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editor 흰둥 Feb 03. 2020

#12. 실크 드레스와 페이스 베일

드디어 최종 가봉하는 날이 왔다.


최종 가봉이란, 최종적으로 선택한 본식 드레스를 내 몸에 완벽하게 맞추는 작업을 말한다. 필요에 따라 2부 드레스와 액세서리 선택까지 더해진다.


이날 나의 동행인은 엄마와 플래너 둘 뿐이었다. 그는 함께하지 않았다. 식 당일날 좀 더 극적인 강렬함을 선사하기 위해 드레스를 입은 최종 모습은 그에게 비밀로 부쳤다.



어깨를 환히 드러낸 오프 숄더 스타일에 비딩이 눈부시게 수 놓인 새하얀 A라인 드레스. 사전에 찜해둔 나의 본식 드레스다.


드레스에 있어 내가 조연이 되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던 터(?). 처음 방문했을 때 보다 약 3kg 감량된 몸으로 드레스를 착용했다. 사실 이 무게가 드라마틱한 변화를 주지 않을 거라 생각했지만 사진으로 본 모습에서는 약간의 차이를 느낄 수 있었다. 물론, 나만 알아볼 수 있는 아주 미묘한 차이.


드레스를 입은 나의 모습은 세 번째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자아도취 현상을 불러일으켰다. 칙칙한 겨울옷에 비교된 대비 효과였을까? ‘옷이 날개다’라는 명제에 깊은 공감 박수를 보내며 한창 나르시시즘에 빠져 있을 무렵, 이 환상을 깨는 예상치 못한 제안이 들려왔다.


신부님~ 혹시 실크 드레스는 어떠신가요?


고결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실크는 성스러운 채플 예식에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그러기에 나의 본식 드레스 후보로 오르지도 않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추천에는 이유가 있는 법? 반신반의한 마음으로 실크 드레스를 영접했다.


참, 택 조차 떼어지지 않은 신상이라는 말에 혹한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웬걸. 엄청난 갈등이 시작됐다. 장인 정신이 느껴지는 드레이핑과 구조적인 실루엣을 완벽 구현한 이 드레스는 묘한 신비감을 담고 있었다. 실크 소재 특유의 깨끗함에 풍성한 A라인, 백 포인트 장식이 더해져 심플함 속에 화려함이 절묘하게 섞여 있는 듯했다.


결혼 준비 내내 선택의 연속이었지만 갈수록 왜 난이도는 높아지는 걸까?


결국 나는 다수결에 의한 결정을 내렸다. 셀프 결단은 추후 엄청난 갈등 후폭풍이 예상되는지라 타인의 시선을 빌렸다. 물론 그 후에도 약간의 내적 갈등은 이어졌지만 말이다.


최종 선택은,
실크 드레스


그리고 이어진 스타일링 연출 시간. 실크 드레스와 어울리는 다양한 티아라부터 베일, 눈부시게 빛나는 귀걸이 등이 나의 시선을 홀렸다. 선택받지 못한 화려한 드레스의 아쉬움을 주얼리로 승화시키는 기분이랄까. 작지만 세상 그 무엇보다 빛나는 웨딩 아이템들을 보고만 있어도 설레었다.


이상했다. 분명 주얼리에 큰 관심이 없었는데. 점점 작고 반짝이는 것들을 보며 마음의 평온을 찾게 된다.


조명 효과를 톡톡히 주는 티아라에 이은 나의 최종 무기는 페이스 베일. 실크 특유의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극대화하기 위한 대표님의 추천이었다. 사전에 다녀온 그 어느 결혼식에서도 보지 못했기에 당연히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아이템이었다.


베일로 얼굴을 가리고 입장한 뒤, 그가 나의 베일을 올려주는 것이 포인트. 과연 그가 높디높은 티아라를 넘어서 부드럽게 잘 넘겨줄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지만 이 색다름은 경험해 보기로 했다.


그리고 여기에 깨끗하고 우아한 신부로 변신시켜줄 실크 드레스와 품격을 높여줄 티아라까지... 이렇게 난 모든 준비를 마쳤다. 식 일주일 가량을 앞두고!


샵을 나오는 길에는 약간의 아쉬움이 밀려왔다. 즐거웠던 나의 공주 놀이도, 낯섦에서 익숙함으로 바뀐 이 공간도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에 괜스레 코끝이 찡했다. 아직 식을 마친 것도 아닌데... 언제나 감정은 이성을 앞서 가는 법. 벌써 이 모든 것이 추억 속으로 자리매김한 기분이었다.


그래도 아쉽고 그리워할 것이 있다는 건 그만큼 준비하는 데 있어 행복했다는 증거이지 않을까?




매거진의 이전글 #11. 우리의 구세주 ‘슈가맨’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