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결혼이 무서웠던 것이었다.
나는 비혼 주의자였다.
비혼 주의자이기보다는 결혼이라는 것을 할 자신이 없었다.
나는 하고 싶은 게 많은 둘째로 태어났다. 하고 싶은 건 많은데 제한이 많았다.
엄격하신 부모님 덕에 어렸을 때는 다섯 시가 통금이었다. 고등학생이 되면 통제가 풀릴 줄 알았더니 통금은 여전했고 어린 동생이 생겼다. 15살 차이가 나는 동생을 돌봐야 했고 그나마 자유로웠던 주말을 반납해야 했다. 난 자유롭지 못했다.
성인이 돼서는 어린 나이에 많은 것을 희생한 언니를 보았다. 사람들 만나기 좋아하던 나의 언니는 금쪽같은 두 아이를 얻은 대신 자유를 잃었다. 어린 엄마. 십 년이 지난 지금보다 더 눈총을 받던 때였다.
그즈음 나는 유치원에서 일하게 되었고, 약 5년간 나랑 나이 차이가 열 살 이상 나는 분들과 일했다. 예비 신랑이 있으신 분들, 갓 결혼하시고, 결혼생활을 몇 년 하시고, 아이를 이미 가지신 분들 의 결혼생활에 대해 자연스레 알게 되었다. 행복한 결혼 생활에 관한 이야기는 들리지 않았다. 오고 가는 이야기 속에 남편과 시댁과 친정은 피곤하기 그지없었다.
더구나 길게 사귀지 않은 나의 몇 안 되는 전 남자 친구들 중 좋은 남자는 없었다. 나름대로 골라 사귀었는데..
그때 알게 된 게 몇 가지가 있다.
좋은 사람이라고 좋은 남자는 아니란 것.
다른 사람에게 좋은 남자였다고 내게도 좋은 남자이지 않는다는 것.
나에게 나쁜 남자였다고 다른 사람에게도 나쁜 남자이지 않는다는 것.
결혼이라는 약속이 나를 자유롭게 해주지 못하다는 것.
결혼은 연애 이상으로 희생하고 양보해야 할 부분들이 많을 텐데 나는 그걸 감당하지 못할 거란 것.
아이를 가진다는 것은 내가 나이기를 내려놓아야만 가능하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