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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한민국 서정시 Nov 04. 2019

8만원짜리 청바지를 샀다.

내 인생에서 최고 비싼 청바지

지난 주말에 내가 샀던 것 중 최고 비싼 리바이스 청바지를 샀다. 정가 8만 9천원에 할인쿠폰 1만원을 먹여 7만 9천원이었다. 나에게 이런 청바지가 가당키나 한 것인가 고민도 되고, 인터넷에서 3~4만원짜리 2장을 살 걸 하고 망설이기도 했다. 차라리 이 돈으로 우리 아가 바지를 사는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내 연봉은 4,800만원

10년 넘게 직장생활을 해온 나의 연봉은 4,800만원이다. 상여금과 보너스까지 합하면 5,000 조금 넘는다. 월급은 400만원인데, 세금을 제하고 실수령액은 341만원. 대기업도 아닌 중소기업 경력으로 이정도 버는 것이 적은 편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대기업을 다니는 남편 월급에 비해도 70% 이상을 버는 고소득이다. 주변에 나만큼 버는 여자는 없었다. 아니 남편 친구들만 봐도 나만큼 버는 남자도 없을뿐더러 우리 아기 어린이집에 있는 그 어떤 외벌이 아빠보다 내가 더 많이 벌고 있다. 그런데 무엇이 나를 8만원 짜리 청바지에도 벌벌 떨게 만들었을까...



청바지 네까짓게 뭔데...


처음 청바지를 사던 날

14살. 처음 청바지를 사던 날. 아빠에게서 나는 3만원을 받았다. 어떤 청바지가 좋은지도 몰랐다. 버스를 타고 시장에 있는 한 옷가게로 갔다. 수중에는 버스비를 제외한 2만 9천원 가량이 남아있었다. "2만원~" 이라고 적힌 옷걸이에서 한참을 고심끝에 청바지 하나를 골랐다. 가격을 물어보니 29,900원. 몇백원이 모자랐다. 손에 돈을 꼭 쥐고 머뭇거렸다. 우리집이 넉넉치 못한 가정은 아니었다. 돈은 많았지만 엄마와 이혼 후 혼자서 우리를 키운 아빠는 왜 사춘기 딸이 청바지가 필요한지 이해해주지 못했었다. 다시 돌아가서 몇백원을 받아서 나와야 하나, 살 것처럼 다 입어놓고 그냥 나가도 되는 것인가 망설이고 있는 나를 보더니 그 옷가게 주인이 그런줄 알았다는 듯이 돈이 없냐고 물었다.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죄송한데 지금 몇백원이 모자란다고 했다. 그 자리에 있던 다른 점원들과 손님들이 내 말을 들었을까 심장이 두근거렸다. 깎는 방법도 가지가지라면서 주인의 온갖 핀잔과 조롱을 들으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다. 몇백원 적선한 셈 치겠다며 그 청바지를 특별히 나에게 몇백원 할인해준다며 큰소리를 내고 봉지에 넣어줬다. 그 자리에 있던 시선들이 날아와 나에게 꽂혔다. 그냥 그 자리에서 돌아나오면 되는데, 사지 않겠다고 말하면 되는데, 나는 꼭 그렇게라도 사야만 할 것 같았다. 단지 장사치의 푸념일 뿐인데, 다 알면서도 집으로 걸어오는 길은 이상하게 눈물이 났다.



우선순위

살면서 옷에 큰 투자를 해본 적이 없었다. 부모님은 10대까지의 내게 외모에 투자 하는 것은 사치라고 가르치셨다. 외면보다 내면을 가꿀줄 알기를 바라셨다. 외모도 격식을 차려야 할 때와 아닌 때를 구분하라 하셨다. 반대로 행색이나 외모만으로 사람을 판가름 하지 말라는 소리도 하셨다. 그 사람의 겉면이 아닌 속을 들여다보라고...

틀린 말이 아니다. 덕분에 외모만으로 판단하고 아무에게나 막 대하지 않는 아이로 성장할 수 있었다. 나 스스로 그렇게 생각한 것이 아니라 부모님의 가르침 덕에 그렇게 해야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그 점은 항상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사회생활을 하며 내가 번 돈으로 옷을 살 때에도 5천원짜리 티셔츠에 3만원짜리 청바지를 사입었다. 근검절약의 일환이 아니라, 하나를 오래 입지도 못하는 변덕쟁이이기도 한 내게 월급을 써야할 우선순위에 비싼 옷이 없었을 뿐이다. 거기서 아낀 돈으로 기초화장품이나 취미생활, 남자친구-지금의 남편- 선물에 더 비중을 뒀다. 피부는 바로 반응이와서였고, 취미생활이나 남자친구 선물은 하고 난 후 느끼는 내 정신적인 행복에 더 값어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가정을 꾸리고 아이의 엄마가 된 지금 그 비싼 옷 앞에 수식어가 하나 더 붙게 되었다. 


'내가 입을' 비싼 옷


남편이 좋은 옷을 입고 더 멋져 보이는게 좋았다. 우리 아기가 잘 만들어진 비싼 옷을 입고 귀해보이는 것이 좋았다. 나는 좀 싼 거 입으면 어때~ 하는 마음이 컸다. 남편과 아이을 위해서는 비싼 옷도 별로 비싸 보이지 않았다. 남편의 40만원짜리 가디건과 아이의 15만원짜리 옷은 살 만한 예쁜 옷이고, 내가 입을 8만원짜리 청바지는 망설여지는 비싼 옷이었다.


옷장에 2벌 뿐인 청바지가 살이 빠져 못입게 되었다. 왠만해선 견뎠을 나지만, 이번엔 정말 바지가 흘러내려서 입지를 못하겠어서 주말에 바지를 하나 사달라고 남편에게 말했다. 지오다노에서 청바지를 보고 있는데, 연신 아니라며 고개를 가로로 젓던 남편이 리바이스나 jean 전문 매장에서 보지 않냐고 물었다. 비싸잖아 라고 대꾸했더니 남편이 아이 쫌 그러지마! 라고 나에게 짜증섞인 말을 했다. 남편 손에 이끌려 그렇게 리바이스 매장에 가게 되었다.


입어보니 예뻤다.


리바이스 거울에 비친 나를 보니, 지오다노 거울에 비친 나보다 더 예뻐보였다. 어차피 웃옷에 가려져 어디 제품인지 상표도 보이지 않을테지만, 그 바지를 사게 되었다. 돈이 아까운 생각이 꽤 들었지만, 얼마 차이도 안나네 하며 허세도 부려봤다. 처음으로 비싼 바지를 사는 것에 대한 묘한 죄책감에 남편도 하나 사라고 부추겨서 같이 샀다. 남편은 좀 더 예뻐보이는 나를 보며 흡족해했다.




비싸다고 무조건 좋은 옷은 아니다. 부모님이 내게 물려준 옷에 대한 가치관은 변함이 없다. 

하지만, 격식을 차려야 할 때가 단지 장소를 뜻하는게 아니라, 시간을 의미하기도 한다는 것을 꽤 늦게 깨달았다. 내가 남편과 아이가 멋져보이고 귀해보이는 것이 좋았듯이, 나 역시 가족들에게 그런 사람일 수 있는 거다. 가정을 가진 한 사람의 아내이자 엄마, 그리고 딸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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