이며, 그녀를 도와준 흑인 가정부들은 계속해서 백인의 도우미로서 자신의 삶을 연장해 나간다. 그녀들을 기다리고 있는 다른 엔딩은 없다. <그린북>의 결말 부분에서 셜리 박사는 처음으로 흑인으로써의 부당함에 대해 목소리를 내지만 결국 묵살당한다. 물론 그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이후 박사의 삶이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헬프>나 <그린북>이 좋은 영화라는 사실에는 이견이 없지만 만약 흑인이 이야기를 집필했더라면 어땠을까? 아무리 시간이 지났다 한들 자신의 부모와 가족이 겪어왔던 끔찍한 비극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이토록 톤이 가벼울 수 있었을까. 결국 두 영화에서 흑인들을 구원해 주는 인물은 백인이다. 사실 주인공은 흑인에게 손을 내민 백인이라고 보아도 무방한 것이다. 마치 할리우드 히어로물에서 오직 미국이 늘 세계를 구하는 것처럼 말이다.
분명 인종차별의 경계가 현재처럼 흐릿해지기까지 도움을 준 백인이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일 것이다. 하지만 흑인들이 피와 땀을 흘려 쟁취해 낸 값진 결과물과 그 고된 과정들마저 은근슬쩍 화이트 워싱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제삼자인 우리는 너무 당연하게 그것들을 받아들이고 있지는 않는지- 한번쯤은 돌아봐야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