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미정 변호사 Nov 30. 2020

코로나 베이비

코로나 시대의 육아

#1


싱가폴에 온지 이제 두달이 되어 간다.


원래 9월 초에 싱가폴로 오는 일정이었는데, 당시 한국에서 갑작스레 코로나 확진자가 급증하면서 싱가폴 정부는 싱가폴로 입국하는 외국인 수를 상당히 제한하였고 입국허가를 바로 내주지 않았다(지금도 싱가폴은 관광비자로는 들어올 수 없고, 우리같이 거주비자를 가진 경우에도 입국허가가 있어야 입국이 가능하다). 이에 우리는 예정된 일정보다 3주 뒤에야 겨우 싱가폴행 비행기에 오를 수 있었다.


그 사이 자가격리 수칙도 변경되었다.


7월만해도 싱가폴에 거주지가 있는 경우에는 자기 집에서 2주간 격리를 하면 충분했는데, 입국 당시에는 집이 있더라도 정부에서 지정한 시설에서 격리를 해야만 했다.


니, 우린 아직 100일도 안 된 신생아와 이민가방 4-5개에 달하는 엄청난 짐을 들고 돌아가는 길이었는데, 지정시설에서 2주간 격리라니... (심지어 돈도 내야한다. 인당 120SD정도 하는데 2주, 성인 2명인걸 생각하면 한화 약 285만원정도 한다;; 그 기간동안 집은 비워져 있는채로 역시 수백만원의 렌트도 내야 하고...ㅜㅜ)

일주일에 한 편 운행 중. 새벽에 싱가폴 공항에 도착했다.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인 건 싱가폴 정부 지정시설은 4~5성급 호텔이라는 점!


싱가폴 지정격리시설에는 샹그리라 센토사, 만다린 오리엔탈, 리츠칼튼, 메리어트, 쉐라톤 등 다수의 5성급 호텔들이 포함되어 있어, luxury qrantine vlog등으로 유투브에 영상들이 올라와 한때 뉴스기사가 나기까지 했었다.


하지만 어느 호텔로 가는지는 공항에 도착하면 순차적으로 랜덤배정되는 시스템이여서 복불복이다.


복불복인걸 알아도, 한 여름에 아이를 낳고 코로나에 여름휴가도 못 갔는데, 푸른 바다가 보이는 센토사섬의 샹그리라 오션뷰로 배정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하고 싱가폴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살짜쿵 기대도 품어보았다. :)

아니, 14일 격리를 이런 곳에서 한다고?!
이런 격리라면, 한 번 해줄수도?!


흠... 하지만 역시! 나는 어릴 때부터 당첨운(?!)은 별로 없었는데, 이번에도 역시나 ^^::


안타깝게도 센토사도, 마리나베이 뷰도, 5성급도 아닌;; (하지만 남편 회사와 우리 집과는 가까운.?!) Park Avenue Rochester호텔(4성급)에 배정되었다.


그렇게 우리는 코로나 덕분에 싱가폴에서의 육아를 2주간 호텔 자가격리로 함께 시작했다! 


다행히 스위트룸을 주어서, 넓은 거실, 주방, 심지어 세탁기까지 구비되어 있어 신생아 돌보기엔 최적!
센토사 오션뷰는 아니지만, 긴 격리기간 동안 함께한 뷰


#2


코로나가 바꾼 일상,

그리고 코로나 시대에 태어나고 자라는 아이들


그러고보니, 코로나가 우리의 일상을 뒤흔들어놓은지 이제 거의 일년이 다 되어간다.


이젠 어디서든  마스크를 쓰고 있어야 하고, 마음 놓고 모임을 하지도 못한다. 악수를 청하는 것도 실례다. 이전과 달리 재택근무나 온라인으로 일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한국 회사들도 훨씬 관대해지고 있다. 심지어 친구들과도 zoom으로 모임을 하여 아쉬운 마음을 달래고 보니, 코로나 시대를 살면서 "우리 한번 만나자"라는 의미도 점차 변화하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역시 가장 큰 변화이자, 한동안 계속될 것 같은 점은 언제 어디서나 "마스크"를 쓰고 있어야 한다는 점.


코로나가 한창일 시기에 아이를 낳고 보니, 아이가 처음 태어나서 마주한 세상에서 모든 사람들이 마스크를 쓰고 얼굴을 가려서, 그 너머의 표정을 아이가 알 수 없다는 사실이 가장 안타까웠다. 한 생명이 태어나 사회적발달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 중에 하나가 바로 "눈맞춤"이고, 아이를 수많은 눈맞춤을 통해 상호작용과 표정읽기를 배우면서 사회화를 해간다고 한다. 그런데, 마스크는 제대로된 "눈맞춤"을 하는데는 영 큰 장애가 아닐 수 없다.


이제 막 150일이 된 우리 아기도 마스크를 끼면, 아직은 앞에 있는 사람이 엄마인지 아빠인지 잘 모르는 눈치이다. 마스크를 끼고 산책을 한창 하다보면 아이가 영 시무룩 표정이 없다. 한적한 곳에 가 마스크를 살짝 내리고 아이의 눈을 마주보며 활짝 웃어주면, 마치 까꿍놀이를 하듯이 이제야 '엄마, 아빠를 찾았다! '는 듯이 활짝 웃는 아기.


그 모습이 너무나 사랑스러우면서도 이내 미안하다.


