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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희영 Jan 21. 2024

근황

 엄지 발톱 끝이 자꾸 갈라졌다. 영양 부족이려니 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비타민 c를 좀 챙겨먹었고 언제나 충분했던 수면 시간을 더욱 풍성하게 늘렸다. 그러나 결국 오른쪽 발톱의 일부를 잃고 말았다. 갈라진 발톱의 일부가 부지불식 중에 사라져 버렸던 것이다. 증상은 왼쪽 발톱에서도 동일하게 재현됐다. 비타민을 좀더 챙겨 먹긴 했지만, 사실 완화될 거란 기대 같은 건 애초에 없었다. 딱히 뭘 어째야 할지 고민조차 없었단 것이 좀더 알맞은 표현일 것이다. 그런 채로 한동안 지냈다. 갈라진 발톱 끝이 양말 코에 걸려 걸치적대던 즈음이었다. 양말을 벗는데 끊어진 발톱이 툭, 떨어져 나왔다. 떨어져 나간 발톱 자리엔 붉고 선연하고 여릿하고 보드라운 속살이 도드라졌다. 그러자 무방비로 드러난 발톱의 속살 앞에 내 무심함도 무장해제 됐다. 


 포털 사이트에 들어가 검색해본 것은 그 때문이었다. 무방비로 내쳐진 연약한 존재만큼 강렬하고 저돌적인 존재가 또 있을까. 그것은 자신과 마주친 상대의 심장을 향해 기습 공격을 가할 줄 안다. 발톱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속절없이 드러난 날것의 살점 앞에서 내 심장이 널을 뛰었다. 

검색어를 입력하고 증상이 비슷한 이미지를 열어봤다. 부서진 발톱 사진은 좀 역겨웠지만 상태가 가장 유사해 보이는 사진 몇 장을 추려낼 수 있었다. 주저리 주저리 늘어진 활자들 속에서 문제의 원인을 찾아냈다. 무좀. 생각지도 못했던 병명이었다. 그러고보니 발에 땀이 나곤 했었다. 한겨울에 발가락에 땀이 나다니... 왜 그걸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을까. 화장실로 달려가 발을 박박 씻었다. 드라이로 말리고 로션을 야무지게 발랐다. 향긋한 로션향 사이로 큼큼한 세균 냄새가 나는 듯도 했다.


 무좀은 외과엘 가야한다고 했다. 이사온 지 얼마되지 않아 낯선 동네엔 예상외로 외과가 지척에 있었다.

"무좀은 아닌 것 같은데요?" 의사가 고개를 갸웃대며 무좀약은 처방해줄 수 없다고 했다. 정 궁금하면 큰 병원엘 가보란 말도 곁들이면서. 더 이상 할 말이 없단 듯 의사는 모니터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는 입을 반쯤 벌리고 엉거주춤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내게 적선하듯 말을 덧붙였다. "정확한 원인을 알려면 발톱을 갈아서 검사해봐야 해요." 갈아서? 순간, 발톱을 갈아내려면 어떻게 하지? 절구나 맷돌, 뭐 그런 곳에 넣고 빻아야 하는 건가... 하는 생각을 했다. 대장암 검사를 위해 변을 준비해야 한단 말을 들었을 때처럼 참담하고 또 암담했다.

"그럼 그걸 어떻게 갈아서 가져 가죠?" 

의사가 빵 터진 건 그 순간이었다. 머리가 희끗희끗하고 눈가에 주름도 자글자글한 의사가 파안대소를 떠트렸다. 눈치로 보아하니 내가 멍청한 질문을 한 건 분명했는데, 무미건조한 표정을 타투처럼 새긴 초로의 사내가 불현듯 큰 소리로 웃어제끼는 모습은 너무도 쾌할해서 비현실적으로 보였다. 

그건 병원에서 알아서 해주는 거라고, 의사는 간신히 웃음을 멈추고 말했다. 그리고는 맨손으로 내 발톱을 만지며 요리조리 살폈다. 슬쩍 발톱에 눈길만 줬던, 처음의 진찰과는 사뭇 다른 태도였다. 아마도 웃음이 그의 태도를 바꾸게 만들었을 것이다. 집으로 돌아오며 생각해보니 나는 원래 웃기는 애였던 것이 떠올랐다. 남을 잘 웃기다 보니 스스로 웃긴 애가 돼버렸다. 말하자면 좀 하잘것 없는 인간이 됐다고나 할까. 나이를 먹고 중년이 됐으니 나잇값을 하자, 해서 그랬던가. 나는 이제 웃겼던 그 아이를 잊고 산다.


  깨진 발톱은 여전히 양말의 코를 물고 늘어진다. 많이 걸어야 하는 날에는 발톱 위에 대일밴드를 붙인다. 밴드를 붙이면 발톱의 통증도 충격도 줄일 수 있다. 그러나 밴드를 제거하면 발가락 근처가 너저분해진다. 붙였다 떼어낸 자리에 끈적한 접착제가 눌어붙는 탓이다. 물로 씻기보단 손가락으로 돌돌 말아내야 제거가 수월한데 그게 참 귀찮은 일이다. 아까도 바닥에 주저앉아 발가락 주변의 접착제를 뜯어내고 앉았었다. 불룩한 뱃살 덕에 다리를 들어 올리기도 허리를 굽히기도 쉽지 않았다. 게다가 눈도 잘 보이지도 않으니 대략 난감이다. 나이가 든다는 건 발가락 사이의 접착제 찌꺼기도 긁어내지 못하는 거구나. 그러니 눈에 띄지 않는 내 생의 찌꺼기는 무슨 수로 제거할 수 있을 것인가. 덕지덕지 눌어붙은 욕망의 찌꺼기를 끌어안고 꾸역꾸역 잘도 살아왔구나 싶다. 가벼워지자. 자주 웃고. 나는 원래 웃긴 애였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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