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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드윈 Jun 24. 2024

명작 다시 읽기 - 데어 윌 비 블러드

무엇이 당신의 삶을 구원해 줄 것인가


 오늘 소개할 영화는 제가 영화를 한참 보기 시작한 고등학생 시절, 정말 좋아했던 감독의 영화입니다. 


 '영화가 길고 지루한데, 이렇게 흡입력 있게 만들 수가 있다니. 이런 영화를 끝까지 보게 만드는 힘이 있구나.' 하면서 감탄을 했었던 기억이 나네요. 물론 한참의 시간이 흐른 지금도 굉장히 좋아하는 감독 중 한 명입니다.


 저는 이 분돈만 밝히는 자본가들 그리고 변호사들의 세상이 된 할리우드 영화판에서 자신이 만들고 싶은 영화를 찍어내는, 몇 안 남은 진정한 영화감독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뿐만 아니라 그렇게 자신이 찍고 싶은 영화가 모두 다 평작 이상, 거의 명작에 가까운 영화들이니 '천재'라는 수식어가 전혀 아깝지 않지요.


 오늘 소개할 영화의 감독은 '매그놀리아', '부기나이트', '펀치 드링크 러브'... 그리고 최근작 '리코리쉬 피자'를 만든, 바로 '폴 토마스 앤더슨', 통칭 PTA입니다.


 오늘 소개할 영화는 PTA의 영화 '데어 윌 비 블러드(There will be blood)'입니다. 탈출기의 한 구절인


 [그래서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으로 너는 내가 주님임을 알게 될 것이다. 보아라, 내 손에 있는 이 지팡이로 나일강 물을 치겠다. 그러면 물이 피로 변할 것이다.]


 에서 따온 제목이지요. 직역을 한다면 "피가 있으리라"정도로 이야기할 수도 있겠네요.

 




 영화는 석유를 찾아 미국 전역을 돌아다니는 '다니엘 플레인뷰'의 일대기를 그리고 있습니다. 그는 뉴 멕시코의 어느 곳에서 석유가 나오는 유전을 발견합니다만, 그 유전을 개발하는 도중 사고로 인부 한 명을 잃게 됩니다.


 그 인부는 아이를 데리고 다녔고, 다니엘은 인부를 대신해 아이를 맡기로 하지요. 아이의 이름은 HW, 다니엘은 아이와 함께 미국을 돌아다니며 자신의 석유 사업을 홍보하고 새로운 유전을 찾으려 합니다.


 그러던 도중, 목사의 길을 꿈꾸는 일라이가 다니엘을 찾아옵니다. 자신의 아버지가 가지고 있는 목장에 석유가 묻혀있는 것을 알고, 그 목장을 다니엘에게 팔기 위해서였지요.


 다니엘은 일라이의 목장을 둘러보고는 석유가 묻혀있음을 확신하게 되고 그 주변의 땅을 모두 매입하게 됩니다. 그리고 목장에 유전 단지가 만들어지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사건이 진행되게 되지요.

 




 이 영화는 석유채굴업자인 다니엘의 성공과 몰락을 다루고 있습니다. 영화의 제목은 '피가 있으리라'라고 말하지만 실제 영화에서 피가 나오는 장면은 거의 없습니다. 대신 석유가 피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지요.


 영화 초중반부, 다니엘은 피칠갑 대신 석유로 온몸을 적시는 장면이 많이 등장합니다. 석유를 뒤집어쓰고 기괴하게 웃으며 행복해하는 다니엘의 모습은 마치 피를 뒤집어쓴 살인마의 모습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연출과 영화 제목을 통해서 PTA는 석유를 단순한 석유가 아닌, 땅 속에 흐르는 대지의 피로 표현을 하고 있지요.  


 탐욕스럽게 대지를 후벼 파서 석유를 채굴하는 다니엘을 통해서 '자본의 욕망을 알게 된 인간이 자신들을 어떻게 파멸시켜 가는가?'를 이야기하고 있는 영화이기도 하지요.


 영화 초반부의 다니엘은 나쁜 사람은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HW를 데리고 다니면서 자신의 사업에 이용하는 것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그를 정말 자신의 아이처럼 잘 보살피기도 합니다. 


 석유가 묻혀 있는 땅을 구매할 때도 나름 값을 잘 쳐주는 것으로 보이고,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최대한 잘 지낼 수 있도록 여러 기반시설을 지어주겠다고 이야기하는 다니엘입니다.


 하지만 일라이의 목장에서 석유를 뽑아내고 그 석유를 뒤덮어 쓴 이후로 그의 인간성은 파멸해 나가기 시작합니다.


 영화에서는 다니엘만큼은 아니지만 중요한 인물이 한 명 더 등장합니다. 그 역시 다니엘과 같이 욕망으로 인해 파멸해 가는 모습을 보여주지요. 바로 일라이입니다.


 일라이는 선한 목자의 길을 걸으려 하는 인물로 보입니다. 목장에서 석유가 나오는 것을 알고 그것을 다니엘에게 팔려는 이유는 자신의 교회를 만들기 위해서였지요. 그래서 자신의 목장을 다니엘에게 팔아치우고 나서, 그는 교회를 크게 키우게 됩니다. 


