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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드윈 Jun 06. 2024

명작 다시 읽기 - 서유기 선리기연

속세의 미련은 끊어내는 것이 아니라 그저 두고 오는 것


 

 좋은 영화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좋은 영화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기준이 다르지요. 그래서 저 역시 나름대로 '좋은 영화'의 범주에 포함되는 영화들의 특징이 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좋은 영화는 그 영화가 표현하고자 하는, 혹은 말하고자 하는 바가 확실한 작품이지요. 그게 설령 사람이 잔인하게 죽어나가는 호러영화나 지저분한 유머로 가득 찬 코메디 영화든 뭐든 간에요.


 이렇듯 제가 생각하는 좋은 영화의 범주는 꽤나 넓기에 다소 괴악하고 이게 뭐지 싶은 영화도 좋은 영화에 포함되는 경우가 왕왕 있습니다. 오늘 소개할 이 영화 역시 마찬가지이지요.




 세상에는 오만가지 영화가 있지만 그중에서 이걸 좋아해야 할지, 싫어해야 할지 난감한 영화들이 있습니다. 그런 영화들 중 이상하게 눈에 띄는 친구들이 있습니다.


 특유의 병맛스런 슬랩스틱과 괴상한 개그코드, 그리고 그 속에서 느껴지는 묘한 친근함과 따듯함을 가진 영화들이 있지요. 마치 밤하늘의 별자리처럼 서로를 잇고 있는, 독립적인 하나의 영화군(群)이죠.


 바로 주성치 영화입니다. 저도 주성치 영화를 좋아하는 편은 아닙니다만, 주성치의 팬들은 


 "세상에는 두 가지 부류의 영화가 있다. 주성치가 나오는 영화, 그리고 그가 나오지 않는 영화."라고 주장할 정도로 매니아층이 확실한 감독이자 배우입니다.


 저도 한 때, "시네필이라면 주성치 영화도 한 번 봐야지." 했다가 몇몇 영화들을 보고 경악을 했던 기억이 잊히지가 않네요.


 이걸 웃어야 할지, 비웃어야 할지. 80-90년대에 만들어진 영화가 60-70년대 만들어졌던 홍콩 쌈마이 영화와 다를 게 없으니, '일부러 이렇게 영화를 만드는 건가? 의도가 있는... 그런 유치함인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네요.


 아직도 주성치 영화의 맛을 100% 즐기지 못하기에 감히 주성치 영화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것이 부담이긴 합니다만, 그래도 시작해 보겠습니다.


 제가 유일하게 좋아하는, 아니 사랑하는 주성치 영화. 제가 생각하는 좋은 영화에 완벽하게 부합하는 영화, 바로 '서유기 선리기연'입니다.




 이 영화는 '서유기 시리즈'의 2부에 해당하는 작품입니다. 그래서 영화를 완벽하게 즐기기 위해서는 작품의 1부에 해당하는 '서유기 월광보합'을 봐야 합니다. 


 2부에 해당하는 선리기연에서 1부 내용을 대충 요약해서 이야기해 주기 때문에 굳이 월광보합을 볼 필요는 없을 수도 있겠습니다만, 1부를 보고 나서 2부를 보면 엔딩에서 느껴지는 감동이 훨씬 더 크죠.


 전 개인적으로 1부를 보고 2부를 보는 걸 추천하지만, 2010년대에 한국에서 재개봉을 했을 땐 2부인 선리기연을 먼저 상영하고 뒤이어 월광보합을 상영했다고 하더라고요.


 왜 그렇게 편성을 했는지 충분히 이해합니다. 왜냐면 1부인 월광보합은 별 내용이 없거든요. 러닝타임 내내 주성치와 그 친구들이 말도 안 되는 슬랩스틱 코메디를 봐야 하고 정작 중요 사건은 영화의 끝에서 시작되니까요.


 영화를 한 번 본 사람이라면 2부의 마지막에 오는 감동적인 신을 기억하기에 1부의 엉성함을 용서할 수 있고, 또 그 엉성함 속에서 거칠게 쌓아 올라가는 인물들의 감정선을 느낄 수 있겠습니다만…


 영화를 처음 본 사람들에겐 '이게 뭐야?' 하는 생각이 들게 뻔하거든요.


 그래도 1부를 보고, 2부를 보는 걸 저는 추천드립니다. 그러면 2부의 결말을 보면서 '하… 내가 이런 영화를 보면서 감동을 받는단 말이야?' 하는 특별한 감정을 느낄 수 있거든요.

  



 영화의 대략적인 줄거리를 소개해 보겠습니다. 손오공은 말이 너무 많은 삼장법사 때문에 고통을 받다가 우마왕과 짜고 삼장법사를 잡아먹기로 합니다. 하지만 관세음보살에게 계획을 들키고 죽을 운명에 처합니다.


 그때 삼장법사가 손오공은 자신의 제자이고, 제자의 잘못은 스승인 자신의 잘못이니 손오공을 용서해달라고 하면서 자신을 희생하게 되고 손오공은 '지존보'라는 인간으로 환생하게 됩니다.


