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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드윈 May 16. 2024

명작 다시 읽기 - 원더풀 라이프

길었던 방황 속 구원은 네 속에 남은 우리의 찰나의 순간, 사랑이었다


  고레다 히로카즈 선생님의 작품을 소개할 날이 왔군요. 고레다 선생의 영화를 모두 본 것은 아니어서 선생의 영화관이나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기 조금 낯 뜨겁긴 합니다만, 


 제가 생각하는 고레다 선생은 주위에서 흔히 볼 법한 평범한 삶을 특유의 따스한 시선을 통해 좋은 영화를 만드는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고레다 히로카즈 선생님은 많은 좋은 작품들을 남기셨고 또 만들고 계십니다만, 제가 가장 사랑하는 선생의 작품은 바로 이 ‘원더풀 라이프’입니다.


 선생의 극 초창기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통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지를 정확하게 말하는 훌륭하고, 또한 자신감이 넘치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죠.


 물론 좋은 일본 영화의 특징인 절제된 연기와 잔잔한 분위기 역시 제 마음에 들기도 했지요.





 영화의 주인공은 '모치즈키'로, 죽은 사람들이 천국으로 가기 전 잠시 머무는 ‘림보’에서 일하는 사람입니다.


 그와 동료들은 죽은 사람들이 일생을 살아오면서 가장 행복했거나 생각나는 한 가지 추억을 찾아주고, 또 그 추억을 똑같이 재현해 주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추억을 평생(平生이라는 단어가 죽은 사람에게 쓰기엔 다소 어색하지만 사회 통념상 '지속된다'는 의미로도 쓰이니까, 그냥 '평생'이라고 말하겠습니다.) 반복하며 천국에서 살아가게 됩니다.


 하지만 림보에 머무는 약 일주일간의 시간 동안 사람들은 천국에 가지고 갈 단 하나의 추억을 선택해야 합니다. 만약 추억을 선택하지 못한다면 림보에 머물면서 주인공과 그들의 동료처럼 천국으로 가지 못하고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는 일을 하게 됩니다. 그들이 하나의 추억을 정할 때 까지요.


 그에게는 그를 잘 따르는 '시오리'라는 여 후배가 있습니다. 그와 그녀는 림보를 찾아온 많은 사람들 중 한 남자, '와타나베'때문에 고생을 하게 됩니다.


 그는 스스로 지루하고 멋없는 인생을 살았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 잘 모르는 사람이었죠. 모치즈키와 시오리는 와타나베를 위해 그의 일생이 담긴 비디오 테이프를 전해주게 되고, 그 비디오 속의 어떤 인물을 통해 모치즈키의 마음이 변해간다는 것이 영화의 줄거리라고 할 수 있겠네요.





 앞서 이야기했듯이 전 고레다 선생이 세상과 삶을 바라보는 따스한 시선을 사랑합니다. 선생의 작품에서 주인공들은 딱히 특별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을 법한 사람들이죠. 그리고 그 사람들이 다소 괴상한 사건에 휘말리면서 벌어지는 일종의 소동극과 같은 영화를 주로 만드십니다.


 이 영화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림보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잘 나오지 않지만, 죽어서 림보를 찾아온 사람들의 이야기와 모습은 “내 주변에도 저런 사람이 있는데. “ 하는 생각이 드는 친근한 것들이죠.


 인상이 아주 좋은 착한 할머니, 음담패설을 달고 사는 괴상한 아저씨, 그냥 일 열심히 하시는 평범한 아저씨, 자기애에 취해 사는 아주머니, 비뚤어진 젊은 남자, 항상 기분이 붕 떠있는 것 같은 고등학생 등등.


 그런 사람들이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추억 한 장면을 찾아가는 이야기를 보면서 누군가는 가슴이 찡하게 아려올 것이고, 누군가는 그들을 보면서 ‘만약 나에게 저런 상황이 온다면 난 어떤 추억을 선택할까?’하는 생각을 해볼 수도 있겠죠.


 제가 이 영화를 사랑하는 첫 번째 포인트는 이러한 감정을 ‘영화 속의 영화‘라는 소재를 통해 이야기한다는 점입니다.


 사람들의 추억을 위해 림보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최대한 똑같이 그들의 추억을 재현해 주려 노력합니다. 그리고 그 추억을 재현해 주는 장소는 영화 세트장과 흡사하죠. 그리고 그곳에서 철저한 고증을 위해 온갖 아이디어를 쥐어짜는 모습이 등장합니다.


 마침내 사람들이 기억하는 추억을 그들이 완벽하게 재현해 냈을 때 행복해하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영화라는 매체가 인간에게 줄 수 있는 감정을 고스란히 보여줍니다. 그것을 영화 속의 영화인 '추억 재생'을 통해서 말이죠.


 그리고 영화가 끝남과 동시에 우리는,


 '그럼 지금 나에게 있어서 가장 소중한 추억은 무엇이지?' 하는 생각이 들게 되지요.