 하지만 일라이의 신앙은 그 이후로 변질되기 시작합니다. 그의 신앙과 교회는 뭔가 비뚤어져 보입니다. 끊임없이 사람들에게 과한 자기반성을 강요하고 이단처럼 보이는 행동을 하기 시작합니다. 타락의 시작이지요.


 이렇듯 이 영화는 '욕망으로 인해 타락하여 스스로를 파멸시키는 인간의 비극'으로 읽어도 전혀 무리가 없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타락하지도, 파멸하지 않은 한 인물을 한 명 보여줌으로써 그러한 비극 속에서 한 가지 희망을 이야기합니다. 그 인물은 바로 HW이지요.




 제가 이 영화를 사랑해 마지않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앞에서 언급했던 영화에서 읽어낼 수 있는 메시지, PTA의 자신감 넘치는 롱테이크 씬, 감정을 고조시키는 적절한 음악사용, 다니엘 데이 루이스와 폴 다노의 신들린 연기 등등.


 하지만 제가 이 영화를 사랑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의외로 별 것 아닌 장면에 있습니다. 극의 최후반부에 유전사고로 청각장애인이 된 HW가 자신을 버린 양아버지, 다니엘을 만나러 옵니다.


 장성한 그는 결혼도 했고 멕시코에서 유전 사업을 하기로 결심하고, 멕시코로 떠나기 전에 그를 만나러 온 것이죠. HW가 다니엘을 찾아온 것은 그를 용서하기 위해서입니다. 


 HW는 다니엘에게 버림을 받았습니다. 그는 유전 폭발사고로 청각을 잃어버렸거든요. 그래서 다니엘은 더 이상 자신의 비즈니스에 도움이 되지 않고, 장애인이 돼서 돌보는 것도 힘들어진 HW를 버리기로 결심합니다.


 HW는 그런 다니엘을 용서하기 위해 찾아왔지만 다니엘은 그를 오히려 매몰차게 대하며 쫓아 내버립니다. 자신이 큰 상처를 준 사람이 되려 자신을 용서하러 왔지만 다니엘은 HW의 용서를 받아들이지 않고 오히려 뻔뻔하게 대하지요.


 HW는 그런 다니엘을 보고 실망하고 자리를 떠납니다. 



 이러한 다니엘의 행동에서 인간성을 완전히 잃어버린 그의 모습을 읽어낼 수도 있겠습니다만, 그러한 모습과 함께 '구원'의 메시지 또한 읽어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니엘은 성공한 석유채굴업자입니다. 수많은 돈을 벌었고, 그로 인해 엄청난 명성 역시 얻은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그는 불행하고 영화의 끝에는 몰락해 버리지요.


 일라이는 꽤 성공한 목사로 등장합니다. 처음엔 동네의 작은 교회를 운영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나중엔 그 교세가 꽤나 강성해진 것으로 묘사되지요. 하지만 교회는 몰락하고 그 역시 비참한 최후를 맞습니다.


 이 영화의 등장인물 중 가장 행복한 결말을 맞는 사람은 아이러니하게도 HW로 보입니다. 그는 불행한 사고로 청각을 잃었고 다니엘에게 버림받았습니다만, 영화의 결말에는 가장 행복한 인물로 묘사가 되지요. 


 청각에 문제가 있는 것 말고는 별 탈 없이 잘 성장했고, 결혼을 해서 가정도 이루었으며 멕시코로 넘어가 사업을 하겠다는 꿈도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앞서 이야기한 다니엘과 일라이에 비해서 생기가 넘치는 인물이기도 하지요. 


 저는 이 영화 역시 인간의 구원을 이야기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남들이 범접할 수 없는 돈과 명예를 가진 다니엘, 신앙심-그것이 올바른 신앙심이 아니라 하더라도-을 가지고 있던 일라이는 끝내 영화 내에서 구원 얻지 못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영화 속에서 구원을 얻은 인물은 가장 불행해 보였던 HW이지요. HW가 어떤 인생을 살아왔는지에 대해 영화는 이야기하지 않습니다만, 어렸을 적 그가 한 여자아이를 좋아했다는 표현을 살짝 집어넣습니다.


 바로 HW는 다니엘이나 일라이와 다르게 '사랑'을 배운 것이지요. 자신을 사랑해 주고, 또한 자신이 사랑하는 한 사람을 위해 HW는 치열하게 살아왔을 것입니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먹먹한 세상 속에서 사랑이란 빛을 등불 삼아 열심히 살아왔겠지요.


 남을 사랑하는 법을 배운 HW는 구원을 얻을 준비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진정한 구원을 위해 큰 결심을 하게 되지요.


 HW는 자신의 자존심을 내려놓고 자신을 버렸던 양아버지를 찾아가 그를 용서합니다. 자신에게 잊지 못할 상처를 준 사람을 진심으로 용서함으로써, 다니엘에 대한 증오의 감정을 모두 내려놓음으로써 그는 비로소 구원을 얻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때로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자신에게 잘못한 이를 자신이 용서'하는 행동이 자신의 내면 속에 응어리를 풀어내고 그럼으로써 행복해질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저는 그런 행복 역시 일종의 '구원'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랜만에 영화를 다시 보고 나서 '돈이나 명예 그리고 비뚤어진 신앙심으론 행복해질 수 없다. 행복해지기 위해선,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사랑이 필요하다.' 그런 생각이 들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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