밖에 나갈 때마다 마스크를 하니, 아이는 "저 사람이 누굴까?" 하는 표정


얼마전 인스타그램에 친구가 딸이 그린 그림을 올렸다. 딸이 그린 그림은 얼굴 절반을 까맣게 칠해져 있었다. 친구가 '이건 왜그래?'라고 물어봤더니, 딸이 '엄마, 이건 마스크를 낀거야. 코입을 다 가려야해서 칠해줬어.'라고 말했다던데. 눈, 코, 입 중에 코와 입을 까맣게 칠해버린 아이. 아이들은 순수하게 보고 느낀 것을 표현한 것 뿐인데.. 그 그림이 자꾸만 기억에 남는다.


얼굴의 절반을 가린 세상을 빨리 벗어날 수 있기를,

어서 아이들이 마스크 없이 자유롭게 다닐 수 있기를.


#3 코로나 시대 육아의 숨겨진 장점


코로나로 인해 백일도 안 된 신생아를 데리고 호텔방에서, 외부의 도움도 전혀 없이 2주동안 격리를 하면서 육아를 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돌이켜보니 임신하고 나서 코로나가 창궐해서 모든 국경이 닫혔고, 그 결과 싱가폴에 있는 남편과 한국에 있던 나는 최장 4개월 내내 만나지도 못했고, 임신 기간의 절반 정도를 혼자서 보냈다. 병원도 거의 다 혼자 다녔고, 이래저래 롱디를 하느라 남편은 임신하고 초음파도 한번 같이 보러 가지 못했었다. 아이가 출산 전 마지막 초음파를 보던 8개월 쯤인가에서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남편은 직접 아이 심장 소리도 들어보고 꿈틀거리는 영상도 볼 수 있었다.


싱가폴로 함께 온 지금도 코로나로 인해 헬퍼를 새로 구하는데 제약도 많고, 가족들의 방문도 여의치 않아 어려움이 많고 아쉽고 불편한 점이 많지만, 코로나 시대에 육아에는 세상 모든 일이 그러하듯 생각지 못한 긍정적인 측면도 있었다.


임신 기간 중 유연한 근무


올해 초 코로나 확진자가 매일 수백명이 넘던 시기 나는 임신 5개월을 지나고 있었다.  재택근무가 익숙하지 않은 보수적인 로펌이었지만, 임산부들은 자유롭게 재택근무를 할 수 있게 해주었다(사실 자문 변호사의 업무야말로 컴퓨터와 이메일만 되면 어디서든 할 수 있는 일이 아닌가!).


임신 기간 내내 재택근무와 출근을 사정에 맞추어 할 수 있게 되어 몸이 점차 무거워지던 시기에 태교도 하고, 필요한 일들을 신속히 처리할 수 있었다.


코로나 덕분에, 만삭 사진도 남편없이 혼자 찍었지만 말이다;;


재택근무 덕분에 마음 편하게 지내서일까.


아가는 아직까지는(!) 편안하고 순한 기질을 보여주며 잘 자라고 있다. :)


부부가 함께 부모가 되어가는 시간


코로나로 인해 힘든 부분들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긍정적인 측면을 생각하자면 남편이 계속 집에서 함께 육아를 할 수 있다는 점이다. 남편은 올해 말까지 재택이 확정되었다. 재택근무 덕분에 남편은 임신 마지막 한달과 출산을 같이 준비할 수 있었고, 산후조리까지 약 5개월 동안 한국에 머무르면서 함께했다.


싱가포르에 돌아와서도 독박육아를 면하게 되었다.


업무시간에 일을 하더라도 집에 남편이 함께 있으니 아이 뿐만 아니라 나에게도 정서적인 안정감이 더해졌다(사실 하루종일 말도 못하는 아이랑만 둘이서 어바아어 우우어다 옹알이만 하고 있다면, 금새 지쳤을 것 같다).남편이 쉬는 시간이나 식사를 할 때 등, 아가는 하루에도 수시로 아빠 얼굴을 볼 수 있고, 24시간 동안 엄마와 아빠가 (코로나 덕분에) 계속 함께 있는 상황.


코로나로 일상의 불편은 가중되었지만,

반대로 만약 재택근무가 아니었다면, 또 내가 계속 한국에 있었다면,

아기가 이렇게 오랫동안 엄마아빠 얼굴을 보는 일상을 누리지는 못했을테니까.


아이를 예뻐하기도 하지만, 재택근무 덕분에 남편은 매우 적극적으로 (공동)주양육자의 역할을 해내고 있다!!


# 4


조금 더 큰 아이들을 계속 집에서 돌봐야 하는 누군가에겐 일도 육아도 다 해냐야 하는 너무나 지치는 시간들일수도 있을 것이다.


다만, 아직 꼬물꼬물 세상에 나온지 백일하고 50일밖에 안 지난 아기를 키우는 우리에게는,

부부가 함께 부모로 성장할 수 있는 소중한 일상을 선물받았다고 생각한다.


코로나 시대의 육아


달라진 일상으로 힘들고 지치고 우울한 나날들도 많겠지만,

그 안에서도 반짝이는 순간들을 따라가다보면-


어느새 코로나가 끝나고,


이 찰나의 시절들을 지나 한뼘 더 성장한 부모가 된 우리 부부와

이러한 시기의 세상조차 순수한 호기심을 가지고 온몸으로 받아들이면서 반짝반짝 크고 있을 우리 아이를 만날 수 있기를 고대하며


오늘도 이렇게 육퇴(육아퇴근)을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Prologue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