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겐 마약같은 장르
추리장르 애니메이션에 대한 쓸데없이 흘러가는 생각
간혹 신파같은 장르도 리뷰하지만 나는 추리 장르를 가장 좋아한다. 하지만 그 추리장르조차 이젠 예전만큼 즐기질 못한다. 웬만한 트릭으로는 신선함을 못 느끼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변화가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장르가 있다. 애니메이션 추리 장르가 그것이다. '명탐정 코난', 더 나아가면 '소년탐정 김전일' 같은 애니를 예를 들 수 있겠다.
심지어 이런 애니 속의 범인은 꽤나 선명하게 알 수 있는 경우가 있다. 범행 방식까지는 정확히 예상할 순 없지만 그냥 뒤가 구린 사람은 대충 연출만 봐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참 꾸준히도 찾아본다. 내가 애정할 만한 요소라곤 없고 범행 트릭도 엥스럽기도 하거니와 범행 이유도 웃긴 경우도 많은데도 말이다.
내가 범하는 오류가 있다면 애니는 한 편의 에피소드가 길지 않고 말 그대로 애니메이션이라 이런 장르에 대단한 현실감을 요구하진 않는다는 것이다. 말도 안된다고 생각하면서도 '누가 여기에 진지한 현실감을 바라냐'는 생각도 공존하는 것 같다. 남들이 볼 땐 일개 꼬마인 코난이 가는 곳마다 사람들이 죽어나다 보니 아예 그 아이가 출몰하는 베이카초는 범죄가 만연한 곳이라는 설정 아래 만든 애니메이션도 있을 정도이니 말이다. '범인 한자와 씨' 이야기 맞다. 시즌이 지속될수록 그럴 듯한 범죄 지어내는 것도 한계가 있으니 이런 설정이 된 것도 이해가 안 가는 것도 아니다. 분명히 기승전결이 매끄럽지 못한 부분들도 있고, 범인에 대한 너무 과도한 서사 부각도 사실 좋은 추리물의 조건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런 장르를 계속 소비하고 있다. 혹시 나같은 사람들이 있다면 나와 같은 이유로 소비하는 것인지 확인해주길 바란다.
1. 그저 킬링타임용
앞서 말했듯 이런 애니메이션 추리 장르의 소비자들은 대단하게 완벽한 서사를 바라지 않는다. 단지 코난이나 김전일 자체의 캐릭터의 매력이 좋기 때문에 보는 것도 있다. 그냥 무턱대고 정의롭기만 한 캐릭터이지만 매번 사건이 해결되는 것은 당연한 결말이니 크게 맘 졸이고 보지 않아도 된다. 그저 킬링타임용으로 마음 편하게 보는 추리물인 것이다. 추리 장르를 긴장감 없이 보고 싶다니, 이 무슨 궤변이냐 하겠지만 대충 다 예상이 되도 이미 코난이나 김전일 자체가 좋기 때문에 그저 해결하는 것만 봐도 흐뭇한 그런 마음에서 보는 것이다.
그냥 사건이 하지만 애초에 추리라는 특성상 탐정이기 때문에 매 화 사건을 해결해야 하는 인물이기에 탐정 주위에 죽음이 도사리고 있는 것도 이상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현실적으로 생각하면 웃기긴 한다. 그래서 '제로의 일상'이나 '범인 한자와 씨' 같은 스핀오프를 만들어주는 것도 꽤나 흥미롭다고 생각한다. 뭔가 원작의 작가도 참 머리아프겠다 싶기도 하지만 말이다.
2. 어린 시절에 대한 일말의 그리움
어린시절에 애니를 보던 나를 회상하는 것일 수도 있다.
매번 더 이상 이런 애니를 보면 안되는 나이일까 싶다가도 소비하고 있는 나를 보자면 아직 철이 안든 것일까 싶을 때가 있다. 뭐,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는 것 아니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과거에 이런 내용에도 즐거워하던 내가 신기하기도 하고 그 때나 지금이나 꾸준히 오락적으로 재미있는 건 여전하다 싶어서 신기한 것도 있다. 어렸을 때와 달리 지금의 나는 다각화된 취향을 가지고 있을 텐데도 불구하고 이 취향은 퇴화되지 않아서 신기한 그런 감정을 느끼낟.
3. 안봐도 될 이유는 많은데, 보지 않을 이유도 없다.
그리고 생각보다 정말 범인들이 터무니없는 이유로 범행을 저지르는데, 하나의 예를 들자면, '명탐정 코난 극장판'의 '세기말의 마술사'에 등장하는 범인을 들 수 있다. 대단한 스포를 할 순 없지만 세계사의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다면 범인의 존재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은 잘 알 것이다. 작가의 과도한 상상력으로 역사가 왜곡될 수도 있는 부분인데, 이 부분조차 애니메이션이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상상력이 중요한 장르라서 용서가 된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범인의 범행 이유를 듣고 있자면 사실 어이없어서 웃음이 나올 때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계속 이 진부한 서사를 넘어 엉뚱한 역사 왜곡까지 하는 이런 추리물을 보는 이유는 정말 맘 편하게 보기 위해서라는 것도 웃긴 일이다. 누구도 이런 장르를 심각하게 보진 않기 때문에 무엇인가를 보고 싶은데 감정적으로 몰입하게 되고, 머리를 많이 쓰게 되는 그런 것을 보고 싶지 않을 때는 이런 장르만한 게 없는 것 같다. 안 봐도 되는 이유는 많이 있는데, 안 보게 되는 경우가 잘 없다. 참 신기한 장르다.
뭐하려고 이런 글을 주절주절 쓰냐고 하겠지만....
맞다, 나는 최근에 개봉한 코난 극장판을 보고 싶은데, 못 보고 있고 볼까말까 고민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난 안다. 결국 볼 거면서 이렇게 고민하고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