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은 어려운 거지만 내 마음이 더 어려운 것.
나는 19살 때부터 독립을 꿈꿔웠다.
독립 하노라 외칠 때면 우리 부모님은 "독립하고 싶으면 결혼해!"라고 하셨었고
결혼을 무서워하던 나는 항상 불만이었고, 홀로 살아보겠노라 다짐했었다.
그렇게 한해, 한해 미뤄오다 29살 되던 해 나는 드디어 독립을 했다.
우리 부모님의 언어를 빌려 결혼이란 이름의 독립.
좋은 사람을 만나니 결혼이 전혀 무섭지 않았다.
친정은 나와 같은 나라 아르헨티나에 살았고 시댁은 한국에 있었다.
사귄 지 약 5개월 만에 나와 아빠 생일을 핑계 삼아 가족 생일 파티에서 내 남편을 소개했고
시댁 식구들이 나를 보러 아르헨티나에 올 순 없으니, 우리 휴가철인 2월에 맞춰서 시댁에 인사드리러 갔다. 우리는 당시 결혼 후 호주로 워홀을 생각하고 있었고 나이가 더 차기 전에 (워홀은 31살 전에 신청할 수 있다) 갈 생각으로 결혼을 최대한 빨리하길 바랬었는데 시원시원하신 이모님들의 응원에 힘입어 시댁에 인사드리러 간지 한 달 만에 예식장을 잡고 난 4월의 신부가 되었다.
결혼 허락까지는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는데 결혼식이라는 큰 과제가 남았다.
내 남편이나 나나 결혼식은 순전히 우리 것이라는 생각이 강해 잘 모르는 부모님 친구분들한테 축하받기보단 우리 지인들이 있는 곳에서 하는 것이 옳다 생각하여 아르헨티나의 결혼을 생각했었는데 시부모님들 직업상 휴가를 미리 받기가 어렵고 시간적 여유가 있는 우리 친정부모님들을 생각하여 본식은 한국에서, 법정 결혼식과 피로연, 뒤풀이는 아르헨티나에서 하기로 하였다.
결정은 길었지만 그 후는 금방 금방 진행되었다. 급하게 친정 부모님이 한국으로 오셔서 상견례를 하고 어차피 우리 가족은 부를 사람이 많지 않았기에 시댁 식구들의 상황에 더 맞추기로 했다.
사실 욕심만 부리지 않는다면 더 금방 끝날 숙제들이었다. 다만 조금만 더, 그래도 더, 한 번뿐인데..라는 마음이 나중에 감당 못할 만큼 커지더라.
그런 마음이 들기 전에 일찌감치 내가 애초에 어떠한 결혼식을 원하는지 생각하고 진행할 필요는 있다.
우리는 결혼 후 워홀을 생각했기 때문에 결혼에 있어서 가장 큰 골칫덩어리인 신혼집과 혼수를 준비하지 않을 수 있었고 예단도 하지 않기로 하였다.
그렇다면 남은 건 웨딩홀 - 스드메 - 청첩장 - 본식 준비 (부케, 코르사주, 답례품, 식권 등) 정도인데
마침 시댁 집 근처에 큰 웨딩홀이 있어 찾아가 올해 3월~5월 사이에 결혼을 희망하는데 예약할 수 있는 날짜가 있냐 문의를 하였더니 홀 예약이 미처 차지 않은 가능한 날짜와 시간을 말해주었고 시부모님과 상의 후 4월 말에 예약을 하였다.
나도 이번에 결혼하면서 알게 된 거지만, 예식장은 6개월, 혹은 1년 전에 원하는 날짜에 맞춰 예약하는 것보다 우리처럼 남는 날짜와 시간에 골라서 하면 오히려 여러 가지 혜택들을 받을 수 있다. 웨딩홀 나름이겠지만 업체 홀 입장에서는 어차피 남는 시간이고 우리처럼 급하게 하는 사람들이 많이 없다 보니 웬만하면 줄 수 있는 서비스들을 챙겨주며 계약하게끔 하는 것이다. 한 곳에서만 알아보지 말고 서너 곳에 가서 상담받아보는 것이 좋다.
나 같은 경우 예약한 웨딩홀 외에도 한 곳을 더 방문해 보았는데 사실 거기서는 내거는 혜택들이 그리 많고 가격대가 높았다. 그에 비해 내가 예약한 곳은 여러 가지 혜택을 받을 수 있었는데, 원래라면 지불해야 하는 홀 대관료를 내지 않고 무료로 잡았으며, 웨딩촬영용 드레스를 한벌 더 받고, 식비 할인에 음료수(술 제외) 무한 제공에, 싸구려지만 흰 웨딩 구두도 제공도 받았다. 최소보증인원도 보통은 400명이 기본인데 원하는 인원으로 맞춰주신다고 하셨다. 리뷰를 쓰고 오케스트라 협찬도 받았다. 심지어 본식 앨범과 액자도 무료로 받게 됐다.
드레스도 홀에서, 웨딩촬영도 따로 알아볼 것도 없이 모두 제휴된 스튜디오에서 진행하였다. 홀과 제휴된 스튜디오는 촌티 나고 서비스가 별로일 거라는 나의 편견과 걱정과 달리 다행히 너무 맘에 드는 스튜디오와 찍게 되어 매우 만족했다. 청첩장과 부케같이 하루만 쓰고 버릴 것들은 인터넷에서 촌스럽지 않은 무난한 것으로 주문하였다. 남편 턱시도와 구두는 근처 백화점 가서 나중에도 입을 수 있는 깔끔한 정장으로 대신 맞췄다.
