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nonymoushilarious May 13. 2024

실없는 농담에 가려진 소비와 환경에 대한 메시지

'디피컬트'

사실 프랑스 영화에 대한 편견이 있다. 철학을 논한다는 명분 아래 귀신 씨나라까먹는 소리하는 것 아닌가 싶었던 영화도 꽤 많이 보았기 때문이다.(다분히 주관적이고 편견 가득한 말이다. 인정한다.) 하지만 철학도 현실에 적용할 수 없다면 그저 한 사람의 궤변이 될 수 있고, 누군가 정의를 외치며 극단적으로 도덕을 들이밀게 된다면 그는 내 말을 들어달라고 떼쓰는 어른으로 비춰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무리 정의로운 명제일지언정 현실 사람들에게 크게 와닿지 않는 외침이 얼마나 정의로울 수 있을까 고민하게 되기도 한다. 이처럼 프랑스 영화들은 수많은 철학적인 관점에서 고민하게 하는 영화들을 많이 만들어낸다는 인식이 있다. 환경 문제, 채식, 인종차별, 젠더갈등 등 수많은 문제들 속에서 인간은 어떻게 대처해야할까 고민하게 되는 그런 영화들, 말이다. 가끔 딱히 서사가 있지 않으면서 대사에 온갖 철학적인 내용으로 가득한 내용의 영화를 볼 때의 길을 잃어버린 내 눈동자는 어떻게 숨길 수는 없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간만에 적당한 유머와 함께 가볍게 볼 수 있으면서도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를 고민하게 되는 영화를 만났다. 영화의 주인공은 3명이다. 대출빛에 허덕이며 가족들에게 짐 취급 받고 있는 브루노와 알베르 그리고 과도한 소비를 하는 현대인의 문제를 꼬집으며 인간의 소비가 환경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음을 알리기 위해 시위를 주도하는 비영리단체장인 캑터스다. 인간의 과도한 소비의 결과를 대표하는 두 남자와 극단의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는 캑터스의 상반된 모습이 의외로 웃기다. 당장 돈이 없으니 온갖 방법으로 돈을 벌기 위해 악착같이, 어쩌면 비굴해 보일만큼 살아가는 두 남자에 반해, 넓은 집에 살면서도 흔한 소파와 의자 마저 없어 바닥 생활을 하는 캑터스를 보고 있자면 정말 세사람 다 별나다 싶다.


그리고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당장 밥먹을 돈도 없어서 비영리단체를 돕고 있으면서 이 와중에 알베르는 캑터스를 이성적으로 좋아하기까지 하다니, 참 이 남자 살만한가 싶었다. 철이 없는 것인지, 즉흥적이라고 해주어야 할지 참 어이가 없으면서도 막판에 귀여워보이기까지 한다. 참 한심하다 싶다가도 또 무슨 사고를 칠지 지켜보게 된달까. 그 장단을 브루노가 맞춰주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참 두 사람 죽이 잘 맞는 커플 같아 보인다. 러브라인은 알베르와 캑터스가 그리고 있는데, 왠지 내 눈에는 이 두 남자가 찐사랑이다.


그리고 이 영화 속에서 웃긴 장면을 꼽아보자면, 두 남자의 채무 면제를 도와주는 남자 마저 알고보니 도박 중독으로 블랙리스트에 올라있는 사람이었다는 설정이다.  매번 카지노에 입장 금지 당하면서도 끝까지 들어가보려고 온갖 변장을 하는 모습이 꽤나 코믹하다.

캑터스 캐릭터도 참 특이하다. 인간의 소비로 인한 환경 문제를 꼬집는 사람인 만큼, 극단의 미니멀리스트를 추구한다. 개인적으로 캑터스는 아예 법정 스님의 무소유를 모든 사람들에게 강요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게 캑터스의 맹점이라고 생각하는데, 미니멀리스트를 '생활에 필요하다고 생각하다는 물건을 하나 구매하고, 그 하나를 잘 관리하면서 사는 사람'이라고 규정짓고 있는 나로서는 저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싶긴 했었다.