 스크린에서 크레딧이 올라가기 시작하면 영화가 끝난 것이 아닌 영화가 아닌 우리의 삶 속으로 들어오는, 그런 마법 같은 순간이 찾아오는 거죠.


 이 영화는 감독님의 두 번째 작품이었는데 이런 과감한 표현을 어색하지 않게 잘 녹여냈다는 것이 신기했습니다. 물론 아직 철부지 시절이었기에 이런 과감한 표현이나 구조가 가능했을 수도 있겠습니다만, 이 영화의 이런 거칠다면 거칠고 과감하다면 과감한 그 표현과 영화 구조가 저는 너무 사랑스러웠습니다.


 "영화는 좋은 거야. 사람들을 이렇게 행복하게 해 줄 수 있으니까. 자, 영화는 끝났습니다. 그럼 이제 당신에게 묻겠습니다. 당신에게 있어서 가장 소중한 추억은 무엇인가요?"


 감독님의 그런 솔직한 말이 들려오는 것 같았거든요.





 이제 제가 이 영화를 사랑하는 두 번째 이유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고레다 선생의 영화는 평범한 사람들이 다소 이상한 사건을 겪는 일종의 소동극입니다. 그리고 선생의 영화는 대부분 중반쯤에서 하나의 변곡점을 갖습니다.


 그 변곡점을 중심으로 영화의 톤 앤 매너가 조금 달라지거나, 영화의 주제가 그곳에서 드러나는 경우가 있더군요. 이 영화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 영화에서의 변곡점은 모치즈키가 와타나베의 비디오를 함께 보다가, 그 속에서 한 사람을 알아보는 것입니다. 그 사람은 바로 모치즈키가 죽기 전 결혼을 약속했던, 그리고 와타나베의 아내였던 '쿄코'였죠.


 와타나베는 모치즈키가 자신의 아내와 무슨 일이 있었다는 것을 눈치챕니다. 그리고 아내와 함께 처음으로 영화를 보러 갔던 장면을 천국에 가져갈 추억으로 선택합니다. 와타나베는 모치즈키에게 질투를 느꼈고 그때서야 비로소 자신이 아내를 얼마나 사랑했는지를 알게 된 것이죠.


 와타나베와 다른 사람들을 천국으로 보낸 모치즈키는 쿄코가 천국에 가지고 간, 그녀의 추억이 담긴 비디오를 재생하게 됩니다.


 그 장면에는 남자와 여자가 있었습니다. 모치즈키는 2차 대전 때 전사한 청년으로, 입대 직전 자신의 약혼자였던 쿄코와 마지막으로 벤치에 앉아 간단한 대화를 하고 헤어집니다. 그 싱겁고, 별 특징이 없는 한 컷이 쿄코에게는 가장 소중했던 추억이 되었던 것이죠.


 모치즈키는 비로소 림보를 떠나 천국으로 갈 결심을 합니다. 그는 아직 자신의 짧은 '삶'에서 평생 가지고 갈 추억을 찾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누군가에게 일생에서 가장 중요한 추억이 되어 주었고 또 누군가에게 가장 소중한 행복을 주었다는 것을, 또 그것이 얼마나 멋지고 감사한 일인지를 알게 됐기 때문이죠. 


 림보에서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은 저마다의 이유로 천국에 가지 않습니다.


 누군가는 모치즈키처럼 추억을 찾지 못해서, 누군가는 아직 어린 딸이 있기에 딸이 결혼하는 모습을 보고 천국으로 가겠다고 보류 중인 사람도 있고, 


 아직 천국으로 가고 싶지 않다고 반항을 하는 사람도 있고, 단 한 가지의 추억을 남겨둔 채 나머지 기억들을 잊어버리는 것이 싫어서 일부러 선택을 보류하고 있는 사람도 있지요.


 그들은 마치 세상을 떠도는 귀신과 같습니다. 아직 세상에 미련이 남아있기에 성불하지 못한, 그런 가여운 영혼으로도 보이죠. 이 가여운 영혼들이 성불하는 방법은 오직 단 한 가지, 가장 소중했던 단 하나의 기억을 가지고 세상에 대한 미련을 끊어버리는 것이죠. 


 천국으로 가면 그 소중한 기억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잃어버리게 되니까요.


 모치즈키는 천국으로 갈 결심과 함께 자신이 천국에 가져갈 추억을 찾았습니다. 하지만 그 추억은 이젠 남의 아내가 된 사람이었기에 모치즈키는 자신이 천국으로 가져갈 추억을, 자신을 촬영하는 동료들의 모습으로 선택합니다. 그리고 그는 비로소 성불하여 천국으로 가게 되지요.


 이 영화 역시 제가 좋아하는 해피엔딩, 즉 주인공의 구원으로 영화가 마무리됩니다. 이 영화에서의 구원의 메세지는, 나에겐 별 것 아니었던 일일지라도 그게 어떤 누군가에겐 평생의 기억으로 남을 일이 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역설적이게도 그것이 나를 구원으로 이끌어 줄 수도 있다는 것이 되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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