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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훈 Aug 27. 2024

대환장파티에서_2화(하) 가도 되나요?

동네의사의 환자일기 시리즈 3


폭행을 당해서 마음과 몸이 한꺼번에 무너져 내렸다는 메시지를 받았다. 몇 번의 문자 대화 끝에 감정적으로 죄책감이나 수치심으로 에너지가 떨어지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 그래도 걱정이 되었다.






대환장파티에서...2화(하)_가도 되나요?



나)


"마음이 가장 중요하죠. 몇 마디 말로 위로나 해결책이 되지는 않는 줄 잘 압니다. 그러나 안면이 있는 사람이라면 반복되지 않을까 걱정이 되네요. 법적인 조치는 취하셨는지?"





OOO님)


"초면이고 경찰신고는 당연히 하였습니다.


나쁜 사람을 미워하는 감정과 스트레스로 지배되어서 더 아픈 것 같아서 제 몸 치료하는 것에 더 집중하기로 마음을 바꿨습니다.


주사가 아프긴 해도 즉시 (호전이) 나타나서 놀랄 때가 많았는데 도수 역시 시원하고 아팠지만 받고 나서 핑 돌더라고요. 그러나 어젯 밤 한결 가벼워진 걸 느껴서 또 한 번 놀랐어요.


데스크에서 도수를 월요일 예약해 주셨는데 주사로 바꿀까요? 전 사실 시간이 1주일 정도 밖에 없지만 좋아지니까 감격스럽고 욕심이 생겼습니다.


저 가도 되나요?



나)


"당연히 오셔도 됩니다. 내일 오셔서 상태체크하고 치료방향을 결정하도록 할게요."



OOO님)


"아침부터 답 주셔서 정말 감사하고요. 잘 다녀오세요."





나)


"어려운 이야기를 용기내어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OOO님 마음 속의 그 용기가 다가오는 순간들을 더 아름답게 바꿀 것을 나는 믿습니다. 내일 뵈요~"




나도 어려운 상황에 놓였을 때 누군가에게 주절주절 횡설수설 할 때가 있다. 이럴 때 깔끔하게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서 말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공포에 휩싸였을 때는 편도체가 우리 삶의 주인공이다. 자신의 집이 불타고 있는 화재현장에서 침착하게 리포터에게 상황설명을 하는 집주인이 없는 것처럼 편도체가 알람을 울릴 때 전두엽은 전혀 작동하지 않는다.




특별히 재난이 자신의 소유 또는 자기 자신이라고 인식할 때는 상황이 더욱 어려워진다. 이런 상황에서 전후관계, 자초지종을 아무리 자세하게 설명해 주어도 상황은 좋아지지 않는다. 공포에 휩싸인 사람에게는 안전하다는 확신이 중요하다. 안전한 상황을 만드는 것은 설명을 듣고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용기를 내는 것이다.


용기를 내어 현장상황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다면 거기에서 문제해결은 시작된다. 용기를 내면 답은 이미 자기 속에 있음을 알아차리게 된다. 그래서 붓다께서도 고통에서 빠져나오는 가장 첫번째 방법으로 바르게 봄(正見)이 필요하다고 하신 것이다. 나는 의도적으로 "용기"라는 단어를 썼다. 이 분이 스스로 용기를 내고 있음을 확인시켜 주고 싶었다.



OOO님)


"저를 기억해 주시는 선생님들이 예전보다 힘이 없어 보인다고 하셨을 때 그냥 아파서요 하고 말았는데요. 원장님 대단하시다는 이야기를 서로 했어요. 쉬지 않고 부지런하신 존경하는 원장님...


원장님처럼 훌륭하신 어른께 치료받아서 행복하고 원장님이 저의 의사선생님이신 게 자랑스럽습니다.


하루라도 빨리 좋아져서 맨발걷기하고 서울 가는 게 목표입니다. ^^ 정신의학과 치료보다 강의가 정말 위로되었어요.


원장님 강의 유튜브 몇 편 보았는데 세뇌당했다 보다 물든다로 표현하신다는 게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내일 뵙겠습니다."








휴~ 일단 큰 고비는 넘겼다.


