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혐오가 아닌 지구를 살아가는 모든 생명에 대한 경의와 사랑을!
요즘 넷플릭스에 새로 나온 드라마가 아주 핫하죠. '기생수 더 그레이'.
저는 원작 기생수의 팬이기도 하고, 작가인 '이와아키 히토시' 선생님의 광팬이어서 꽤나 기대한 작품이었는데 드라마는 조금 실망하긴 했습니다.
드라마라는 특성상 작품이 가지고 있는 함의에 집중하기보단 흥미위주로 만들어야 하는 건 잘 알지만, 그래도 원작 기생수가 담은 생각해 볼 법한 주제를 담아내지 않고 스펙터클함만 가진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덕분에 원작 기생수를 다시 보게 됐습니다. 요샌 작가님의 '히스토리에'의 연재 재개만 기다리고 있어서 한동안 기생수에 대한 생각을 안 하고 지내긴 했거든요.
기생수를 처음 본 게 거의 20년 전입니다. 그때 저는 중학생이었고, 동네 만화방에서 기생수를 읽고 나서 엄청난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인간이 뭐라고, 고기 먹겠다고 멀쩡한 동물을 죽이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한동안 고기를 못 먹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 뒤로도 이따금씩 기생수를 보긴 했고, 마지막으로 기생수를 읽었던 게 아마 대학교 3학년때로 기억합니다. 그때도 아주 좋게 봐서 여태 쭉 좋은 기억만 가지고 있었지만 기억이라는 게 참 이상하죠.
기생수의 가장 훌륭한 마지막 권에 대한 기억은 거의 사라지고 초반부의 '인간혐오'에 대한 기억만 남아있었거든요.
이 드라마를 보면서 실망하는 동시에 '내가 좋아했던 기생수도 [지구상에 가장 쓸모없는 건 인간, 기생수는 바로 인간이다]라는 뻔한 이야기를 한 거 아니었었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기생수를 다시 보고 싶었습니다. 만약 그런 인간혐오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라면 제가 아직까지 좋아하지 않았을 것이고, 설령 인간혐오의 이야기를 하더라도 뭔가 다르게 표현을 했기에 제 기억 속에 좋게 남아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래서 기생수를 다시 봤습니다. 역시나 다시 보니 새롭고 또 제가 오해하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뭐랄까 대가의 덜 다듬어졌던 시절의 작품을 보는 흐뭇함 같은 게 느껴졌고, 이와아키 선생님이 기생수를 어떻게 마무리 지어야 할지 엄청난 고민을 하셨구나 하는 생각도 동시에 들었거든요.
아무것도 모르던 중학생, 처음 기생수를 봤을 때의 충격은 덜 했지만 그래도 원작 기생수가 담고 있는 주제와 감동은 훨씬 더 크게 다가왔던 것 같네요.
원작 기생수는 [어느 날 지구상의 누군가가 인간이 없어진다면 지구가 더 좋아질 테니, 누군가 인간을 죽여야 한다]라는 내레이션과 함께 기생생물들이 등장하며 시작됩니다.
주인공 신이치는 기생생물의 공격을 받지만 다행히 기생생물이 뇌까지 도달하기 전에 오른팔을 전깃줄로 꽉 동여맨 끝에 다행히 뇌를 먹히지 않습니다. 다만 그의 오른팔은 기생생물의 지배를 받게 되죠.
그로 인해 신이치는 ’ 오른쪽이'라고 이름 붙인 기생생물과 육체를, 정확히 말하면 그에게 오른팔을 내주며 '공생'하게 됩니다.
신이치와 달리 불행하게도 기생생물에게 뇌를 먹힌 사람들은 무작정 인간을 죽이는 살인동물이 되어버립니다.
인간을 죽이려는 기생생물과, 그런 기생생물을 죽이려는 인간의 싸움에 신이치는 휘말리게 되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서서히 변해간다는 것이 기생수의 초반 스토리라고 할 수 있겠네요.
기생수를 보다 보면 이런 생각이 들 겁니다. '아, 작가가 인간혐오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이걸 그리고 있구나.'
이 작품에서 기생생물들을 '기생수'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기생생물이나 패러사이트 같은 단어로 이야기를 하지요. 아이러니하게도 이 작품에서 '기생수'라는 단어는 딱 한 번 등장합니다.
바로 인간이자 정치인인 '히로카와'의 입에서요. 그는 인간을 혐오하는 사람이었고, 기생생물의 편에 서서 적극적으로 그들의 인간 사냥을 돕습니다. 그리고 기생생물을 일망타진하기 위해 들어온 군인의 총에 허무하게 목숨을 잃어버리죠.
그가 죽기 전 마지막으로 한 연설 속에서 "인간이야 말로 지구를 좀 먹는 기생충, 아니 기생수다."라고 말하죠.
또한 기생수에는 흥미로운 인물이 한 명 더 등장합니다. 바로 살인마 '히로가미'죠. 그는 쾌락을 위해 인간을 죽였습니다. 그리고 기생생물을 분별해 내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는 우연히 기생생물이 인간을 잡아먹고 난 자리를 보게 됩니다. 그리고 생각하죠, '나랑 별 차이가 없네.'라고요.