 손오공으로의 기억을 잃고 사막에서 도적단의 두목으로 살아가는 지존보, 그에게 춘삼십랑과 백정정이라는 요괴가 찾아옵니다.


 그리고 손오공과 연관된 캐릭터들이 하나둘씩 등장하면서, 지존보가 손오공으로서의 기억을 다시 찾아간다는 것이 영화의 초반부 줄거리라 할 수 있겠네요.




 예전 한 기사를 읽고 감명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어느 스님과의 문답이 담긴 기사였는데요, 질문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만 스님의 답변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속세에 대한 욕망은 끊는 것이 아니라 두고 오는 것입니다."라는 대답이었지요.


 스님의 저 답변을 읽고 나서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아직까지 문장을 기억하고 있으니, 적잖게 충격적이고 인상 깊었던 것이겠지요. 


 성직자들 중 스님과 신부님, 수녀님은 저마다의 신앙을 따르기 위해 속세와의 연을 일부분 끊어낸다고 생각했습니다. 스님들은 출가할 때 머리를 깎으시고 신부님들은 바닥에 엎드려서 앞으로 가장 낮은 곳에서 봉사를 하면서 살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니까요.


 하지만 나이를 어느 정도 먹고 종교생활도 하다 보니, 성직자들도 결국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들도 여전히 고민을 하고 사람들과 갈등이 생기고 가끔 싸우고, 많은 유혹에 힘들어하는 한 명의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그런 걸 티 내진 않으시지만요.


 욕망은 끊을 수 없기에 그곳에 두고, 자신이 믿는 신의 길을 따라 올바른 길을 걷는 것. 그게 성직자의 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영화는 그런 성직자의 모습을 인상적으로 표현합니다.




 우여곡절 끝에 지존보는 그가 사랑하는 여자인 자하와 스승인 삼장을 구하기 위해 손오공으로 돌아가기를 결심합니다.


 하지만 손오공이 된다는 건 스님이 되는 길이기에 그는 속세의 연을 포기해야 한다는 말을 듣습니다. 지존보는 알겠다며 금고아를 쓰려고 하죠. 


 그리고 '다시 사랑할 기회가 온다면, 그 사랑에 기한이 있다면 만년으로 하겠소.'라는 명대사를 날립니다(아시는 분은 알겠지만 중경삼림에서 먼저 등장했던 대사죠. 이 영화는 중경삼림의 몇몇 씬과 대사를 패러디하고 있습니다).


 손오공으로 돌아온 지존보는 강력한 힘을 보여주며 우마왕을 농락합니다만, 결국 자하를 구하는 데는 실패합니다. 손오공은 자하를 구하기 위해 손을 뻗지만 그 순간 자하를 사랑하는 마음(번뇌)으로 금고아가 조여지게 되고, 손오공은 끝내 자하를 구하지 못하고 그녀를 떠나보내게 됩니다.


 다시 시간이 흘렀습니다. 어느 세계선인지 모르지만, 말 많던 삼장은 과묵한 사람이 되어있었고 지존보가 살았던 세계의 사람들이 전혀 다른 모습으로 지내는 모습을 보게 되죠.


 손오공과 삼장법사 일행은 불경을 가지러 천축국으로 가는 여행을 떠납니다. 여행을 떠나기 전 들린 마을에서 손오공은 지존보와 자하와 똑같이 생긴 남녀를 봅니다.


 여자는 남자를 사랑한다 하지만, 남자는 자신보다 더 좋은 남자를 만나라며 여자의 마음을 거절하지요. 그 모습을 본 손오공은 도술을 부려 남자의 몸으로 들어갑니다. 그리고 여자에게 성큼성큼 다가가 키스를 하고 둘을 이어주죠.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씬은 여의봉을 어깨에 들쳐 매고 쿨하게 삼장법사를 따라가는 손오공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두 남녀를 그곳에 둔 채로요.


 손오공은 속세의 연을 끊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야 했지요. 그래서 아마 자하와 손오공의 환생으로 보이는 두 남녀에게 사랑이란 선물을 남겨두고 자신은 쿨하게 그 자리를 떠납니다.


 위에서도 이야기했던, 속세의 연을 끊지 못하고 그대로 남겨두고 오는 모습이지요. 장난스럽게 걷지만 그의 표정은 오묘합니다. 슬픔과 후련함이 공존하는 손오공의 표정을 보는 것만으로도 이 영화를 볼 가치가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성직자가 아니더라도 우리의 평범한 삶에서도 '두고 온다'는 말이 와닿을 때가 많은 것 같습니다. 나쁜 일이더라도, 좋은 일이더라도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마음으로 떠나는 것이 삶의 지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것이 미련이나 후회를 남기지 않게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지만, 잘 되지 않았을 땐 쿨하게 남겨두고 떠날 수 있는 마음을 저도 가지게 되었으면 좋겠네요. 그게 언제 가능하게 될진 몰라도, 그렇게 지내려고 노력을 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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