극단적인 절망감과 수치심은 자신이 쓸모없는 존재라는 생각으로 추락하기 쉽다. 그건 사람조차 가치를 매기는 사회적 관념에 나를 넘겨주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 생각에 잠겨있으면 생각이 육체를 없애버려야겠다는 곳까지 나아가기도 한다. 진짜로 없어져야 하는 것은 그 생각 자체인데 말이다. 타인의 시선과 오염된 기억이 만나서 '나는 쓸모없는 존재'라는 쓰레기같은 생각이 배출된다.


자신이 무가치하게 느껴질 때 기억은 얼마나 쉽게 감정에 물드는지를 돌아보아야 한다.


나는 자율신경실조로 잠을 못자고 오래된 낯선 통증에 시달리는 환자들을 보면서 알게된 것을 한 마디로 하자면 다음과 같다.


기억은 기분에 물든다.




현재의 기분이 과거의 기억을 요리한다.


같은 재료라 하더라도 셰프의 역량에 따라 요리의 질은 하늘과 땅 차이다.


같은 사실(재료)이라 하더라도 현재의 기분(셰프)이 기억의 질을 좌우한다.


현재가 만족스러우면 과거의 궁핍했던 기억은 아련한 추억이 된다.


현재가 불만이라면 과거의 화려했던 순간들은 더욱 현재를 비참하게 만든다.


기억은 사실이 아니다.


기억은 사실을 요리한 결과이다.


셰프는 바로 지금의 기분이다.


그러니 기억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셰프가 어떤 상태인지를 살펴야 한다.



그러나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들은 기억을 사실로 믿어 버린다.


기억이 사실이 아니라는 점을 알아차리면 그 기억에 속아 넘어가지 않는다.


(한 사람 안에도 기억자아, 경험자아, 배경자아... 이렇게 세 개의 자아가 있어 끝없이 상호작용을 한다. 기억자아가 경험자아를 지배하는 현대인의 상황은 이 세가지 자아를 이해해야만 그 모순과 어처구니 없는 현상을 알아차릴 수 있다. 그 자세한 내용은 아래 예수의 무위행 포스팅을 참고하시길.)


마지막 메시지에서"맨발걷기를 하고 서울에 올라가고 싶다!"는 말은 무척이나 고무적이다.


스스로 해보지 않았던 일에 대해 "~하고 싶다!"는 것은 에너지 레벨로는 310에 해당하는 자발성이고 감정은 희망에 물든 상황이다. OOO님은 용기의 수준에서 해낼 수 있다는 긍정적인 마음이 들었고 삶을 신뢰하기 시작한 셈이다.


부정적 상황에서도 그것이 주는 감정에 대해 저항하지 않고 마주보는 힘이 생겼다.


이것은 삶이 주는 은혜요, 지구별 여행을 하는 동안 흔치 않은 축복이다.


우리는 연결되었고 삶은 우리를 통해 흐를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삶을 전적으로 신뢰하게 되었다.



삶은 100% 안전한 게임이다.



지금 이대로! 온전하다!



슬픔도, 절망도 피하지 않고 그 감정의 밑바탕에 깔린 참 나의 모습을 바라볼 수 있다면...


먹구름이 잔뜩 낀 날도 그 너머에는 파란 하늘이 변함없이 배경으로 깔려 있듯 인생의 고난 속에도 그 배경으로 펼쳐진 푸른 하늘이 나의 본바탕임을 기억하는 것이 지구별 여행을 하는 기초체력이다.



감정의 폭풍이 휘몰아치는 어두운 밤...


삶을 더 이상 감당할 수 없을 같았던 나의 어두운 밤들이... 지금의 나를 조각해 온 사실에 감사할 밖에...


그토록 칠흑같은 밤에도 삶이 나에게 친절하게 대해준 것 같이 이 분에게도 같은 은혜를...



이제 첫 단추가 끼워졌다.


앞으로 가야할 길이 멀다.


나의 힘만으로는 벅찬 이 길을 끝까지 가볍게 걸을 수 있게 삶에게 부탁한다.


기도가 절로 나온다...




예수의 무위행(1) 서로 다른 목적을 가진 세 개의 자아

https://brunch.co.kr/@nothing8/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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