웨딩 패키지: 250만 원 (홀+스드메 포함된 가격) + @
1. 웨딩홀 준비- 결혼식 전, 당일 :
대관료
축가: 남편
사회자 : 남편 친구
주례 : 아빠 친구
식권(당일 현금으로 낸다는 조건에)인당 4만 원
재즈 삼중주: 리뷰 혜택
부케, 코르사주 : 웨딩북 스드메/ 8만 원 (택배비 포함)
모바일 청첩장 + 청첩장 + 식전 영상: 비핸즈 /9만 3천 원
식후 드레스: 흰색 원피스 20만 원
혼주 메이크업: 여자 12만 + 남자 3만 (양가 부모님) : 30만 원
본식 DVD 촬영 + 하이라이트 편집 : 크몽 /28만 + 3만 : 31만 원
2. 스드메
촬영용 드레스 롱 3벌 + 숏 1벌 / 본식 드레스 1벌
남편 정장(아버님께서 선물해주심)+구두(내가 선물)
촬영 메이크업 + 본식 메이크업
본식 앨범 + 큰 사이즈 액자 2개
머리 붙이는 가격 5만 원
도우미 현금 15만 원
이동비 : 5만 원
간식비 (우리가 틈틈이 먹을 간식 - 이모님께 드릴 간식 - 사진 찍어주시는 분께 드릴 간식) : 2만 원
앨범 원본 + 수정 + 포토 테이블 사진 인화 + 앨범 : 39만 원
한 달간 급하게 준비를 해서 해치우는 식으로 진행을 했다.
약간 버겁긴 했어도 부족하다 느껴진 부분 하나 없이 잘 마무리하였다.
참 정신없이 지나갔다. 아쉬운 부분과 다음에 결혼할 예비 커플들을 위해 후기를 남기자면..
1. 본식에서 머리를 올린 것.
나는 화장과 헤어에 대해 관심이 없기 때문에 미리 알아가지 못한 상태에서 메이크업팀에서 해주시는 그대로 하였는데 반 묶음 머리가 더 잘 어울림에도 불구하고 추천받은(드레스에 어울리는) 올림머리를 하였고 나이 들어 보여 마음에 안 들었다.
무슨 승무원 웨딩 헤어인 줄...
각자 어울리는 헤어스타일을 생각해본 후 진행하는 것을 추천.
2. 웨딩 촬영할 때 영상 촬영을 하지 못한 것.
꼭 전문가가 아니더래도 영상을 남겨 줄 지인을 데려가는 것을 추천한다.
완성된 사진도 물론 매우 만족스럽겠지만, 그 날의 날씨, 분위기, 촬영장, 어색한 표정과 얼굴..
모두 일생에 한번 겪는 대 이벤트니까.
1. 본식 영상 촬영:
본식 때 사진기사를 따로 불러 사진 찍기보다 영상으로 남기고 싶어 촬영팀을 불렀는데 그건 매우 잘했다고 생각한다. 영상으로 남겨야 당일에 정신없어 대충 인사하고 보냈던 지인들에게 결혼식 후 한분 한분 인사하기 좋다. 일생에 단 한 번만 있을 날 아니던가. 사진보단 영상이 더 기억하기도, 추억하기에도 좋다.
나 같은 경우 원본 + 하이라이트 제작을 하였다. 나중에 sns에 업로드하기도 했고 지인들 보여주기 좋더라.
2. 도우미 이모님:
처음엔 조금 비싸다고 느껴졌지만, 급하게 도우러 와줄 친구도 없었기에 도우미 신청을 하였다.
15만 원이면 작은 돈은 아닌데.. 현장에 가보니 왜 이 돈을 주고서라도 이 엄청난 내공의 이모님과 함께해야 하는지 알 수 있다. 아니, 알게 된다.
나에게 허락된 시간은 정해져 있고 3~5번의 의상교체 (심지어 웨딩드레스는 벗고 입는 게 오래 걸린다)를 최대한 빨리해야 더 많은 사진을 찍을 수 있는 데다 갈아입었다고 끝이 아니다. 촬영하며 자리 이동하고 포즈 바꿔야 하는데 내가 내 드레스를 정리할 순 없다. 드레스 정리, 헤어 정리, 각종 액세서리 교체.. 얼마나 알아서 적절히 해주시는지.. 정말 대단하다고 밖에 생각나지 않는다.
친구 데려갈 거면 경력이 있거나 눈치 있는 친구 데려갈 것.
3. 웨딩 패키지:
처음엔 웨딩드레스, 홀, 사진 촬영 등 모두 발품 팔아 알아서 하려고 했다.
가격도 걱정이 되기도 했었고 뭔가 '패키지' 하면 묶어 싸게 파는 느낌이 든다고 해야 하나.. 그런 편견이 있었다.
그런데 웬걸.. 시간 절약은 물론이고 워낙 기대를 안 해서 그런가 신랑 턱시도 빼고는 모두 흡족했다.
소소하게 추가되는 금액들 (머리 붙이는 비용이라던가, 혼주 메이크업 등) 이 나를 속상하게(?) 했지만 결과적으로 매우 만족스러웠다. 영상 촬영과 부케 빼고는 모두 같은 곳에서 진행하여서 따로 진행할 것이 없었다.
4. 한정식 콘셉트의 하객 식사
어른들이 매우 만족해하셨던 부분인데, 사실 정말 맛있는 뷔페들 음식이 나오는 곳은 식대가 정말 비싸고 적당한 곳들은 먹을 게 없다. 한정식 콘셉트이라 같은 테이블에 앉아 먹는 분위기를 불편하다면 불편하다고 하실 분들이 계실진 모르겠는데 음식만큼은 참 맛있었다. 따뜻하고 남길 게 없던 찬들. (리필도 되고) 실제로 식 끝나고 음식에 대해 어른들의 칭찬이 많으셨다고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