쟈크 드미, <로슈포르의 연인들> 후기
“여기 세워 둘까?”
- 영화 <로슈포르의 숙녀들>의 첫 대사.
나는 참 바라는 게 많다. 이번 단편 영화가 잘 나오기를, 사람들이랑 다투지 않기를, 그리고 영화감독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사실 모든 것이 이뤄질 수 없다는 것쯤은 알지만 그래도 내심 기대하게 된다. 이 모든 것이 이뤄진 순간을 떠올리면 참 행복하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기대를 하면 동시에 그것을 위해 지금 해야 하는 사소한 일들이 힘들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사실 과거 경험에 비춰보면, 기대하던 바가 이뤄지더라도 그 즐거움은 아주 잠깐이라서 또 힘든 여생을 계속 살아야할지도 모른다. 그럼 결국 내 인생은 고통의 연속인 걸까? 이런 나에게 자크 드미는 <로슈포르의 연인들>을 통해 어이없을 정도로 밝은 대답을 해주었다.
자크 드미는 영화의 첫 대사에서 시간을 잠시 세워둔다. 그리고는 세워놓은 시간을 최대한 만끽한다. 그는 즐기는 방법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영화 속에서 처음부터 여러 인물들이 등장해서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기 시작한다. 그렇게 멈춘 시간은 최고의 순간이 된다. 시간이 정지된 느낌을 받는 것은 곧 순간을 사랑하고 있다는 증거일지 모른다. 이런 장면들은 영화 내내 등장하게 된다. 자기의 생각과 마음을 노래와 춤으로 표현하는 것은 그 순간을 사랑하는 자크 드미의 방식인 것이다.
하지만 정작 영화 속 인물들은 그런 행동을 하지만, 오히려 감독의 철학과 반대되는 삶을 살아간다. 그들은 나와 비슷하게도, 기대하거나 사랑하는 순간들이 있다. 파리에 가는 순간, 꿈에 그리던 이상형을 찾는 순간과 같이 미래를 기대하기도 하고, 과거 연인과 행복했던 그 순간, 음악원에서 친구와 지내던 과거의 그 순간을 사랑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런 순간들은 이미 지나갔거나, 앞으로 지나갈 것임이 분명하다. 아이러니하게도, 엽기적인 살인으로 최악의 순간을 만들어 낸 할아버지가 만찬에서 이러한 진실을 깨우쳐준다. “좋은 것도 결국 지나가기 마련이지.”
자크 드미는 이를 매우 싫어한 모양이다. 이런 비관론에 빠진 나 같은 사람들을 몹시 싫어해서 할아버지를 살인마로 만들어 버린 게 아닐까 싶다. 그리고는 이런 비관론에 대해서 최고로 멋진 대답을 절정 장면에서 내놓는다. 사랑하는 순간들이 지나가서 아쉽다면, 모든 순간을 사랑하면 된다는 것. 해가 나면 그것을 사랑하면 되고, 소나기가 와도 그것을 사랑하면 된다는 것. 쌍둥이가 이를 노래하며 행복하게 춤을 춘다.
모든 순간을 사랑하라는 것은 너무 순진한 낙관론처럼 보인다. 이런 시각은 동화적으로 느껴질 정도다. 그런데 나로서는 사실 할 말이 없다. 왜냐면 자크 드미가 이 영화 전체를 통해서 그 방법을 설명해줬기 때문이다. 모든 순간을 사랑하는 방법은 노래와 춤을 부르는 것이다. 시간을 잠시 멈추고 그 순간을 늘려서, 즐기는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 정말로 행복한 순간이 되었다. 순간을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 이쯤 되니 나의 비관론이 유치해 보였다.
이런 시각을 가진다는 것은 쟈크 드미의 경지를 보여준 것일지도 모른다. 분명 그도 인생에서 어려운 순간들, 포기하고 싶은 순간들, 그리고 사랑할 수 없는 순간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노래와 춤으로 그것을 사랑해보자고 하는 것은 어떤 현인에 가까운 모습처럼 보인다. 그래서 감독의 삶에 대한 이러한 시선은 나에게 대단한 충격이었다. 나처럼 바라는 게 많아서 모든 순간을 불행하게 사는 사람에게 완전히 다른 시각을 제공한 것이다.
결국 나는 자크 드미의 천진난만한 대답을 듣고 어이없어하면서도 내심 동의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