기생생물들이 인간을 공격하는 것은 먹기 위해서 혹은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서이지만 히로가미는 단순히 재미를 위해 인간을 공격합니다.
이 두 인물이 등장하기 전 기생생물인 '타미야 료코'가 기생생물의 존재 이유에 대해 생각하고, 자신의 아이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포기한 것을 생각해 본다면 최소한 이때까지 기생수는 인간혐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죠.
하지만 만화의 후반부, '고로'라는 기생생물과의 일전 이후 기생수의 주제는 조금 바뀌게 됩니다.
3마리의 기생생물이 합쳐서 만들어진 고로와의 일전에서 신이치와 오른쪽이는 패합니다만, 유독물질을 잔뜩 머금은 폐품더미에서 나온 꼬챙이에 찔려 고로는 허점을 보이고 신이치와 오른쪽이에게 패합니다. 그리고 죽기 직전까지 몰리죠.
신이치와 오른쪽이는 고민합니다. 고로를 죽이려 했던 오른쪽이는 "동족을 죽이는 것은 인간으로 치면 '살인'이니 내가 고로를 죽일 수 없을 것 같아."라며 신이치에게 선택을 넘깁니다. 그리고 신이치는 고로를 죽이지 않고 살려두려고 하지요.
그 역시 생명이고, 살기 위해 버둥거리는 동물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죠. 하지만 그가 살아있다면 많은 인간들이 죽을 것이고, 결국 신이치는 '자신의 동족인 인간'을 위해 고로를 죽이는 길을 선택합니다.
작가님의 원래 계획은 고로를 죽이지 않는 방향이었다고 합니다. 아마 그렇게 됐다면, 인간혐오의 틀에서 벗어나기 힘들었겠지만 고로를 죽임으로 인해 '우린 법정의 판사가 아냐, 그저 법정 밖을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일 뿐이지.'라는 메시지를 확고하게 남겨줍니다.
그리고 이 메시지는 기생수가 명작이 된 포석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오른쪽이 가 사라지고 나서 신이치와 그의 여자친구 사토미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옵니다. 그리고 신이치가 사토미에게 말하죠.
"인간이라고 특별하지 않다, 종의 잣대로 다른 종을 이야기해선 안되고 그렇게 생각하는 것 자체가 인간의 오만함이다."라고.
신이치가 그렇게 이야기한 까닭은 기생생물들의 만남과 싸움을 통해 그들 역시 똑같은 생명이고 미워할 수 없다는 마음을 가졌기 때문이죠. 신이치의 마음의 빈 공간을 물리적으로 채워준 것도, 정신적으로 채워준 것도 다 기생생물들이기 때문이었으니까요.
그리고 살인마 우라가미와의 일련의 사건 이후, 사라졌던 오른쪽이가 잠깐 신이치에게 돌아와 그에게 도움을 줍니다. 그리고 오른쪽이의 독백이 시작되죠.
"우연히 길에서 만난 생물이, 어느 날 만나보니 죽어있었다. 그럴 때면 왜 인간은 슬퍼지는 걸까. 그건 인간은 한가한 동물이기 때문이지, 그게 인간이 가진 최고의 장점이야. 마음의 여유가 있는 생물. 얼마나 멋진 일이야? “
신이치는 다소 시니컬한 태도로 인류를 바라봅니다. 신이치의 독백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는 바로 '오만'이지요.
하지만 오른쪽이는 다소 부드러운 태도로 인류를 평가합니다. 오른쪽이의 독백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는 '여유'이죠.
신이치는 오른쪽이 와의 내면의 대화를 통해 다시 한번 깨닫습니다. 생명이 다할 때까지 '의지'하며 살아간다고. 그리고 만화의 마지막 장면은 지구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기생생물은 강합니다. 한 개체가 웬만한 경찰 1개 소대를 박살 내는 건 일도 아닌 걸로 묘사가 되죠. 하지만 그렇게 강한 기생생물도 인간의 몸에 의지하고 있으며, 나약한 인간의 몸에서 떨어져 나가면 죽게 되죠.
인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강하고 다른 생명들의 생사이탈권을 쥐고 있다 하더라도 결국 지구라는 곳에서 떨어져 살 순 없는 것이죠. 강하다고 다른 생명들을 막대하다 보면 지구의 환경이 황폐해질 것이고, 그러면 인간 역시 자멸하겠지요.
그렇기에 우린 다른 생명들을 아끼고 사랑해야 합니다. 다른 생명을 위한다는 오만보단 다른 생명을 생각할 정도로 여유로운 우리가, 우리 인간이라는 종 자체를 위해서.
그래서 [인간은 지구에 기생하는 기생수다. 지구를 위해선 없어져야 한다.]가 아닌, [만물의 영장인 양 오만하게 생명들을 판단하고 내려다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을 위해서라도 다른 생명들을 아끼고 함께 살아가자. 지구에 기생하고 있는, 아니 의지하며 살아가고 있는 수많은 생명 중 하나로서.] 그게 원작 기생수의 주제가 아닐까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