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의사의 환자일기
만성통증 환자뿐 아니라 대부분의 만성질환에서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직접 글로 쓰기"는 가장 중요한 전환점 중 하나이다. 불안은 머릿속에서 반복되는 회로가 형성되어 있다는 뜻이다. 이 회로는 미로와 같아서 끝없이 반복되지만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다. 이 미로에는 미노타우르스와 같은 괴물이 어슬렁거리며 그르렁 거리는 소리를 낸다. 이제 머릿속에 자리 잡은 이 미로를 탈출해 보자. 다이달로스가 날개를 만들어 달고 미로 위로 떠오른 것처럼 날아올라 보자.
머릿속에서 반복되는 일들을 그 속에서 바라보아서는 탈출할 수가 없다. 그 속에서 불안에 젖어 주절대는 그 목소리를 바깥으로 끄집어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 쓰는 것이다. 이것이 메타인지로 가는 첫걸음이다. 쓰기는 내가 생각에 끌려가지 않고 생각의 주인이 되는 일이다.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만성통증 환자들 상당수가 쓰기를 부담스러워한다. 고통의 민낯을 마주치는 것이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물론, 대한민국 교육이 정답을 맞히는 데 초점을 맞추느라 제대로 자기 내면을 바라보고 글을 쓰도록 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일단 쓰겠다고 마음먹으면 많은 것이 달라진다.
OOO님이 확실히 달라진 것도 이때 쓰기 시작하면서부터가 아닌가 싶다.
2023년 11월 27일 (월)
몸이 좀 좋아졌다고 생각해서 헬스장에서 러닝머신을 40분 정도 탔다가 다리에 힘이 풀렸다는 메시지가 왔다.
OOO님)
안녕하세요.
경찰서 일도 마무리됐고 학회에 듣고 통증 일기도 쓰고 기록하고 있어요.
한 일주일만 더 놀다 내원하겠습니다.
나)
앉음은 주저앉음인가요?
OOO님)
네네. 그냥 스르륵
나)
러닝 머신 40분이 좀 무리였나 봅니다.
스스로 이렇게 통증 일기를 쓰다니 대단합니다. 칭!! 찬!!
자신의 상태를 밖으로 꺼내어 접고 나면 넘어지고 속상하고 힘겨운 나를 바라보는 또 다른 나가 있다는 걸 알게 되죠.
넘어지고 주저앉는 몸을 가진 나와 그 나를 바라보는 이 나 둘이 있습니다.
어느 것이 OOO님의 진짜 나인 것 같나요?
통증일기를 쓰기 시작했다는 말이 내겐 무척이나 반가웠다.
여유가 좀 생긴 것 같다. 놀다가 온다는 말에서 그 특유의 귀여운 웃음이 묻어나는 것 같았다.
통증일기를 쓴 것에 대해서는 칭!! 찬!! 을 해 주었다.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글로 적고 다시 바라보게 되면 '생각하는 나'와 '감정을 경험하는 나"가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된다.
때론 생각을 멈출 수 없어서 괴롭고, 때론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서 괴롭다.
물론, 고관절 힘줄의 염증 때문에 뜨끔거리며 아픈 것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힘줄의 염증은 정확한 진단만 하면 프롤로주사나 도수치료로 얼마든지 조절이 가능하다.
어려운 것은 통증을 회복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 생각과 쓰레기 같은 감정을 피할 수 없어서 절망스러운 경험이다.
그런데 통증일기를 쓰게 되면 생각과 감정을 밖으로 꺼내 놓고 다시 바라볼 수 있다.
'생각'과 '감정'을 바라보는 '또 다른 나'가 있음을 알아채게 된다.
도대체 어떤 게 진짜 나의 모습일까?
OOO님은 스스로 그 답을 찾아가고 있는 것이다.
OOO 님)
당근, 후자요.!!!!
나)
정말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인연 따라 약해지기도 하고 튼튼해지기도 하는 '나'(지난주 강의로는 경험자아인 몸과 기억자아인 생각의 조합인 개인을 의미함)를 연민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어요.
내가 길을 가다가 사람이 주저앉아 있을 때 일으켜 주며 물어본다고 칩시다. 그 사람이 OOO님이 지금 겪었던 일을 똑같이 겪었다면 그 사람을 어떻게 대하실 것 같나요?
혹시 "이런 쓸모없는 녀석 같으니라고! 없애버려야겠어!"라는 생각이 들까요?
OOO 님)
아뇨,
"괜찮으세요?" 하면서 바로 도와줄 것 같아요.
OOO님처럼 정이 많은 사람들은 자칫 타인을 배려하다가 자신을 모질게 대하는 습관이 몸에 배이기도 한다. 나와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따스하게 말을 건네며 다정하게 대해 주는 사람들이 정작 자신에게는 가혹하게 대하는 경우가 있다. 혹여나 OOO님도 그렇다면 만성통증의 치료는 길을 잃고 만다. 그래서, 자신에게도 타인을 대하는 것 같은 연민의 시선을 담아 바라보기를 바랐다.
이런 만신창이 같은 몸과 감정이 흘러내리지 않도록 주섬주섬 보따리에 대충 구겨 넣은 채 험한 시기를 지나가고 있다. 그 몸과 감정은 모두 나를 보호하기 위해 나름의 애를 쓴 것이다. 물론, 최선의 결과는 아니지만 일단은 살아서 온 것이다. 어설픈 그 몸과 그 불안, 두려움이 아니었다면 '나'를 지탱할 수 없었을지 모른다. '참 나'가 더 선명히 떠오를 때까지 부서진 항아리 같은 '나'를 철사줄로 얼기설기 싸맨 것처럼 그렇게 싸매고서라도 나에게까지 온 것이다.
이 사람이 살아야 나도 크게 숨을 쉴 것 같았다.
이 사람이 웃어야 나도 웃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떠오르는 생각에 끌려가지 않고, 밀려오는 감정에 파묻히지 않기
만성통증 치료 중 가장 중요한 순간이다.
어쩌면 이 분의 삶에 가장 결정적인 순간일지도 모른다...
새로운 별이 탄생하는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