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이 구식으로 되어가는 속도
익숙한 것들과의 거리 #1
언젠가부터 새로운 세대나 후배들, 그리고 동시에 선배 세대를 보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들이 공존하는 게 아니라 ‘최신’, ‘효율’ 뭐 이런 것들을 이유로 완전히 대체해버리고 이전의 것들이 ‘구식’, ‘재래’로 치부되는 것 아닌가, 그렇게 느낀 현상에 대해 고민이 들기 시작했다.
20대 중반 무렵, 그때가 2000년대 중반이었으니 스스로가 무언가로부터 뒤처지는 것으로 평가받아 그에 대한 반발작용으로 들었던 것은 아닐 것이다. 아니, 오히려 그때도 그랬고 2년 전까지의 나는 기술적인 면에 있어서는 꾸준히 ‘최신’, ‘혁신’에 꽂혀 살았고, 딱히 뒤처진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었다.
지금은 내가 20대였을 그때에 비하면 '아주 조금' 폭넓게 사고를 하고 있다고 반성하지만, 여튼 그 무렵의 나 역시 모든 것들이 ‘최신’이며 ‘혁신’, ‘효율’로 획일적인 평가를 받고 우열을 가릴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다행스럽게도 말이다.
한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누군가에게 ‘구세대’, ‘구식’이 되어 있었다.
예전에는 내가 직접 겪어보지 못한 부모나 선배 세대들과의 접점, 일종의 향수나 낭만 같은 것을 느끼는 ‘옛날사람’이 일종의 별명이었는데, 지금은 내가 정말 ‘옛날’사람이 되어버린 것 같은 느낌이다.
바야흐로 증강현실과 메타버스의 시대, 온라인과 비대면으로 무엇이든 가능할 것처럼 느껴지는 기술시대에 나는 집 전화와 배달이 막 활성화되던 20여년 전 에피소드를 생각해보게 된다. 구효서 작가님의 <오남리 이야기>(1998)에도 ‘주문배달 서비스’에 관한 이야기가 등장한다. ‘집’ 전화의 보급과 다양한 가게며 품목메뉴를 담은 안내물이 아파트 단지에 뿌려지고, 그걸 보고 신기해하며 시시콜콜 전화 주문을 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불과 20여 년 만에 ‘집’ 전화는 없어지고, 육성을 통한 주문이 아닌 스마트폰 ‘앱’을 통한 주문, 그리고 가게에 고용되지 않고 플랫폼을 통해 연결되는 배달기사들이 거리를 오가는 시대가 되었고, 이 최신 시장에 적응하지 못한 가게들은 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으면서 줄줄이 폐업을 하고 말았다.
이어서 문득, 한 15년도 더 전에 G시의 양복점 앞을 지나던 순간도 떠올랐다. 그 가게는 G시 번화가 네거리의 한쪽 모퉁이에 위치했는데, 자주 지나다녔던 게 아니었음에도 매번 가게 안을 들여다보면 어르신들이 모여서는 항상 화투를 치고 계셨다. 그 바로 밑 지하상가도 그 당시 이미 20-30년 전 상권이라(지금은 30-40년 정도 되었겠다) 어르신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생각해보면 그분들이 20-30대 시절에 시내 한복판을 주름잡았을 것 같았다.
시간이 흐르면서 등장하는 새로운 세대와 섞이지 못하고 그대로 그들만의 세계로 이원화되어서는, 계속 벌어지는 거리 보면서 나 역시 그들에 이어서 새로운 세대들과 멀어져가는 감각이 들었다. 서글픈 것과는 조금 다른, 어딘지 안타까운 감정이다.
실은 양복점에서 개점휴업 상태로 화투를 치던 어르신들을 보면서, 그럼에도 그분들이 조금은 재미있게 살아가는 것 같다는 활기를 느꼈기 때문이다. 스타일이, 그리고 문법이 조금 다를 뿐 한 시대를 풍미했던 사람들의 에너지였을지도 모른다.
코로나19가 창궐한 이후에도 몇몇 가게는 문을 열었지만,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말 그대로 개점휴업. 사람들이 모여서 무언가 할 수 없는 시대를 거치고 나니, 일말의 것들도 영영 어디론가 가서는 멀어져버렸다. 코로나19가 지나가고 난 그곳에 어르신들은 다시 모여계실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