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나먼 프라하로 떠난 스물둘의 여행기
글을 어떻게 시작하면 좋을까?
일단 난 여행을 좋아한다. 많이 다녀본 건 아니지만 어디든 나를 내던져 보려 노력한다.
그렇지 않으면 방구석에 박혀 넷플릭스로만 세상 구경할지도 모르기에
그리고 난 여행을 다녀와서 끄적여보는 여행기도 참 좋아한다.
주로 친구들과 여행을 다녀오면 사진을 보면서 그 당시 일을 세세하게 기록한다. 우리들의 언어로.
글을 쓰면서도 웃겨서 혼자 웃을 정도니 내 여행기에 필터링 따위는 없었다.
최대한 그 상황을 극대화시켜 표현해내고 친구들의 댓글로부터 에너지를 얻는다.
그런데 역시나 플랫폼이 주는 무언의 압박감을 느낀다.
브런치의 하얀 창을 보는 순간, '대박''존맛''미쳤다'와 같은 감탄사들은 살포시 집어넣게 된달까?
평소 학교 제출용 레포트 이외에는 침착한 언어로 무언가를 기록할 일이 없었기에
이번에는 꼭 제대로 써보고 싶다.
물론 의식의 흐름이 될 가능성이 높다. 허나 그 속에서 내 진실된 생각을 발견하기 더욱 쉬울 거라 믿으며
이번 한 달간의 프라하살이를 엮어내 보고자 한다.
내가 사랑하는 영화들의 이름과 절묘하게 맞물리는 제목과 함께.
인천공항 ~ 두바이 공항 ~ 프라하 공항까지
한 달 짐을 싸던 게 언제부터였더라? 아마 1학기 내 내였던 것 같다.
다년간 스카우트 활동을 해오면서 짐 하나는 잘 싼다고 자부하던 나는 '30일'치 짐의 양에 대해 고뇌에 빠졌다.
평소에 그냥 학교 가거나 약속을 나갈 때도 이것저것 다 대비하다가 프로봇짐러가 되던 나에게 30일이란,,,
거의 이민 짐을 싸라는 소리나 비슷하달까?
그렇게 28인치짜리 캐리어를 제일 먼저 구매한 후, 그 안에 꾸준히 담기 시작했다.
폰으로는 끝없이 배송 문자가 왔고, 다이소/올리브영은 거의 단골 수준으로 방문했다.
시험기간이 임박해서는 내가 사랑하는 영화들을 USB에 잔뜩 담아내고는 설렘에 부풀어서 여행일을 고대했다.
(나름 로코부터 공포까지 물리지 않을 다양한 장르로 담았다.)
그렇게 어느덧 출국일, 이것저것 다 챙기고 보니 방이 굉장히 휑하더라
이렇게 오래 집 떠나 본 게 처음이라 그런지 여행 때문에 설레다가도 왠지 울적해지는 기분이었다.
어릴 때부터 매일같이 엄마한테 "나 나중에 외국에 취업해서 눌러 살 거야~" 타령을 일삼았는데
떠나는 길부터 벌써 가족을 그리워하는 모순이란... 참 알 수 없다.
공항에서 가족을 힘들게 떠나보내고 수속을 밟고 면세 인도받고 야간 비행을 기다리며
떨리는 마음을 가다듬었다. 이 어둠 속에서도 비행이 가능할까 걱정 가득한 마음을 품고 말이다.
그래 난 사실 비행이 두렵다. 어릴 적 본 영화 <환상특급>에서 나왔던 비행기 도깨비(?)가 떠오르기 때문이다.
비행기 안에서 숨 막혀하던 그 남자 배우와 창밖에 보이는 괴생명체는 아직도 머릿속에 생생하게 남아있다.
이에 더하여 이륙과 착륙 시 느껴지는 그 울렁거림, 난 아직도 극복하지 못했다.
롤러코스터를 한 10분 넘게 강도 올리고 타는 그 느낌,, 눈을 꼭 감고 몸을 한껏 웅크리고 겨우 참아낸다.
이렇게 한국을 벌써부터 그리워하고 비행기 타는 것도 무서워하는 내가
머나먼 유럽까지 간다니
나에겐 크나큰 도전이 아닐 수가 없었던 것이다.
비행기에 오르고 한편으론 숨 막히는 자리에 앉고 나니 이것저것 내 무릎 위로 무언가 차곡차곡 쌓여갔다.
에미레이트 항공에서 주는 파우치부터 나름 챙겨 온 목베개에 거대한 헤드폰까지
가득 안고 콘텐츠를 둘러보았다.
장르를 가리지 않는 다양한 영화, 드라마, 노래가 한데 모여있어서 그런지 눈이 빙빙 돌아갔고
"뭐부터 봐야 잘 봤다고 소문날까?" 하는 마음으로 고르기 시작했다.
내 첫 번째는 티모시 샬라메의 <뷰티풀 보이>
한국에서 개봉하지 않은 작품이라 그런지 눈이 절로 갔다. 여기서 못 보면 한참을 못 보지 않을까 싶은 마음에 말이다. 물론 영어로 들었더니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해 아쉬웠으나 오히려 그 감정이 직관적으로 와 닿는 것 같아 좋았다. 영화관에서 보면 더 좋을 텐데... 개봉해줘!
울렁이는 게 영화 탓인지 아까 먹은 기내식 탓인지 진짜 항공기가 매우 흔들리는 탓인지 혼란스러울 때쯤
두바이 항공에 도착했다.
이 곳에서 네 시간이라는 긴 텀 동안 맥도널드에 들려 킷캣 셰이크도 먹어보고
한껏 들뜬 사람들을 구경하며 잠자코 다음 비행을 기다렸다.
다음 비행도 무려 여섯 시간이었기에 나의 다음 콘텐츠들을 열심히 골라보던 중
<모던 패밀리> 시즌 10을 발견했고, 아직 한국 넷플릭스에 나오지 않은 에피소드들을
훑어보며 나름대로 열심히 스포일러를 당했다.
(아직 제대로 봤다기엔 그 빠른 영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에 스포일러 당한 걸로 퉁치기로 했다.)
도착할 때 즈음엔 보헤미안 랩소디를 눌러 라이브 에이드만 쭉 보고 벅참을 느끼며
내가 드디어 이들이 살던 유럽 언저리에 간다는 사실을 상기시켰다.
그리고 드디어 도착!
오자마자 유심 문제가 생겨서 골머리 앓았지만 그래도 하늘만 보면 행복해지는 프라하.
빠르게 학교에 짐을 풀고 근처 마트로 향해 납작 복숭아 향기를 맡았다.
푸디 맛있게 필터가 참 잘 어울리는 도시에 왔다는 게 실감 나는 순간이다.
일몰시간이 무려 21시 무렵이라 시간을 버는 느낌인 이 도시에서
앞으로 어떤 것들을 경험하게 될지...
두근거렸던 그 마음으로 마무리 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