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탐험과 여행 사이
옐로스톤 국립공원을 다녀온 지 2주가 채 되지 않았을 때,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링크가 첨부된 메시지와 함께 말이다. 지난 7월 23일 올드 페이스풀(Old Faithful) 북쪽에 위치한 비스킷 분지(Biscuit Basin)의 사파이어풀(Sapphire Pool) 인근에서 발생했던 열수폭발 사건이 담긴 영상이었다. 혼비백산하는 관광객들의 뒤편으론 높이 솟아오르는 검은 기둥을 볼 수 있었다. 위험천만한 상황처럼 보였다. 증기와 잔해물은 수백 미터 높이까지 솟아올랐고 인근 산책로를 파괴한 듯 보였다. 다행히 이 사건으로 부상자는 발생하지는 않았다.
사실 나는 옐로스톤 국립공원을 방문했을 때 이런 일이 발생하진 않을까 계속 불안한 마음이 있었다. 보글보글 끓고 있는 온천에서 갑작스럽게 큰 소리가 나기만 해도 화들짝 놀라곤 했다. 가까이만 가도 느껴지는 그 열기가 실제로 우리가 밟고 있는 이 땅 아래 무언가 뜨거운 것이 있다는 걸 알려줬기 때문이었다.
우리가 여행했을 땐 다행히 아무런 사고도 없었다. 하지만 내가 우려하고 상상했던 사고가 불과 우리가 이곳을 방문하고 며칠 지나지 않아 실제로 일어나다니 믿을 수 없었다. 편안한 마음으로 이곳을 산책하던 관광객들이 갑작스러운 굉음과 함께 폭발하는 광경을 눈앞에서 보았을 때 얼마나 놀랐을까 상상해 보면 나도 모르게 오금이 저려온다.
내 기억 속의 비스킷 분지는 평화로운 느낌을 주는 전형적인 열수 지형이었다. 사실 옐로스톤 국립공원을 여행하다 보면 크고 작은 열수 지형이 워낙 많기 때문에 모든 곳을 기억하긴 어렵다. 내게 비스킷 트레일 분지 트레일도 예뻤지만 딱히 기억에 크게 각인될 만한 인상을 남긴 곳은 아니었다. 사파이어 풀을 보고 진짜 사파이어 색만큼 진하진 않아서 약간 실망했던 기억이 난다. 그래도 여전히 아름다운 색이긴 했지만 말이다.
어쩌다 이런 일이?
그렇다면 왜 이 아름다운 호수는 갑자기 폭발하게 된 걸까? 폭발 당일에는 비스킷 분지의 사파이어 풀 인근에서 폭발이 발생했다고 했으나 후속 보도에 따르면 실제로 폭발이 발생한 곳은 비스킷 분지의 블랙 다이아몬드 풀(Black Diamond Pool)이었다. 이곳 아래의 얕은 열수 시스템에서 물이 갑자기 증기로 전환되며 발생한 것으로 밝혀졌다. 아래 그림을 보면 주차장과 얼마나 가까운 곳에서 폭발이 발생한 건지 볼 수 있다. 당시 잘못된 시간대에 이곳에 방문했던 사람들이 얼마나 놀랐을까 짐작이 갔다.
이번폭발은 다행히 화산활동에 의한 것은 아니었다고 한다. 옐로스톤 국립공원 측에 따르면 지진이나 지반변형, 가스 및 열 방출에 관한 이상현상은 나타나지 않고 있으며 정상범위를 유지 중이라고 밝혔다. 덧붙여 이번 폭발 사건에 대한 어떤 전조 현상도 감지할 수 없었다고 발표했는데 이번 사건은 그야말로 예측불허했던 갑작스러운 천재지변이었던 것이다.
이번 폭발로 발생한 증기와 돌 파편은 무려 120-180m 높이까지 치솟았고 주변의 산책로를 파괴했다. 심지어 자몽크기만 한 암석이 폭발이 발생한 지점으로부터 수십-수백 피트 떨어진 곳까지 날아갔다고 한다. 폭발지점 가까운 곳에서는 무려 50센티미터 크기의 거대한 암석 파편이 발견되기도 했다. 꽤나 격렬한 폭발이었던 듯 보인다. 폭발은 파이어홀 강(Firehole River)을 향해 북동쪽으로 진행됐고 가장 큰 파편 역시 이 방향에 떨어져 있었다고 한다. 폭발이 검은색 기둥 형태를 띠었던 것은 진흙과 증기, 끓어오른 물 등이 섞여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사건 당시 영상을 보면 정말 시커면 기둥이 갑자기 솟아오르는 걸 볼 수 있다.
지질학자들은 폭발로 만들어진 침전물을 관찰했는데 빙상 물질과 사암, 실트, 자갈 등으로 구성돼 있었다고 한다. 이를 통해 지질학자들은 이번 폭발이 얕은 깊이에서 발생했음을 알 수 있었다고 한다. 왜냐하면 유문암(rhyolite)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1960년대 과학자들은 지표 50m 아래를 시추했던 적이 있었는데 그때 이곳에서 유문암층을 발견했었다. 즉, 유문암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건 유문암이 존재하는 층보다 얕은 곳에서 폭발이 발생했다는 걸 의미한다. 참고로 과학자들에 따르면 옐로스톤의 열수배관 시스템은 대부분 표면 아래 얕은 층에 존재한다고 한다.
열수폭발은 얕은 지하에서 액체 상태의 물이 끓어 증기로 바뀌면서 발생한다. 이런 현상은 올드 페이스풀(Old Faithful)이나 세계 최고 높이로 분출하는 스팀보트 가이저(Steamboat Geyser)와 같은 간헐천 시스템에서도 자주 발생하는 현상이라고 한다. 다만, 지형에 따라 차이가 발생한다.