<주의! 여기서부터는 개인적인, 편견에 가득찬 주관이 가득합니다.>

인간이 살아가는 데 있어 취향이라는 것이 존재하고 그것을 충족하고 사는 것도 인간다움의 하나라고 생각하는데, 캑터스의 논리는 환경 문제를 수면 위로 끌어올리며 인간의 기본적인 취향 찾을 권리 조차 묵살하는 것은 아닐까 싶었다. 물론 인간의 과도한 소비는 환경을 망친다는 대전제에는 동의한다. 하지만 블랙프라이데이의 소비자들을 막아가며 돈 쓰지 말라고 앞을 막는 행위는 도를 넘는 것 아닌가 싶었다. 정말 필요한 물건을 사러 왔을 지도 모르는데, 무조건적으로 소비는 나쁘다고 규정짓고 당신들도 참여하라고 강요하는 듯한 강력한 시위를 계속하는 것은 거부감을 일으킬 수 있지 않나 생각했다.


어느 나라든 환경운동이든 젠더 갈등이든 도덕적 잣대로 내가 맞네, 네가 맞네 끊임없이 토론하게 되는 운동들을 주도하는 운동가들이 있다. 하지만 그들의 과격한 운동에도 불구하고 일반인들이 동요하지 못하는 이유가 뭘까 내 나름대로 생각해본다면, 극단성에 있지 있나 생각한다. 그들이 요구하는 도덕적 기준이 너무 극단적이어서 일반적인 사람들이 전적으로 동의하기에는 무리가 있지 않을까. 환경 문제의 경우, 환경을 지켜야 한다는 큰 명제에는 동의하지만 환경을 지켜보겠다고 이미 만들어진 제품들을 사지 않고 극단적으로 소비 지출을 줄이라는 요구에는 응해줄 수 없는 것이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캑터스가 진두지휘하는 이 비영리단체에서 정말 환경운동만을 위해 참여하는 사람들은 몇 명이나 될까. 브루노, 알베르 외에도 다른 한 명의 회원도 캑터스를 좋아해서 맴돌기 위해서 하는 거 아닌가 싶은 인물이 있었기 때문이다. 삼각 관계가 아닌, 사각관계라고 봐도 되지 않을까 싶다. 캑터스만이 진심이고, 모두가 약간의 군중심리로 움직이는 것은 아닐까 의심하게 되는 장면도 있었다. 인간의 신념은 생각보다 유약하고, 신념이라고 외치는 사람들 중에서 진짜 신념은 몇 명이나 될지 이런 쓸데없는 생각도 스쳤다.


무엇보다 빛더미에서 벗어나기 위해 프랑스 은행을 상대로 사기를 치는 두 남자의 허술함이 참 웃기다. 그 사기를 칠 머리로 돈을 벌었다면 진작에 갚을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알베르가 돈이 궁해서 공항에서 압수된 중고 물품을 파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뭐라도 해서 먹고 살았겠구만 싶은데, 또, 프랑스 은행에서 공적 문서의 중요 정보를 화이트로 지우고 있는 꼴을 보고 있자면 '내가 괜한 인간에게 기대를 걸었다' 싶다.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친구와 했던 말이,

'영화 속의 인물이니 웃고 재밌어하지, 실제로 내 주위에 이런 사람이 있다면 미쳐 돌아버리고, 끝내 손절치지 않았겠냐'였다. 이런 사람들은 픽션에서만 엮였으면 좋겠다.


총평


가끔 심각한 서사만 찾아다니다 보면, 이런 가벼운 영화를 찾게 된다. 킬링타임으로 적당한 영화다. 그리고 캑터스 역의 여배우가 예쁘게 나온다. 이 배우,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에서도 인상적으로 봤었는데, 현대물에서보니 새롭고, 자연스럽게 예뻐서 보기 좋았다. 가벼우면서도 가볍지 만은 않게, 토론을 유발하는 적당히 괜찮은 영화를 만나게 되어 기쁘다.


*해당 리뷰는 씨네랩 크리에이터로서 시사회 참석 후 작성된 글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테니스 공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화살처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