가령, 뜨거운 물과 스팀이 막힌 곳 없이 배관을 따라 잘 흐른다면 우리가 잘 아는 간헐천의 분출이 발생한다. 하지만 이와 달리 배관 시스템 일부가 막혀서 물과 스팀이 제대로 흐를 수 없는 경우 열수 폭발이 발생할 수 있다. 기포(steam bubbles)의 팽창으로 인해 발생한 압력으로 물과 스팀이 암석을 뚫고 나오며 폭발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블랙 다이아몬드 풀의 경우 뜨거운 물을 저장하던 곳이 변화를 일으키며 발생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실리카의 침전으로 인해 도관이 막혔거나 도관에 증기가 축적되고 압력이 높아져서 폭발을 일으켰을 수 있다고 한다.
옐로스톤, 이런 폭발 자주 발생하나?
그렇다면 이런 폭발은 옐로스톤에서 자주 발생할까? 옐로스톤 국립공원에 따르면 열수폭발은 일반적으로 일 년에 한 번에서 많게는 몇 번 정도 발생하지만 주로 즉시 관측될 수 없는, 관광객들이 다니지 않는 장소에서 발생한다고 한다.
사실 열수폭발은 옐로스톤에서 발생하는 다른 위험한 지질학적 사건에 비하면 자주 일어나는 편이라고 한다. 아래 그림을 보면 사건의 빈도수와 파괴력을 파악해 볼 수 있다. 이 다이그램에 따르면 옐로스톤 지역에서 발생하는 열수폭발과 지진에 의한 파괴는 한 세기에 몇 번씩 발생하는 것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용암이 흐르거나 소규모 화산분출은 지난 7만 년 동안 단 한 번도 발생하지 않았으며 매우 드물게 발생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옐로스톤의 가장 치명적인 위험으로 작용할 수 있는 대규모의 칼데라 화산분출은 지난 200만 년 동안 세 차례 정도 밖엔 발생하지 않았을 정도로 희박했다. 참고로 칼데라는 화산 분출로 만들어지는 함몰지로 화산 일부가 무너지면서 만들어진 밥그릇 모양의 분지이다. 이 지형은 점성질이 큰 마그마의 분출과 관련 있으며 격렬하고 갑작스러운 폭발성 화산 분출로 인해 만들어진 지형이기 때문에 폭발할 경우 그 위험성이 더 크다.
지난 150년 동안 옐로스톤 국립공원에서 발생했던 가장 큰 규모의 열수 폭발 사고는 1880년대 익스켈시어 간헐천(Excelsior Geyser)에서 발생했다고 한다. 이곳은 옐로스톤의 가장 유명한 관광지인 그랜드 프라즈마틱 스프링(Grand Prismatic Spring)이 위치한 미드웨이 가이저 분지(Midway Geyser Basin)에 위치한다.
이곳에서는 지난여름 발생한 열수 분출과 비슷한 사이즈의 폭발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1880년대 대규모 분출이 일어난 이후 마지막 분화는 1985년에 일어났다고 한다. 현재는 사실상 휴면 상태라고 한다. 그랜드 프라즈마틱 스프링을 향하는 트레일에서 익스켈시어 간헐천을 먼저 만났었다. 뽀얀 수증기 속에 감춰진 푸른빛이 신비로웠다. 아침에 간 탓에 수증기가 많아 시야가 방해가 됐지만 오히려 이 수증기 덕분에 특유의 분위기가 배경음처럼 깔린 느낌이었다. 외계행성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만큼 신기한 광경이었다.
이 밖에도 1989년 노리스 가이저 분지(Norris Geyser Basin)의 포크찹 가이저(Porkchop Geyser)에서 열수분출이 발생했고 이번 사건처럼 여러 관광객이 이 장면을 목격했지만 다행히 이때도 부상자는 발생하지 않았다고 한다.
더 최근에 발생한 사건으로는 2024년 4월 15일 노리스 가이저 분지(Norris Geyser Basin)에서 발생한 소규모 열수 분출이 있다. 이는 열수 분출과 같은 지질학적 변화를 감지하기 위해 특별히 설계된 모니터링 기기를 통해 감지됐는데 이러한 기기의 도움이 없었다면 목격자가 없는 사건들은 일일이 기록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옐로스톤 화산 관측소는 2022년 소규모로 발생하지만 위험 가능성이 있는 열수 폭발을 모니터링할 수 있는 기기 설치를 확대해 나갈 것을 목표로 한다고 발표했다. 23년 9월 노리스 가이저 분지에 설치된 모니터링 장비는 이를 잘 보여준다. 이렇게 수집된 데이터는 지질학자들이 옐로스톤을 이해하고 이번에 발생한 열수분출 사건과 같은 위험한 상황을 미리 예측하고 피해를 막는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살아있는 지구를 볼 수 있는 곳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바로 이 옐로스톤일 것이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그 때문에 이곳은 예측할 수 없는 위험이 도사린 곳이기도 하다. 생명체에겐 치명적일 수 있는 뜨거운 물과 흔적도 없이 우릴 녹여버릴 수 있는 산성, 혹은 알칼리성을 띤 물이 가득한 곳, 내가 밟고 있는 땅에서 갑작스럽게 열수폭발이 발생할 수도 있는 위험천만한 장소가 바로 이 옐로스톤이다. 그래서 과학자들에겐 지구를 연구할 수 있는 천혜의 장소이며 나와 같은 일반인에겐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는 너무나도 매력적인 곳이다. 지구가 살아있음을 피부로 느끼고 싶다면 살면서 꼭 한 번은 가봐야 하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